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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의 흰머리는 중후함. 여자의 흰머리는 노후함?
 남자의 흰머리는 중후함. 여자의 흰머리는 노후함?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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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50대에 들어선 남편의 흰머리가 부쩍 늘었다. 염색을 권하자 남편은 생각해 본 적도 없다는 듯이 말했다.

"염색은 무슨... 이렇게 자연스럽게 나이 먹는 거지. 괜찮아."
"맞아. 흰머리가 나는 게 죄도 아니고. 나도 한 달에 한 번 해야 하는 뿌염(뿌리 염색) 너무 지겨워. 나도 이제 하지 말까 보다."
"넌 아직 이르지 않나? 염색하지 그래. 그러다 할머니처럼 보이면 어떻게 해?"


남편과 나는 1살 차이다. 아니, 남편은 12월생이고 나는 4월생이니까 4개월밖에 차이가 안 난다. 그런데 왜 나한테는 염색을 강권하는 걸까? 남자들에게 흰머리가 섞이면 중후함이고, 여자들은 노후함인가.

#goinggray
   
 고잉 그레이의 동참자들
 고잉 그레이의 동참자들
ⓒ instag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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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색하지 않는 흰머리는 전 세계적 중년 여성들의 관심사인 듯하다. 사진 공유 SNS 검색창에 염색하지 않고 흰머리를 유지한다는 단어인 '고잉 그레이(#goinggray)'를 치니 24만 개가 넘는 사진이 뜬다. 대부분 여성들의 흰머리 사진이다. 사람들은 인종과 국경을 뛰어넘어 '좋아요'를 누르며 공감을 표시하고 있었다. 그만큼 흰머리 아니 실은 '나이 들어 보이는 외모'에 대해 여성들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

쉴라 제프리스는 책 <코르셋-아름다움과 여성혐오>에서 섭식장애, 성형수술의 위험성만 주목할 것이 아니라 화장이나 제모, 염색, 파마처럼 여자들의 일상적인 미용 관습도 탐구할 가치가 있다고 말한다. 미용 관습에 동원되는 화학 물질과 동물 유해 물질이 신체 건강을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UN 정의상 유해 전통/문화 관습은 무엇보다도 성인 여자와 여아의 건강에 해롭다는 특징이 있다. 화장은 이 기준에 잘 들어맞는데, 여자가 미용 목적으로 머리 얼굴 몸에 바르는 물질은 직접적으로 건강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머리 염색약은 방광암을 유발한다고 알려져 있다. 미국에서 방광암에 걸린 여자와 걸리지 않은 여자를 반반으로 3,000명을 조사한 결과, 흡연 여부를 조정하고 나서도 (……) 한 달에 한 번 이상 염색약으로 머리를 염색하는 기간이 1년을 넘어선 여자는 그렇지 않은 여자에 비교해 방광암 발병 위험이 2배 높았다. 일하면서 염색약에 노출되는 미용사들 역시 발병 위험이 증가했다." (286쪽)
 
습관적으로 하던 염색에 사용된 약이 이렇게 위험했다니 깜짝 놀랐다. 나 역시 염색할 때마다, 두피가 따끔따끔하거나 눈이 따가운 적이 많았다. '염색약은 원래 독한 것'이라고 안일하게 생각했었다. 염색약에 거의 들어가 있는 파라페닐렌다이아민(PPD) 성분 때문인데 심한 경우 두드러기나 진물, 호흡곤란, 실명 위기까지 간다고 한다.

아무리 적게 들어 있어도 그런 물질을 내 몸에 직접 바른다는 것이 무서워졌다. 또, 염색할 때 미용실에서 1시간 넘게 보내는 시간과 5만 원의 적지 않은 비용, 흰 머리나는 시기에 맞춰 예약하고 머리를 관리하는 데 소모하는 에너지도 나를 지치게 한다.

쉴라 제프리스 역시 염색을 포함한 미용관습이 여성들의 건강뿐 아니라 돈, 시간과 에너지를 빼앗는다고 강조한다. 반면에 남자들이나 화장을 피하는 여자들은 다른 곳에 시간과 돈, 창조성, 감정적 에너지를 쏟을 수 있다.

미용 하는 여자들이 뺏긴 것들

미용 관습은 여자의 일생에서 수년의 시간을 앗아가며, 그 재능을 활용해 꿈을 좇을 에너지를 거울 앞에서 소비하게 만든다. 많은 여성들은 비현실적 아름다움에 가까워지려는 노력과 실패 속에서 육체적, 정신적 상처를 받는다.

여기에 패션과 미용 산업이 얽힌 "패션-미용 복합체"가 끼어든다. 그들은 여자의 신체를 예찬하는 척 하지만, 실제로는 여자들이 스스로 어딘가 부족하다고 느끼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다. 그래야 자기네 상품을 더 많이 팔 수 있기 때문이다. 여성들은 자신의 몸을 "변화시키거나 그대로 유지하려면 온갖 용감한 처치"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주름 방지 크림은 보톡스로, 보정 속옷은 지방 흡입으로 진화하며 아름다움을 강요받는다.

페미니즘 철학자 샌드라 바트키는 왜 여자 전반이 서구 미용 관습을 비판하는 데 어려움을 겪곤 하는지 섬세하게 짚어낸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여자들은 '패션-미용 복합체'에 의존하도록 묶여있다. 패션과 미용은 "과거의 교회"처럼 일단 너는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심어 준 다음 "병 주고 약 주기 식으로 죄책감과 수치심을 없애는 유일한 도구인 것처럼 나선다. 뉘우치고 이걸 써보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379쪽)
 
 이제 염색은 하지 않을 테다
 이제 염색은 하지 않을 테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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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도 '고잉 그레이', 염색을 하지 않기로 했다. 화장이나 파마, 제모 등 자연스럽고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미용 관습에서 하나씩 벗어나 보려고 한다. 그 첫 번째가 염색이다. 나이 듦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당당해져 보기로 했다.

한 달이 가까워지니 하얀 머리가 송송 올라왔다. 나는 가르마 쪽에만 유난히 흰머리가 난다. 지금까지는 '벌써 염색할 때가 된 거야?'하고 한숨부터 나왔는데, 새로 난 잔디처럼 귀엽게 보인다.

그렇지만 외출할 때는 머리띠로 넘기거나 반 묶음 머리를 해서 흰머리를 감추곤 한다. 지저분해 보일까 봐, 나이 들어 보일까 봐…… 아직은 망설여지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나를 바라보는, 타인이 나를 바라보는 미용 관습의 거울은 이미 금이 가기 시작했다.

코르셋 : 아름다움과 여성혐오

쉴라 제프리스 (지은이), 유혜담 (옮긴이), 열다북스(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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