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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아주 따뜻한 책을 만났습니다. 머리가 아니라 오직 마음으로 즐길 수 있는 책을 만나 반가웠습니다. 애써 뭔가를 주장하지 않고, 조곤조곤 들려주는 순자의 이야기는 겨울 찬바람처럼 싸늘했던 마음을 스르륵 녹여주며 누군가를 그리워하게 만듭니다.

나의 그림책 이야기는 늘 스포일러입니다. 그림책의 이야기를 온전히 즐기시길 바라기 때문입니다. 이야기를 몽땅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림책을 사기 위해 급히 손가락을 놀려 온라인 서점에서 구매를 클릭한다면 나의 바람은 이루어진 것이겠지요.

아름다운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싶은 나의 소박한 바람을 스포에 담아 이제 아주 사랑스러운 그림책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표지그림
 표지그림
ⓒ 그림책공작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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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에서 서로를 바라보는 두 아이의 표정은 이야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무슨 이야기부터 꺼내야 할지.... 터져 나올 듯 말 듯, 무슨 말이라도 해보라고 말하고 싶어집니다.

두 아이는 어떤 사이일까요? 표지를 넘겨 속표지로 가면 한 아이는 친구들과 함께, 또 한 아이는 홀로 서 있음을 보게 됩니다. 나물이 가득한 바구니를 이고 혼자 걷는 아이의 이름은 순자. 그 아이를 관심 있게 바라보고 있는 친구는 분이입니다. 분이는 순자를 늘 바라보고 있기에 순이가 왼발을 잘름거리는 것도 큰집에서 더부살이하는 것도, 일만 했지 노는 걸 모르는 것도 압니다.
 
<하루 거리> 내지 그림1 순자를 바라보는 분이
▲ <하루 거리> 내지 그림1 순자를 바라보는 분이
ⓒ 그림책공작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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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동무들은 날이 저물면 마당에 멍석을 깔아놓고 별똥 떨어지는 것을 보는데 순자한테는 그게 아주 딴 세상 얘기라는 것도 알지요. 밀린 집안일을 해야 하거든요. 분이는 순자가 쑥이나 질경이를 뜯다가 갑자기 우물 안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는 것도, 미나리를 베다가 달구지 위에 누워 꼼짝도 않는 것도 압니다. 동무들과 순자를 지켜보고 있었으니까요.

동무들은 순자가 별 난 데서 꼼짝 않는 걸 보면서 혹시 '하루거리'를 앓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하루거리는 별안간에 춥고 으슬으슬 떨리는 병이랍니다. 그런데 꼭 하루 걸러 도지는 병이라서 '하루거리'라 한답니다. 오늘 괜찮다가도 다음 날이면 또 오들오들 꼼짝 못 하는 병이라지요.
 
<하루거리> 내지그림2 물 길러 가는 순자를 분이가 부르는 장면
▲ <하루거리> 내지그림2 물 길러 가는 순자를 분이가 부르는 장면
ⓒ 그림책공작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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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아버지의 호통 소리에 쭈그리고 앉아 있던 순자가 다시 물을 길으러 나가는 것을 보던 날, 분이는 보다 못해 순자에게 말을 겁니다.
 
"내가 물 좋은 약수터 아는데 같이 갈래?"

늘 혼자이고, 늘 일 만해야 하는 순자를 보다 못해, 아픈 순자를 낫게 해주고 싶어 하는 분이의 안타까운 심정이 고스란히 보입니다. 얼굴만큼 마음도 참 맑고 고운 아이입니다.

분이는 순자와 함께 약수터에 가서 물할머니에게 순자의 몸이 낫게 해달라고 빕니다. 하지만 정작 순자는 자기를 죽게 해달라고 빌지요. 참말로 죽고 싶다고 덤덤하게 말하는 순자를 보며 분이는 어쩔 줄을 모릅니다. 얼마나 힘들었기에 죽고 싶어했을까요? 순자의 살아있는 날들은 하루하루가 고통이었나 봅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고통 속에서 순자는 그렇게 삶을 놓아버리고 싶어했습니다.

분이는 순자가 죽고 싶어하는 것을 알게 되자 다른 동무들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동무들은 모두 마음을 모아서 저마다의 방법으로 순자의 하루거리를 낳게 하려고 애를 씁니다.

하루거리는 뱀이 물어간다고 젖은 수건을 순자의 목덜미에 던지고, 고약한 병은 고약하게 맞서야 한다고 뒷간에서 달걀을 먹게 하고, 순자에게 도둑이 들었다고 순자 머리에 새끼줄을 씌우고 냄비를 퉁탕퉁탕 두들기며 도둑을 냄비에 가둔다고도 합니다. 동무들이 일을 벌일 때마다 순자는 나은 듯하다가 다음날이면 다시 아프고 맙니다.

도무지 방법이 없자 동무들은 다른 생각을 해냅니다. 순자가 참말로 죽고 싶은지 알기 위해 먹으면 죽을 수 있는 약을 만듭니다. 그리고 순자를 불러 말합니다.
 
"순자야! 이거 기수가 약방에서 구했나 봐!"
"이거 먹으면 정말 죽는 거야."
"순자 너, 그렇게 못 살겠다면 죽어야지 어떡하니?"
"맞아, 그냥 한입에 넣고 꾹 삼켜!"

순자는 한참 망설이다가 약을 받아서 주머니에 넣었습니다. 그러고는. 가만히 방에 눕습니다. 물 한 사발에 약을 삼키구요.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그만 살고 싶을 만큼 힘들었을 어린 순자의 고통스러운 삶을 생각하면 가슴이 시려옵니다.

그런데 이튿날 순자가 동무들에게 잘름잘름 다가옵니다.
 
"야야, 너희들이 준 약 먹었는데... 안 죽어."
"어머, 순자 너 몸이 튼튼한가 보다."
"그거 먹으면 다 죽는데, 너만 안 죽는다 야."
"우와, 순자 참말로 오래 살려나 보다!"
"다행이지 뭐야. 너 죽었으면 우린 어쩔 뻔했니?"

그날 순자는 동무들과 함께 처음으로 해가 저물도록 놉니다. 멍석에 누워 별똥도 봅니다. 그리고 그다음 날 하루거리는 별똥처럼 뚝 떨어집니다. 게다가 이제 순자는 더이상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하루거리> 내지그림3 순자와 동무들이 해가 저물도록 노는 장면
▲ <하루거리> 내지그림3 순자와 동무들이 해가 저물도록 노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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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게 너무 힘들어 죽고 싶었던 순자를 살린 것은 가만가만 다가온 분이와 동무들이었습니다. 순자의 마음을 다독이고 살고 싶게 한 것은 바로 순자의 아픔에 공감하고 어떻게든 순자의 문제를 해결해주려고 한 진심이었던 것이지요.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여행을 가고, 혼자 사는 게 대세인 세상이지만 고민만큼은 혼자 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살기 싫을 만큼 커다란 고민이 나를 짓누를 때 나의 고민을 들어줄 소중한 친구 한 명을 떠올릴 수 있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마음의 병을 끙끙 앓다가 정말 세상을 떠나버리는 사람들이 종종 생기는 세상이라 슬펐습니다. 힘든 순간에 서로의 마음을 들어주는 친구가 한 사람만 있다면 그것 하나만으로도 살고 싶어지지 않을까요? 순자처럼 말입니다.

순자는 여전히 가난하고, 여전히 더부살이에, 일거리도 여전히 지치도록 많은 세상을 살아가야겠지만 이제 동무가 있으니 살고 싶은 삶을 살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분이처럼 가만가만 지켜보다가 달려와 주는 친구가 있다면 참 좋겠습니다. 나도 그런 친구가 되기 위해 가만히 주위를 돌아보아야겠습니다.

그런데, 순자는 왜 왼발을 잘름거리며 걸었을까요? 왜 큰아버지 집에서 더부살이를 했을까요? 그리고 동무들이 순자에게 준 약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요? 죽고 싶어 약을 먹고 가만히 누웠던 순이의 방은 어떤 방일까요? 궁금함을 참지 못하겠다면 아름다운 그림책 <하루거리>를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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