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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원망스럽던 장마가 끝나고, 이제 좀 해가 뜨나 했는데 다시 코로나19라는 복병을 맞이했습니다. 이번 여름 휴가는 아무래도 망한 걸까요? 밖에 나가거나 삼삼오오 모이지 않고도 홀로 충만하게 이 계절을 보낼 수 있는, '혼캉스' 비결을 소개합니다. [편집자말]
 패스트푸드점에서 알바를 하는 동시에 원고까지 마감했다. 꾸역꾸역. 정말 꾸역꾸역했고 꾸역꾸역 살았다.
 패스트푸드점에서 알바를 하는 동시에 원고까지 마감했다. 꾸역꾸역. 정말 꾸역꾸역했고 꾸역꾸역 살았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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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보다 격렬하게 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여름이다. 올초부터 몰아치듯 나를 후려친 일들이 많았던 탓이다. 일단 연초부터 실업을 했다. 조금이라도 벌겠다고 패스트푸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는데, 코로나19가 터지고 곧바로 집 문제로 큰돈이 들어갈 일이 생겼다.

그 돈을 마련하기 위해 정신 나간 여자처럼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신분이다 보니 대출도 어렵고 바짝바짝 마음이 타들어가 밤잠을 못 이루는 날이 많았다. 덕분에 다크써클과 한숨이 나를 잠식해갔다.

그런 와중에 출간 준비까지 했다. 내 사정과 속을 알 턱이 없는 편집자는 수정 사항을 한 보따리 내 앞에 내려놓았다. 정말 환장할 노릇이었다. 잠들었다가 눈을 뜨면 모든 것이 해결된 다음 날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얼마나 많이 했던지. 그러나 도망조차 갈 수 없는 상황 속에서 '호랑이한테 물려가도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산다'는 뻔한 말을 되새기며 정신줄을 붙잡았다.

그 와중에 계속 수정 요청을 하는 편집자가 야속했지만, 그의 말이 다 맞아서 야속함과 고마움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결국 '끙' 하고 수긍했다. 하지만 낭떠러지로 내몰리는 것 같은 상황에서 도무지 글이라는 게 써지질 않았다. 꾸역꾸역. 정말 꾸역꾸역했고 꾸역꾸역 살았다.

그래도 살아 있으면 어떻게든 살아진다는 말이 맞다. 도무지 끝날 것 같지 않았던 문제들이 하나둘 해결되고, 고통 속에서 지난 7월에 책 <내가 힘들었다는 너에게>가 나왔다.

책이 나왔다고 해서 끝난 건 아니다. 한동안은 오르락내리락하는 판매지수를 보며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 감사하게도 2쇄를 찍었고, 비로소 이제야 '여유'라는 게 생겼다. 얼마 만에 맛보는 여유인지. 더 팔렸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과 달리 책의 판매지수는 하향곡선을 타고 있지만, 이쯤도 만족한다. 솔직히 더 욕망할 기력이 없다.

제법 괜찮은 휴식을 찾아서

모든 게 쉴 틈 없이 몰아친 여덟 달. 그래서 누구보다 쉬고 싶은 마음, 나를 다독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러나 생계를 위해서 멈출 수가 없는 현실이다. 내가 멈추면 내 삶을 책임져 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코로나19가 다시 재확산 될 위기여서 제대로 휴가를 보내기가 요원한 상황이기도 하다. 덕분에 어떻게 쉴 것인지를 생각해봤다. 패스트푸드점 특성상 스케줄을 하루 이틀 조정할 수는 있으니 주말과 연휴를 껴서 쉰다고 쳐도, 무엇을 한담? 무엇을 해야 괜찮게 나만의 휴식을, 그리고 집콕 생활을 잘 보낼 수 있을까.
 
안 해 봤던 것, 혹은 익숙하지 않은 것 해보기. 내가 정한 이번 휴가 미션이다. 많은 후보가 있지만 코로나 정국에서 실현 가능한 것들 중에서 추리고 추려서 최종 당첨된 것은 바로 '요리'다. 좀 더 그럴 듯 하게 포장하자면, 나에게 정성스러운 한 끼를 대접하는 것이다.

사실 난 '요알못'이다. 일단 요리를 하는 게 즐겁지 않았다. 먹는 것에 그다지 크게 의미 부여를 하지 않는 편이라 맛있는 걸 먹는 걸 좋아하지만 맛집을 찾아다니는 타입은 아니었고, 내가 해 먹는 것은 더더구나 귀찮았다.

독립해서 혼자 살 땐 나름 잘 해 먹고 살자고 결심했는데 그 또한 실패했다. 요리를 준비하는 시간에 비해 먹는 시간은 너무 짧았고 치우는 수고도 만만치 않았다. 또 요리를 하겠다고 사놓은 식재료들은 냉장고에서 썩는 일이 다반사였다. 나로서는 시간이나 비용 면에서 모두 효용성이 없는 일이었다.

그랬던 내가 이번 여름, 나만의 휴가 기간 동안 요리를 해보자고 한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패스트푸드점에서 제공되는 햄버거로 식사를 하는 날이 잦다 보니 건강한 음식에 대한 필요가 본능적으로 생겼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간단하더라도 건강한 한 끼를 먹어야 되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더불어 그동안 수고하고 애쓴 나를 대접하는 데 식사만한 것도 없겠다 싶었다.
 
일단 테마를 정했다. 메인은 추억의 요리다. 요리의 재료는 '아보카도'. 진한 초록색 껍질을 갖고 있지만 벗겨보면 연두색 예쁜 속살을 갖고 있는 채소.

난생처음, 아보카도의 맛 
 
아보카도명란비빔밥 아보카도명란비빔밥
▲ 아보카도명란비빔밥 아보카도명란비빔밥
ⓒ 신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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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국적인 식재료 아보카도를 처음 접한 건, 15년 전 캐나다 빅토리아에서였다. 1년간 어학연수 차 머물 때였다. 당시 한인교회에서 만난 지 얼마 안 된 한 언니는 홈스테이에서 나와 머물 곳이 없는 나를 불러서 따뜻한 밥상을 차려 주었다. 집이 구해질 때까지 자신의 집에서 머물라는 말과 함께. 그 밥상은 나에게 잊을 수 없는 환대였다. 그 식탁에 오른 식재료 중 하나가 아보카도다.

'으잉? 이게 뭐지?' 처음 본 이상한 연두색 채소에 나는 선뜻 젓가락이 가지 않았다. 그래도 좀 전에 받은 감동도 있고, 차린 성의에 보답을 하고 싶어서 한 입 베어 물었는데 이럴 수가. 씹었을 때 느껴지는 뭉클거림과 미끌거리는 식감은 뱉고 싶을 정도로 낯설었다.

맛이 어떤지 궁금해하는 언니의 표정을 보고 겨우 꿀꺽 삼켰다. 그때부터 머릿속에 복잡해졌다. '이걸 어떻게 다 먹는담?' 꾸역꾸역 억지로 먹는데 이상한 일이 생겼다. 씹을수록 고소한 게 오묘한 맛이 나는 게 아닌가. 다 먹을 때쯤에는 '어라? 요거 봐라? 다음에 또 먹고 싶네' 하는 마음까지 들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아보카도 마니아가 되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아보카도를 사다가 이것저것 해 먹었다. 캐나다에서는 가격이 싸서 부담도 없었다. 귀국해서 아보카도를 찾아보니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희귀했고, 있다 해도 비싸서 엄두를 내지 못했다. 요즘에도 아보카도의 가격은 서민적이지 않다. 그래서 아주 먹고 싶을 때만 먹었는데 이번이 그랬다.

내가 준비한 요리는 아보카도 명란 비빔밥. 재료도 간단하다. 아보카도를 어슷썰기 해놓고, 명란젓과 씨앗채소를 준비했다. 그리고 계란 후라이까지. 마지막 화룡정점은 참기름이다. 숟가락이 입에 들어가기 전부터 침샘이 침이 가득 고인다.

아보카도를 먹으니 15년 전 캐나다에서의 시간이 소환되었다. 그래서 음식은 추억이라 했던가.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간 중 하나인 캐나다 빅토리아에서의 1년. 아보카도는 먹을 때마다 그 행복했던 기억이 달려와서 나를 와락 안아주는 느낌을 주곤 한다. 이번에도 언니네 집 앞에 있던, 내가 가장 좋아했던 장소, 오크베이 해변이 마음속에 촤르르 펼쳐졌다.

그리고 곁들인 반찬은 콜라비 피클이다. 무와 콜라비를 얇게 썰어서 식초와 설탕을 1:1로 섞은 물에 담가놓았는데 새콤달콤해서 아보카도의 느끼할 수 있는 맛을 잡아준다.

디저트도 빠질 수 없다. 만들고 싶어서 벼르던 디저트 음식이 있는데 바로 토마토 절임이다. 사실 요리라고 하기에 미안할 정도로 간단하다. 방울토마토를 끓는 물에 데쳐서 껍질을 벗긴 다음 매실액에 하루 정도 담가놓으면 끝이다. 이렇게 내 손으로 직접 만든 간단 코스 요리가 완성되었다.

나를 토닥여주는 한 상

나 하나 밥 먹자고 들이는 시간과 재료가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했는데, 나를 대접한다고 생각하니 그게 다 정성이구나 싶다. (물론 앞으로 계속 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꾸역꾸역 살아내느라 지쳐 있던 나에게 '이만큼 오느라 수고했다' 하며 차려낸 밥상. 그리고 꾸역꾸역 먹다 보니 그 맛의 진가를 알 수 있었던 아보카도. 꾸역꾸역의 콜라보가 내 소박한 여름 휴가를 빛내 주었다.

꾸역꾸역이었을지언정 아무튼 살아냈기에 지금 잠깐 누리는 소박한 호사도 달콤하고 스스로에게 뿌듯하다. 아무리 고역스러운 시간도 꾸역꾸역 살아내다 보면 단맛이 느껴지는 지점이 오지 않던가. 나에겐 나를 위해 밥 한 끼 지어 먹을 수 있을 만큼의 여유가 생긴 지금이 고진감래(苦盡甘來)의 시간이다.

그리고 다시 혼자 놀기의 시간이 찾아와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방법 하나를 찾은 것 같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도전은 성공적. 벌써 다음 요리가 생각난다. 주제는 든든한 건강식. 식단은 가지밥과 부추를 넣은 옥수수전, 달걀찜, 디저트는 단호박 견과 어뮤즈. 침샘이 벌써 폭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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