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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시민선언의 <미국 수정헌법 제13조> 다큐멘터리 상영회 안내 포스터
 세계시민선언의 <미국 수정헌법 제13조> 다큐멘터리 상영회 안내 포스터
ⓒ 세계시민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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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시민단체 세계시민선언(공동대표 박도형, 이설아)은 서울 관악에 위치한 북카페 달리봄에서 지난 2016년 개봉한 다큐멘터리 <미국 수정헌법 제13조>의 상영회를 개최했다. 조지 플로이드 사건으로 다시금 재점화된 BLM(Black Lives Matter) 운동을 한국에서도 연대하고자 하는 목적이었다.

언뜻 생각하면 이 단체의 상영회 연대는 다소 뜬금없다. 세계시민선언이라는 단체는 자신들의 설립 목적을 '국가폭력에 저항하기 위해'라고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흑인 차별과 국가폭력은 도대체 무슨 상관 관계를 가지고 있는가?
   
혹자는 최근 미국의 조지 플로이드 사건이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인해 시작되었으니, 이는 당연히 국가폭력이 아니냐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대답하는 사람은 사실 인권 관련 이슈를 많이 접하고 관심있게 공부해 온 시민일 확률이 높다.

인종의 다양성과 관련된 문제에 잘 노출되지 않은 어떤 한국인의 입장에서는, '강경진압은 문제의 소지가 있으나, 범죄 전적이 있는 용의자를 체포하다 발생할 수도 있는 사안에 사람들이 너무 과민반응 하는 것 아닌가'라고 쉬이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개인적 경험상 이러한 사람의 수가 결코 적은 수는 아닌 것으로 사료된다.

이러한 사고방식의 기제에는 '흑인 차별은 과거에 발생한 일이지 현재에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데, 흑인들이 피해의식으로 국가에 항의하는 것 아니냐. 흑인들의 범죄율이 높은 것이 어떻게 미국의 책임이냐?'라는 생각이 깔려 있는 듯하다.

<미국 수정헌법 제13조>가 말하는 국가 주도의 '노예제'

<미국 수정헌법 제13조>는 바로 이러한 사람들에게 왜 흑인들이 분노하는지, '범죄자' 조지 플로이드의 사망에 왜 사람들이 연대하는지에 대한 답을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우선 다큐멘터리의 제목이이기도 한 미국 수정헌법 제13조를 살펴보자.

제1항. 어떠한 노예 제도나 강제 노역도, 해당자가 정식으로 기소되어 판결로서 확정된 형벌이 아닌 이상, 미합중국과 그 사법권이 관할하는 영역 내에서 존재할 수 없다.
제2항. 의회는 적절한 입법을 통하여 본조를 강제할 권한을 가진다.


남북전쟁 이후 아프리카에서 미국으로 납치된 노예들을 해방하고자 만들어진 해당 수정헌법은 언뜻 보면 전혀 문제가 없어보인다. 범죄자가 아닌 사람은 자유인이다. 범죄인이 노역을 통해 자신에게 부과된 벌금을 납부하는 것 크게 잘못돼 보이지 않는다.
 
5일 세계시민선언 주최의 <미국 수정헌법 제13조> 상영회가 진행되고 있다.
 5일 세계시민선언 주최의 <미국 수정헌법 제13조> 상영회가 진행되고 있다.
ⓒ 세계시민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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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다큐멘터리는 해당 조항이 함정이라고 말한다. 미국은 형식상으로는 노예제를 없앴지만, 각종 기업들의 운영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저렴하거나 혹은 무상의 노동력을 여전히 필요로 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 미국은 범죄자를 양성해 합법적으로 강제노역을 시키는 일을 선택했다. 

'마약과의 전쟁'을 핑계 삼아 '대량 투옥 시대'를 열어젖힌 것도 그의 일환인데, 백인들이 자주 쓰는 코카인에는 양형을 낮게, 흑인들이 자주 쓰는 크랙에는 최대 양형을 선고하도록 법 조항을 고안함으로써 흑인의 투옥을 유도했다. 미디어에서는 흑인을 약탈자로 묘사하며 사람들 사이에 공포심을 형성하기도 한다.

이러한 작업에는 또한 사설 감옥으로 돈벌이를 하는 CCA(Corrections Corporation of America)를 비롯해 교도소에서 재소자들과 그의 지인 간 통신요금을 부과하는 것으로 수익을 내는 시큐러스 테크놀로지스(Securus Technologies), 감옥에 배식을 담당하는 아라마크(Aramark) 등 기업들이 유착해있다. 이들 기업은 '미국 입법교류 평의회(ALEC)'라는 단체를 통해 정계에 광범위 하게 손을 뻗고 있기도 하다.

너무 음모론적인 발상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으나, 실제 '마약과의 전쟁'이 흑인에게만 영향을 끼치리라고 장담하는 백악관 관료의 녹취나 너무나도 확연히 차이 나는 흑인 유죄 선고율, 억울하게 사망한 수 백여 명의 흑인 피해자들의 명단은 이와 같은 가설이 음모론이 아니라 사실일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미국 수정헌법 제13조>는 이렇듯 역사적인 맥락에서 지금 왜 흑인들이 차별이 아직까지도 실존하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그리고 관의 폭력에 왜 이들이 분노하고 있는지 설명한다.

BLM 운동의 연대와 국가폭력에의 저항이 상통하는 이유

노예제는 폭력적인가? 우리는 이에 긍정한다. 그렇다면 미국이라는 국가가 노예제를 운영한다면 이는 폭력적인가? 이 역시 우리는 긍정한다. 국제반노예제연합(Anti Slavery International)은 강제노동과 노예의 대물림을 노예의 충분조건 중 하나로 이야기한다.

대량 투옥을 통해 강제노동의 위험에 항시 노출돼 있고, 슬럼 지역에서 가난과 범죄의 대물림을 반복하고 있는 흑인들이 현대에도 여전히 노예 상태에 놓여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다큐멘터리가 말하는 바를 따라간다면, 우리는 이 역시 긍정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BLM 운동에 연대하는 것은 일종의 국가폭력에 저항하는 일이다, 이렇게 말하기도 가능하다.
 
중국의 국가폭력에 저항하고 홍콩 시민에 연대하기 위해 <뮬란 보이콧> 선언을 하는 세계시민선언의 모습
 중국의 국가폭력에 저항하고 홍콩 시민에 연대하기 위해 <뮬란 보이콧> 선언을 하는 세계시민선언의 모습
ⓒ 세계시민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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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는 인간의 권리가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다는 천부인권에 근간을 두고 있다. 특히 대한민국은 5.18 민주항쟁 등을 거치며 국가가 시민을 탄압하고 목숨을 위협하는 일에 누구보다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 국가이다. 이는 이웃국가인 홍콩에서 중국이 자유를 소망하는 시민들을 무차별적으로 탄압할 때, 좌우 정치노선을 가리지 않고 연대의 목소리가 불거졌다는 점이 방증한다.

그러나 인종 간 차별과 이를 유도하고 방치하는 일에 대해서는 우리가 아직 다양한 인종과 부대끼고 살아온 세월이 적어 다소 둔감한 모습을 보이는 상태다. 허나 인구절벽이 닥쳐오고 우리 사회가 필연적으로 다인종 국가로 변할 수 밖에 없는 시점에서, 저 바다 건너 국가의 일은 조만간 우리의 일이 될 수도 있다.

앞으로 닥칠 대한민국이 좀 더 폭력적이지 않은 바람직한 국가가 되기 위해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문제의식을 가져보면 어떨까. 그러한 차원에서 더욱 많은 이들이 <미국 수정헌법 제13조>를 함께 시청해보았으면 한다(관심 있는 독자는 유튜브 혹은 넷플릭스에서 다큐멘터리를 시청할 수 있다).

태그:#BL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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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폭력에 저항하는 '세계시민선언'의 공동대표입니다. 보통시민의 이야기를 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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