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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제주들불축제 한달 후 새별오름의 모습
▲ 새별오름 2019 제주들불축제 한달 후 새별오름의 모습
ⓒ (사)제주참여환경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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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보면 아름답지만 가까이 보면 비극이 시작되는 곳이 새별오름이다.

1997년에 시작한 들불축제가 2000년부터 새별오름에서 열렸다. 제주사람들의 삶의 방식은 30여년 사이에 엄청난 변화를 겪는다. 1970~8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농가에서는 소를 기르며 밭을 경작하고 오름에 말과 소를 방목하며 살았다.

당시 방목을 맡았던 말테우리(말몰이꾼을 뜻하는 제주 방언)와 쉐테우리(소몰이꾼을 뜻하는 제주 방언)는 중산간지대 양질의 목초지를 찾아 다니며 풀을 먹였다. 이때 중산간지대에 묵은 풀을 없애고 해충을 구제하기 위해 목초지에 불을 놓아 질 좋은 새풀이 돋아나도록 불놓기를 했는데 이를 제주어로 '방애(불)놓다' 라고 했다.

이러한 선인들의 풍습을 현대적 감각에 맞게 디자인한 것이 지금의 들불축제이다. 벌써 22년째 축제가 이어지는 동안 축제광장과 주차장을 만들기 위하여 주변초지를 매입하고 관광객을 위한 볼거리, 먹거리, 즐길거리 등 프로그램을 다양화했다. 축제가 인기를 끌면서 사람들의 호기심을 채울 또 다른 프로그램이 계속 등장한다. 1회부터 22회까지 들불축제 방문객은 약 500만 명쯤으로 추산하고 있다.

2019년 들불축제가 끝난 새별 오름의 풍경

지난 4월 9일 (사)제주참여환경연대는 새별오름의 훼손 실태를 조사했다. 앞으로 한 달에 1회, 약 1년간 새별오름 훼손 실태를 모니터링하고 그 대안을 모색해 볼 예정이다. 들불축제가 끝난 지 한 달이 지나고 있어 현장정리가 깔끔하게 되어 있으리라는 생각과 달리 출입통제, 현장복구상태, 생태복원 등 하나도 제대로 된 것이 없었다.

폭죽을 쏘아 올렸던 자리, 사람이 머물렀던 자리, 불을 질렀던 자리, 차가 다녔던 자리에 어김없이 큰 상처를 남겼다. 새별오름에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을, 아니 매년 새로 각인될 문신이 있다. 마치 말이나 소등에 거대한 불쏘시개로 지져버린 듯, 커다란 생채기가 있는 것이다.

이런 곳은 비가 오면 물과 흙의 압력으로 토사가 쓸려 내려가 골이 생기기도 한다. 불에 태울 나무 등을 나르며 만들어진 길은 관광객들이 지름길인 줄 알고 올라다녀 이미 중앙으로 길이 나있다. 타다 남은 것들, 쓰레기들, 형체를 알 수 없이 녹아버린 것들, 화약 잔재물, 아직도 새별오름에 박혀 있는 철근, 쓰러져 방치된 소화전, 폭약이 터져 파인 곳, 훼손된 정상부, 어지러이 날아간 탐방로매트, 속살이 드러난 탐방로 등등 일일이 나열하기도 힘들 정도다.
 
오름 한가운데로 길이 나 있는 모습
▲ 축제가 쓸고간 새별오름 오름 한가운데로 길이 나 있는 모습
ⓒ (사)제주참여환경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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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놀이를 하기 위하여 터트린 폭약의 흔적은 산정부를 넘어 쭉 이어지고 있으며 탐방로매트는 사람에 치이고 바람에 날리고 이리저리 널브러져 있다. 탐방로매트를 설치할 때 주변환경을 고려하지 않은 시공도 새별오름을 파괴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이날은 바람이 엄청 불어 사람이 거의 올라오지 않았음에도 이미 다녀간 탐방객들에 의해 파괴되고 있는 새별오름의 정상은 이미 한계점에 다다르고 있다.

답압이란 인간이나 가축 또는 중장비 등에 의해 가해진 압력으로 토양이 단단해지는 현상을 말한다. 심할 경우 토양이 벌건 속살이 드러나다 못해 많은 수의 식물 뿌리가 밖으로 노출되어 죽는 사례도 발생하는데 도시주변의 공원이나 등산로에서 쉽게 볼 수 있으며 제주오름에 가해지는 답압은 그 이상의 심각한 수준이다.

답압이 심해지면 새별오름은 소리 없이 죽어갈 수밖에 없다. 오름 이용자가 증가할수록 초지에서 나지로 바뀌게 되는데 이를 방지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이용자의 통제다. 하지만 이곳 새별오름을 포함한 제주오름에서 이용자를 통제하는 장치는 어디에도 없다. 이렇듯 축제가 끝나면 아무렇게나 방치해도 되는 것이 자연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축제를 지속하고 있다.
 
정상부 훼손 흔적
▲ 새별오름 정상부 훼손 흔적
ⓒ (사)제주참여환경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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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한 축제인가

제주도가 슬로건으로 내걸고 있는 문구는 다름이 아닌,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청정제주'이다. 과연 이렇게 하고 있을까.

인위적으로 화약을 터뜨려 불을 지르는 행위를 해마다 지속하는 방식이 과연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것일까. '역사'와 '축제'라는 이름을 내걸고 있지만, 자연과 함께 살았던 제주 조상들의 목축 문화와는 전혀 다른,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더 이상 이런 흐름으로 나아가서는 안된다. 

우리는 왜 불놓기를 하고 있는지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자연에 상처를 주면서까지 들불을 억지로 놓아야 하는지 다시 생각해보자.  축제의 감동은 불꽃이 수그러드는 순간뿐이다. 자연스럽지 않은 인위적인 불은 자연에서 전혀 필요가 없는 것이다.

자연에 상처를 주며 보여주는 방식이라면 차라리 들불축제를 하지 않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들불축제 이후 생채기가 드러난 모습
▲ 새별오름 들불축제 이후 생채기가 드러난 모습
ⓒ (사)제주참여환경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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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제주도, 제주시에서 시행하려고 하는 '새별오름에서의 들불축제'는 만행이고 폭력이라고밖에 할 수가 없습니다. 정월대보름이 되면 새별오름 남쪽 경사면에 온통 기름을 쏟아 붓고 오름에 불을 놓습니다. 이런 불장난이 축제가 되어서도 안될 일이지만, 이런 폭력과 만행이 어떻게 이 시대에 가능한 일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제주도의 축제라고 하면, 천혜의 자연환경과 청정을 기반으로 생명성이 담보된 축제, 즉 문화를 생각해도 부족한데 폭력과 만행은 당장 막아내야 합니다."

- '새별오름  들북축제'를 막아주기를 청원합니다' 중에서

작년 봄 '새별오름  들북축제'를 막아주기를 청원합니다'라는 글에서 청원자는 폭력적인 들불축제를 막아 달라고 호소했다.
 
새별오름
▲ 제주들불축제 새별오름
ⓒ (사)제주참여환경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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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객의 대다수는 축제를 즐기며 놀다 떠난다. 그들이 남기고 간 모든 것은 남은 사람의 몫이다. 환경훼손 또한 남은 사람의 몫이고 그 대가는 남겨진 사람의 몫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새별오름에 지금 필요한 것 

내가 즐기고 있는 축제가 자연과 새별오름을 위하는 축제가 아니라면, 단호하게 거부해야 한다.

"새별오름은 사람들에게 밝은 정기를 안겨주고 어둠의 빛을 밝히는 상서로운 기운으로 무한한 희망을 선사하는 오름으로 다가올 것이다."

신영대 교수는 <제주의 오름과 풍수>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하지만 혹자는 이렇게 적을지 모른다. "부질없는 새별오름의 영혼과 무심코 지나가는 바람과 그 땅 위를 어쩔 수 없이 지나가는 사람만이 형태만 남아 있는 새별오름을 무심히 기릴 것이다."

그 지역주민에게는 그곳에서의 삶과 꿈의 기억이 있다. 우리의 추억이기도 하다. 머지 않아 자연을 치유하는 대가가 관광수입을 앞지를 것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

새별오름이 평안하기를 기원하며...

태그:#새별오름, #제주들불축제, #훼손오름모니터링, #제주참여환경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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