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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13일 국회 앞에서 노조법 2조 개정안 통과를 촉구하고, 특수고용노동자에게 재난생계소득 지급할 것을 요구하는 집회가 열렸다.
 지난 4월 13일 국회 앞에서 노조법 2조 개정안 통과를 촉구하고, 특수고용노동자에게 재난생계소득 지급할 것을 요구하는 집회가 열렸다.
ⓒ 민주노총 특수고용노동자대책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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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권 사각지대에 놓인 일하는 사람들에게 당면한 물음이 있다. 우리는 '노동자'로서의 법적 지위와 그에 걸맞은 권리를 누리고 있는가? 

특수고용 노동자(아래 특고)나 플랫폼 노동자들이 대표적이다. 이들이 겪는 안전보건 문제를 얘기할 때마다 '노동자성' 문제가 근본적인 쟁점으로 거론된다. 노동자성이 인정되지 않음에 따라, 이들이 겪는 문제는 노동법뿐만 아니라 산업안전보건법 등 제도 내에서 해결되지 못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더욱이 노동자 스스로 요구하지 않으면 논의조차 되기 어렵다. 집단으로 목소리를 내는 것이 중요하지만 함께 모여서 노동조합을 만드는 일조차 쉽지 않다. 이런 난관을 넘어서기 위해 그동안 노동운동계에서는 모든 노동자에게 노동3권을 보장하라고 요구했다. 

'전태일 3법 제정'의 의미와 노동운동의 과제는 무엇일지, 지난달 19일 박정환 서비스연맹 정책기획국장을 연맹 사무실에서 만나 얘기를 나눠보았다.

노동권 사각지대의 핵심 쟁점, 노동자성 인정

박정환 정책국장은 노동조합의 법적 지위를 인정받는 일이 난관이었다고 말했다. 서비스연맹에서도 특고와 플랫폼 노동자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활동을 벌였는데, 그때마다 부딪혔던 문제가 바로 노동조합을 만드는 일, 특히 설립 필증을 받는 것이었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노조법)' 제10조(설립의 신고)에 따르면, 설립신고서를 접수하면 행정관청에서 3일 이내에 신고증을 교부하게 돼있다. 물론 법에 규정된 사항에 따라 행정관청에서 설립신고서를 반려하거나 보완을 요구할 수 있다. 하지만 정당한 이유 없이 신고필증을 기간 내에 교부해주지 않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박정환 서비스연맹 정책기획국장
 박정환 서비스연맹 정책기획국장
ⓒ 박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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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환 정책국장은 가전통신서비스 노동자의 사례를 들며, 노동조합 설립에 대한 법적 인정 문제를 지적했다. 서비스 연맹 산하의 전국가전통신서비스노동조합 코웨이 코디·코닥지부는 노동조합 설립 필증을 받는 데 무려 103일이나 걸렸다.

회사와 노동부를 상대로 한 투쟁 끝에 지난 5월 13일 노동조합 필증을 발부받았다. 그리하여 가전제품 방문판매서비스 노동자들이 노동자로서 법적 지위를 보장받고 집단적으로 권리를 정당하게 행사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그동안 행정관청에서는 노동자성에 대해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인정해주려는 태도를 보이지 않았어요. 노조법에서는 신고제로 규정하고 있지만, 실제 행정에서는 허가제처럼 운용되고 있었죠. 최근 노동부 또한 노조설립에 대한 태도를 바꾸고 있다지만, 여전히 특수고용노동자, 플랫폼 노동자처럼 노동권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에 대해서는 보수적이었죠. 

노조법 제2조를 개정하는 것은 이러한 노조설립 절차를 변화시키는 것이죠. 합법노조와 불법노조, 법외노조 구분이 의미가 없어지는 거예요. 모든 일하는 사람들이 결사의 자유를 보장받을 수 있죠."


전태일 3법 중 한 축은 바로 노조법 제2조를 전면개정하는 것이다. 현행 노조법 제2조 제1항은 노동 3권을 보장받는 근로자를 임금으로 생활하는 자로 한정한다. 같은 법 제2조 제2항은 사용자를 해당 사업의 사업주 등으로만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제1항을 개정해 '특수고용노동자의 단결권'을 쟁취하고, 제2항을 개정해 '원청의 사용자성'을 확보하고자 한다. 이러한 변화의 연장선에서 '플랫폼 노동자의 노동권'을 보장하려는 것이다.

단결권 보장, 자주적 노동운동의 기초

노동자들의 집단적 움직임이 중요한 이유는 일터의 노동환경을 노동자 스스로 바꿀 수 있는 토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동권 사각지대에 놓인 노동자들은 단결권이 법적으로 보장되지 않았다. 이로 인해 단체교섭을 하더라도 사업주와의 교섭에서 어려움이 많았다. 

노조로서 안정적 지위를 확보하지 못함에 따라, 안전보건 문제를 논의하거나 작업환경을 바꿔나가는 일에서도 충분한 역량을 마련하거나 발휘하기 어려웠다. 그러다보니 사업장 바깥에서 정부와 법원의 조치가 이를 대신하면서, 제대로 된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하기도 했다. 

특수고용노동자나 플랫폼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법적 지위를 보장받게 되면, 더 확실한 자주성을 획득할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자신들의 조건에 맞게 요구를 만들고 관철시켜 나갈 수 있다.

물론 노조를 결성하고 단결권을 보장받는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서비스업처럼 고용구조가 복잡한 경우, 교섭을 진행하면서 드러내고 대응해야 할 쟁점이 많다. 노동자성을 인정받는 것뿐만 아니라, 사용자성을 드러내고 복수의 사용자를 대상으로 각각의 책임을 구체화하는 게 필수적이다. 박정환 정책국장은 면세점 노동자의 사례를 소개했다.
 
'코로나19' 세계적 대유행(팬데믹) 사태의 영향으로 17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면세점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코로나19" 세계적 대유행(팬데믹) 사태의 영향으로 17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면세점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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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구조와 고용구조가 복잡해지면서, 노동권 사각지대가 만들어지는 거 같아요. 서비스업이 대표적이죠. 면세점의 서비스노동자는 면세점의 여러 가게 중에서도 특정 브랜드의 매장에서 일하고 있죠. 그런데 면세점이나 해당 입점 업체가 아닌 면세점 판매위탁법인에 고용되어 있어요. 면세점-입점 업체-판매위탁법인 3자 간 라이선스 계약을 맺어서, 인력을 공급받는 것이죠.

그런데 문제는 면세점 서비스노동자가 일하는 장소가 면세점과 해당 매장이라는 점이에요. 예컨대 화장실 개선, 의자 비치 등 노동환경 개선 요구를 하려면, 면세점과 매장과 협의가 필요한 거예요. 고객 응대 과정에서 발생하는 감정노동을 예방하기 위해서도 마찬가지죠. 

결국은 지시·관리·감독 등의 실질적 사항 즉, 공동사용자성을 문제 삼아야 하죠. 면세점 위탁법인과 협상 후 업체와 면세점에 요구를 전달하는 이중 교섭 전략만으론 한계가 있어요. 실효성 있는 조처를 하게 하고 실질적인 종속관계를 드러내기 위해선 이들 모두와 교섭할 수 있어야 해요. 노조법 제2조 개정이 그 발판이 될 수 있어요."


플랫폼 산업,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플랫폼 산업 또한 서비스업과 유사한 구조를 지니며, 노동자성 인정을 위한 투쟁의 연장선에 있다. 온라인 플랫폼, 클라우드 등이 노동을 매개하는 새로운 창구로 등장하게 되면서, 복잡한 노동관계의 또 다른 유형이 등장했다. 

동네 배달대행사와의 위탁계약이나 인력관리업체와의 아웃소싱 계약 등을 맺음으로써, 사용자와 노동자 사이의 거리가 멀어지고 복잡해진다. 이에 따라, 법이 규정한 사용자와 노동자의 지위는 현실에 대입할 때마다 불명확해진다.

그럴 때, 플랫폼 노동자의 노동자성을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는 여전히 논쟁적이다. 한편에서는 플랫폼 자본주의, 플랫폼 산업이라 불리는 것들은 '혁신'과는 거리가 멀며, '새로운 노무관리' 수단일 뿐이라고 지적한다. 기존 노동자 개념으로부터 배제된 노동자들을 포함시키기 위해 법규정을 넓혀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지만, 특수고용노동자와 마찬가지로 온전히 전통적인 노동자성 개념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현실적 문제들이 있다고 지적한다. 

예컨대, 자영업자로서의 특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있는지, 복수의 사용자가 있을 때 어떻게 판단할 것인지, 사업장 변경이 잦은 노동자들에게 충분한 법적 권리가 보장될 수 있는지 등의 문제가 남는다. 그리하여 법제도를 단순히 확장하는 것으론 부족하고, 기존의 노동자 개념 자체를 문제삼아 재규정하기 위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얘기되기도 한다.

박정환 정책국장은 이러한 논쟁 가운데 중요한 것은 해당 산업과 노동시장 내에서 질서와 규범을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누구까지 사용자와 노동자로 볼 것인지, 그때 말하는 사용자와 노동자는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다퉈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주적 노동운동을 만들어가는 게 중요하며, 이런 점에서 전태일 3법 입법 요구가 중요한 과제로 부각되는 것일 테다.

단결권 보장을 넘어선 노동운동의 과제
 
배달원 노동조합 라이더유니온 관계자들이 17일 오후 서울 송파구 배달 앱 '배달의민족' 운영사인 '우아한형제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안전배달료 보장, 지역 차별 개선 등을 촉구하고 있다.
 배달원 노동조합 라이더유니온 관계자들이 17일 오후 서울 송파구 배달 앱 "배달의민족" 운영사인 "우아한형제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안전배달료 보장, 지역 차별 개선 등을 촉구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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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남는 문제는, 단결권이 법적으로 보장된다고 해도 현실에서 노동자들이 단결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사실이다. 

플랫폼 노동자들은 온라인 플랫폼으로부터 일감을 할당받는다. 그러니 다른 노동자를 한정된 일감을 두고 경쟁하는 사람으로 인식한다. 임금을 더 많이 받기 위해 지금과 같은 고용 형태를 감내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에 따라 노동자들 간의 연대가 쉽지 않을 수 있다. 

서비스업 특고의 경우 고용 기간이 짧은데, 이는 노동조건이 불안정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노동자가 이직을 선호하는 경향도 있다. 이직을 통해 자기 가치를 올려 더 높은 임금을 보장받을 수 있기 때문이고, 상황에 따라 노동시간을 조정하거나 잠시 일을 그만둘 수 있는 게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서비스업 특고의 경우에도, 고용유지 및 소득안정 등의 문제를 놓고 고민이 깊었다. 이때 돌파구를 만들기 위해, 산재보험을 비롯한 4대 보험 문제 등 안전보건, 복지 의제와 관련해서, 노동자성 인정의 중요성 및 연대의 필요성 등을 알려내려는 시도도 있었다. 

박정환 정책국장 또한 서비스 노동자들의 경우에도, 안전보건과 복지 문제를 고민하기 시작하자 노조 활동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고 강조했다. 안전보건을 비롯한 다양한 노동 의제를 함께 고민하고 투쟁하기 위한 집단으로서의 단위, 노동조합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 

전태일 3법 제정을 계기로 플랫폼 노동자의 노동조합 조직화가 더욱 활성화되고, 나아가 플랫폼 노동자 전반을 아우를 수 있는 플랫폼이 만들어지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 박기형님이 작성하셨습니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잡지 <일터> 6월호에 연재한 글입니다.


태그:#특수고용노동자, #노동관계법, #근로자성, #플랫폼노동, #전태일3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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