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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쾌된 보미
 완쾌된 보미
ⓒ 김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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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2시가 넘어 집에 들어오니 보미가 반갑다고 달려든다. 들어올려서 가슴에 안고 토닥토닥 두 번 하고 내려놔도 다시 안아달라고 아우성이다. 보통 때는 그렇게만 하면 되는데 오늘은 이상하다. 너도 오늘 내가 죽을 뻔한지 아는구나.

설악산에 가서 8시간 30분간 산행을 했고, 왕복 10시간 버스를 탔다. 그러고도 아파트 주차장에 자리가 없어서 상가 앞에 차를 세우고 오는 길이었다. 평소보다 늦은 귀가를 한 주인을 걱정한 마음이 고마워서 다시 안았다. 따뜻한 가슴과 복슬복슬한 털이 포근했다. 새벽에 나가면서 보미 밥그릇이 빈 것을 보고 부어줘야지 했는데, 서두르느라 그냥 나갔다. 주인을 탓할 줄도 원망할 줄도 모르는 녀석이라 더 미안했다.

내려놓으니 토끼처럼 깡총깡총 뛰더니 배변 판으로 달려갔다. 예쁜 짓을 하겠으니 자기를 봐달라는 뜻이었다. 그 모습이 귀엽고 녀석을 실망시킬 수 없어서 간식을 가져와 입에 넣어줬다. 보미도 오늘 외로웠나 보다. 이번 주는 딸이 아빠한테 가서 내일 아침에나 돌아온다. 보미가 없었다면 힘든 하루를 보내고 썰렁한 집에 혼자 있었을 테지.

반려견이 아팠을 때, 

일년 전 이맘때였다. 학원을 폐업하고 8개월간 수입이 없어서 매일 나가는 돈이 부담스러웠다. 그때 내 눈에 마트에서 파는 대용량 개 사료가 보였다. 항상 사던 사료에 비해 반도 안 되는 가격이었다. 내가 먹는 것도 조금 더 싸고 양이 많은 것을 고르는 형편이라 한번 사보자 하는 생각이 들었다. 괜찮겠지.

하지만 보미는 아직 이 상황을 받아들일 마음이 없는 것 같았다. 이틀 동안 사료는 입에도 대지 않았다.

"엄마, 보미가 이상해. 힘이 없어."

딸이 말했고, 내 눈에도 축 늘어져 있는 보미가 보였다. 탈이 났나?  장염 같은 게 걸린 건가?

"보미야, 어디 아파? 왜 그래?"

내가 물었지만 보미는 집에 웅크리고 앉아서 눈만 끔뻑거리고 있었다. 그 날 저녁에 동물병원에 데리고 갔다.

진료카드에 견종 말티즈, 성별 암컷, 나이 다섯 살, 보호자 칸에 내 이름을 썼다. 의사는 이 나이쯤이면 자궁축농증을 의심해 볼 수 있다며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다른 병을 의심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자궁축농증인데 갑자기 상태가 안 좋아진 게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필 사료를 바꾼 시점에 말이다. 이런 얘기를 내가 했고, 의사는 자궁축농증 얘기만 했다. 우선 초음파 검사를 하기로 했다. 보미의 자궁 초음파 사진을 보여주며 지금은 심하지 않지만, 언젠가는 해야 할 거라고 했다.

장염이나 다른 병에 대해서 물어보자 의사는 자기를 무시한다고 생각했는지 말투가 퉁명스러워졌다. 다른 병원에서 다시 검사를 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덜컥 수술 결정을 한다는 게 쉽지 않았다. 수술을 하더라도 이 병원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 환자 아니 보호자의 입장을 의사는 전혀 모르는 것 같았다. 초진 진료비와 초음파 검사비 해서 8만 원을 냈다.

다음날 보미는 눈에 띄게 힘이 없어 보였다. 축 늘어진 게 이러다 큰일나겠다 싶어서 아침부터 병원을 검색했다. 우선 전화를 해서 신뢰가 가는 곳을 가려고 했다. 그렇게 찾아간 병원에서도 검사도 하기 전에 자궁축농증 얘기를 했고, 수술비는 100만 원, 검사비는 15만 원이라고 했다. 치료비 때문에 말썽이 잦았는지 의사고 간호사고 수술비와 검사비에 대한 설명만 늘어놓았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다른 병인지 확인을 하려면 검사를 해야 하고 그러면 검사비가 청구되니 의사는 함부로 다른 병을 얘기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 같았다. 사람이면 어디가 아프냐, 언제부터 아팠냐, 어떨 때 가장 아프냐 등으로 추측할 수 있지만 개는 그럴 수가 없으니 의사도 반 점쟁이가 되어야겠다 싶기도 했다.

결국 5년 전에 보미를 입양한 애견샵 사장님에게 전화를 했다.

"전주에 잘 아는 병원 소개해 드릴께요. 그 원장님이라면 믿으셔도 됩니다."
  
 입원한 보미
 입원한 보미
ⓒ 김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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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군산에서 40분을 달려 전주에 있는 병원으로 달려갔다. 결국 그 곳에서 혈액검사 등을 하고 장염 비슷한 거라고 진단을 받고 입원하기로 했다. 보미 상태를 봐서도 영양제라도 맞아야지 안되겠다 싶었다. 링거를 꽂고 입원실에 갇혀있는 보미를 보니 안쓰러워서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집으로 운전해서 오면서 엄마가 미안하다고, 돈이 얼마가 들어도 좋으니까 낫기만 하라고 빌었다.

다음 날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보미가 많이 좋아졌다고, 밥도 먹는다고. '아, 다행이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오늘 퇴원해도 된다고 했다. 전주로 운전하면서 '만약 보미 상태가 더 안 좋아졌다는 소식을 듣고 가는 거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에 가슴이 죄어왔다. 이틀은 가족, 개, 생명, 돈 사이에서 무지하게 갈등하고 번민한 시간이었다. 죄책감과 연민, 안쓰러움 때문에 녹초가 돼버렸다.

병원에 도착하니 보미는 내가 와서 좋은지 방방 뛰었다. 진료비는 31만 원이 나왔다. 내 인생에 개는 보미 하나로 족하다고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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