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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혼식장.
 결혼식장.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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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고민해본 사람이라면, 결혼이 마음속에 떠오른 순간이 있을 것이다. '결혼을 해볼까'라고 소설 속 주인공처럼 공상에 빠지는 순간 말이다.

2019년 여름, 조금 특별한 결혼식의 청첩장을 받았다. 청첩장에는 분홍색, 연두색 양복을 빼입고 쑥스럽게 웃는 신랑들이 있었다. 두 신랑의 결혼식이었다. 부케를 받기로 한 애인은 결혼식에 무엇을 입고 갈지, 부케를 잘 받을 수 있을지 고민이 많았다. 나는 청첩장의 두 신랑과 안면이 없었지만, 성소수자 인권 운동 속에서 스치듯 인사를 나눴을지 모를 사람들이었다. 이들이 용기를 내서 공개결혼식을 계획하고 성소수자들을 잔뜩 초대한다고 생각하니 나도 벌써 그 용기를 나눠 받고 있었다.

결혼식을 다녀온 날 밤에 나는 좀처럼 잠들지 못했다. 몇 번이나 가봤던 결혼식장, 크게 다르지 않은 식순과 익숙한 뷔페 음식이었는데도 생경하고 짜릿했다. 여느 결혼식처럼 서로 잘 모르는 사람들로 가득했는데도 그 결혼식의 하객들 사이에는 두터운 유대가 있었다. 한마음으로 결혼 주인공들의 만남을, 이들이 지나온 시간과 앞으로의 약속을 축하하는 것이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무척 들떴다. 나도 친구와 지인을 모아 내 애인과 나, 우리집 고양이가 함께 만들어가는 삶을 공유하고 축하받고 싶었다. 내 삶의 한쪽을 지켜준 친구들을 또 다른 친구들에게 소개하고, 지인들의 기억으로 재구성되는 내 삶을 선물 받고 싶었다. 결혼식이라는 그럴 듯한 핑계로 멋지게 꾸미고, 맛있는 음식을 나누며, 노래를 부르고 싶었다. 혼자 떠올린 상상은 점점 커졌고 구체적으로 그려져서, 그날 밤은 결혼을 실행할 방법을 찾아서 결혼식장을 검색하다가 잠이 들었다. 설사 실현할 수 없더라도 내가 무엇을 욕망하는지마저 잊고 싶지 않았다.

함께 사세요, 동성 커플은 '빼고'?

나는 지난해 크리스마스 이후의 조금 한산한 겨울날에 결혼했다. 동성혼이 법제화된 미국에서였다. 당시 나는 먼저 미국에서 유학 생활 중이었고, 한국에서 오랫동안 같이 살았던 애인과 함께 이주를 계획하던 중이었다. 최근 미국에서 결혼한 성소수자 커플, 특히 레즈비언 커플의 이야기를 종종 접하는데 우리의 상황은 조금 달랐다. 우리는 둘 다 한국 국적이고, 미국의 가족초청비자(F2)가 필요했다.

미국 유학을 위해서는 학생비자(F1)를 받아야 하고, 그 배우자는 동반이민을 허락하는 가족초청비자(F2)를 신청할 수 있다. F2는 미국에서 학교를 다니거나 일을 하는 최소한의 사회활동도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시체 비자로 불리지만, 유학이나 취업 없이 이민을 갈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다.

이 이민법은 사회가 부부관계를 지켜줘야 한다는, 사회의 최소 단위는 '가족'이라는 이데올로기에 기반하고 있는데 이때의 가족은 기본적으로는 법적 혼인을 한 이성애 가족을 의미한다. 2019년 한국은 이미 1인 가구가 전체 가구 중 30%를 차지했고, 사람들은 '정상가족'에서 벗어난 다양한 가족과 공동체를 꾸리고 있다. 그러나 편협한 가족의 정의와 이를 떠받치는 결혼제도는 다양한 가족의 양상을 인정하기보다 갈수록 많은 이들을 법의 보호 밖으로 밀어낸다.

미국 성소수자들의 오랜 투쟁의 결과로 미국은 2016년 모든 주에서의 동성혼이 법제화됐다. 그렇다면 동성혼이 법제화되지 않은 한국의 동성 커플이 미국 이민을 위한 가족초청비자(F2)를 신청할 수 있을까?

먼저 미국 대사관에 문의 메일을 보냈다. 국내 동성결혼이 법제화되지 않은 까닭에 동반자관계(Domestic partnership)를 증명해서 가족초청비자(F2)를 신청할 수 있냐고 물었다. 대사관은 "배우자 및/또는 21세 미만의 미혼 자녀는 F2 또는 M2비자가 필요하다"는 자동응답기 같은 소리만 늘어놨다. '배우자' '자녀'로서 법적 인정을 받을 수 없는 이들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하지 않는다. 사실상 동성 커플의 존재를 지워버리는 이런 식의 대답은 성소수자 차별에 대한 어떤 책임도 지지 않으려는 전략일 것이다.

나는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미국 대학교의 성소수자 센터, 국제학생센터, 유색인센터, 학과 사무실 모든 곳에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누구도 한국 동성 커플의 이민에 대해 들어본 바가 없었고 관심도 없었다. 변호사와 반드시 상담해보라는 조언 아닌 조언만 반복됐고 미국 내 성소수자 안건을 전문으로 하는 변호사 사무실 리스트만 쌓여갔다. 보기만 해도 통장이 텅텅 비는 소리가 들리는 미국 변호사들에게 아직도 연락해보지 못했다.

우연과 특권에 기대지 않고 살고 싶습니다
 
 10분 동안 결혼식과 혼인신고를 마치고 발급받은 혼인 증명서.
 10분 동안 결혼식과 혼인신고를 마치고 발급받은 혼인 증명서.
ⓒ 오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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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혼자서 유학을 왔다. 미국에서 몇몇 성소수자 커플, 결혼한 커플도 만났지만 나와 같은 이민자 동성 커플의 사례를 찾을 수 없었다. 가족초청비자(F2)를 받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보자는 생각으로 겨울방학 때 애인이 미국에 왔고 우리는 한국의 구청과 비슷한 공공기관(County), 결혼증명 사무실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증명서를 발급받았다.[1] 

사무실 직원이 주례를 서고 정해진 혼인 서약을 읽으면 끝이었다. 결혼식은 구청 건물 2층 갈색 벽 앞에서 10분 만에 끝이 났다. 감사히도 동성 커플인 친구들이 법적 증인이자 하객이 돼 주었고 아낌없는 축하와 축복을 해줬다. 두 명의 친구와 고급스러운 타이식당에서 연회를 했고, 그 후에 버스로 1시간 거리의 도시로 신혼여행을 갔다.

최초에 욕망한 결혼식과 달랐지만 만족스러웠다. 이 결혼이 많은 우연 그리고 한국의 성소수자 커플에게 좀처럼 주어지지 않는 특권의 결과물임을 알고 있다. 나는 운과 특권이 좌지우지하는 삶을 살고 싶지 않다. 내가 누린 이 욕망과 기회를 모두가 누릴 수 있는 사회에서 살고 싶다.

이번 <왜, 동성혼> 특별기획 첫 편(관련 기사 : 병원, 직장, 장례식장... '투명인간'이 된 부부들)은 동성혼 법제화가 인구의 건강수준에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를 소개한다. 왜 동성혼 법제화 이후에 청소년의 자살 시도가 감소했을까? 동성혼 법제화와 청소년 자살을 직접적인 인과관계로 보는 것은 억측일 것이다. 그러나 사회적 소수자가 평등하게 욕망하고, 그것을 시도할 수 있도록 하는 사회 제도는 분명 우리의 불안정한 삶에 안도감을 준다. 내가 평균과 달라도 함부로 평가받거나 고립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공동체와 연결된 욕망과 삶을 누릴 수 있다는 믿음을 준다.

'성소수자들이 혼인할 권리를 꼭 가져야 하냐'거나, '이성애자도 기피하는 결혼을 왜 하려고 하냐'는 질문은 익숙한 공간 바깥에 있는 타인의 삶을 상상하려 하지 않는 게으름과 비겁함의 방증이다. 우리 사회는 자신의 삶을 돌볼 여유도 허락하지 않고, 조급한 삶을 사는 것이 인생에 제대로 투자하는 방법이라 타일러왔다.

정해진 대로 살지 않으면 낙오자가 될 거라는 재촉과 압박 속에서 동성혼 법제화는 나와 상관없는 일, 심지어 소수자들이 다수자의 권리를 침범하는 경쟁으로 여겨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테두리 밖을 상상할 여유가 없을 때일수록, 우리가 기댈 것은 차별이 아니라 차별에 저항하는 평등이다. 동성혼 법제화가 가져다줄 수 있는, 더 많은 평등과 '평등한 욕망들'을 기대한다.[2]  

[1] 주마다 다르지만 미국은 기본적으로 외국인들의 혼인신고도 내국인과 같이 간단하게 이뤄진다. 신분증을 지참해서 혼인 당사자들과 증인 1명이 신청서를 작성하고 7만 원 정도의 신청비를 지불하는 방식이다.

[2] 이 글을 쓰는 데 김원영, <희망 대신 욕망: 욕망은 왜 평등해야 하는가>(2019, 푸른숲)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오렛씨는 퀴어여성네트워크 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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