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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Forster)와 텅커리(Tuncurry)를 잇는 아름다운 다리, 1959년에 완공.
 포스터(Forster)와 텅커리(Tuncurry)를 잇는 아름다운 다리, 1959년에 완공.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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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은 집에서 주로 생활하고 있다. 혼자 지내다 보니 외출할 기회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극성스러운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동네 사람들도 모임을 자제하는 분위기다. 오늘 하루도 집에서만 지냈다. 밤늦게 포도주 마시며 하루를 정리한다. 내일은 집 밖으로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술기운과 함께 올라온다. 무료함도 달래고 바닷바람도 쏘일 겸 가까운 포스터(Forster)에 가야 겠다는 생각을 하며 잠을 청한다.

포스터는 지역의 인구가 2만여 명 되는 동네다. 시드니에서 서너 시간 거리에 있기 때문에 휴가철이 되면 관광객으로 시끌벅적하다. 우리집에서는 20분 이내에 갈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 있고, 큰 쇼핑센터가 있어 자주 찾는 동네다. 먼 곳에서 지인들이 찾아오면 관광지라고 하며 안내하는 동네이기도 하다.

나 혼자 결정하고, 나 혼자 하는 외출이다.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가 없다. 마음껏 게으름 피우며 일어나 하루를 준비한다. 며칠 만에 자동차 시동을 건다. 도로에는 생각보다 자동차가 많다. 출근 시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대도시 같은 교통 혼잡은 없다. 

평소에 손님이 오면 자주 찾는 방파제와 선착장이 있는 곳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바다를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넌다. 텅커리(Tuncurry)라는 동네와 포스터를 연결하는 멋진 다리다. 다리 아래로 보이는 바다는 짙은 청록색을 내뿜고 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시선을 붙잡던 그 모습 그대로다. 내가 본 바다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색을 가진 바다라는 생각을 아직도 하고 있다. 

방파제 근처 주차장에 차를 세운다. 평일이지만 보트를 싣고 온 자동차들이 생각보다 많이 주차해 있다. 아무 생각 없이 이곳에서 바닷바람이나 쏘이며 지낼 생각이다. 요즈음은 특별히 하는 일없이 넋을 놓고 보낼 때가 잦다. 한국에 멍때리기 대회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난다. 아마도 멍때리기 대회에 나가면 일 등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방파제를 따라 길게 조성한 산책로를 천천히 걷는다. 겨울 아침이지만 날씨는 봄이 찾아온 것처럼 따뜻하다. 구름 한 점 없는 눈이 부시도록 맑은 하늘이다. 태양은 이미 대지를 데우고 있다. 사람들은 겨울답지 않은 가벼운 옷차림으로 적당하게 불어오는 바닷바람을 맞으며 산책을 즐긴다. 산책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대부분 부부로 보이는 남녀가 함께 걷고 있다. 반려견과 함께 산책하는 사람들도 보인다. 주위를 보니 반려견도 없이 혼자 걷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 아니, 멀리 한 사람 보인다. 몸이 불편한 할아버지가 보행기에 몸을 의지해 천천히 혼자 걷고 있다. 건강을 생각해 걷는 모습이다. 산책로에 설치한 운동 기구에서는 중년 남자가 반려견을 옆에 앉혀놓고 열심히 운동 중이다.

근처에 있는 벤치에서는 공사장 유니폼을 입은 두 건장한 사내가 바다를 바라보며 간식을 즐기고 있다. 운동복을 입은 젊은 엄마가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걷는 것이 아니라 가볍게 뛰고 있다. 낚시대와 큰 바구니 통을 들고 방둑으로 향하는 낚시꾼의 가벼운 발걸음도 볼 수 있다. 방파제 옆 백사장에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한겨울에도 추위를 모르고 수영하는 호주 사람들이지만 오늘은 보이지 않는다. 조금 이른 시간이라 아직 사람이 없는 것 같다.

산책로가 끝난 방둑에 도착했다. 섬 하나 보이지 않는 태평양 수평선이 펼쳐진다. 산책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이곳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바다를 바라보며 잠시 숨을 고른다. 방둑에서는 낚시꾼들이 바다를 향해 낚싯대를 던진다. 낚시 하는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쉬는 사람도 있다. 보트가 시원하게 물살을 가르며 큰 바다를 향해 질주한다. 평일이지만 주말처럼 직장에 다니지 않고 하루를 보내는 사람이 많다. 
 
낚시꾼들이 대어를 기대하며 낚싯줄을 바다에 드리우고 있다. 전형적인 은퇴한 호주 사람들의 생활이다.
 낚시꾼들이 대어를 기대하며 낚싯줄을 바다에 드리우고 있다. 전형적인 은퇴한 호주 사람들의 생활이다.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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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둑에 올라선다. 바다를 바라본다. 심호흡도 한다. 적당히 불어오는 공해 없는 바닷바람이 마음을 깨끗하게 청소하는 기분이다. 자연과 함께 하는 이 순간이 좋다. 사람을 만날 때처럼 상대방을 의식할 필요도 없다. 꾸밈없는 내 모습 그대로 내가 원할 때 찾아가 함께 할 수 있는 자연이다.  

왔던 길을 되돌아 보트 선착장이 있는 곳으로 걷는다. 생선 다듬는 선반에서 건장한 두 청년이 잡아 온 생선을 손질하고 있다. 큼지막한 생선이 선반에 널려 있다. 이른 아침에 생선을 손질하는 것으로 보아 새벽바람을 뚫고 낚시를 한 것이 분명하다. 선반 주위에는 손질하고 버리는 생선을 먹으려는 펠리컨이 떼를 지어 있다. 
 
아침 일찍 생선을 잡아 손질하고 있는 어부 아닌 어부들.
 아침 일찍 생선을 잡아 손질하고 있는 어부 아닌 어부들.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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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질하고 남은 생선을 받아먹으려고 펠리컨들이 모여 있다.
 손질하고 남은 생선을 받아먹으려고 펠리컨들이 모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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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사람들은 생선 살만 대충 발라내고 나머지는 버린다. 얼마전에 버리는 큰 생선 뼈를 가지고 집에 와서 매운탕을 실컷 끓여 먹은 적이 있다. 살도 엄청나게 많았다. 지금도 펠리컨에게 던져주는 생선 뼈를 달라면 줄것이다. 그러나 혼자서 지내는 요즈음은 큰 생선을 요리해 먹을 엄두가 나지 않는다.

선착장은 바다로 나가는 배와 들어오는 배로 적당히 붐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정박해 있는 두 척의 하우스 보트다. 배에 빨래가 걸려 있는 것으로 보아 선상 생활을 하는 사람이 살고 있을 것이다. 특이한 삶을 택해 지내는 사람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개성이 강한 사람일 것이라는 추측을 해본다.
 
선착장은 평일이지만 낚싯배로 붐빈다.
 선착장은 평일이지만 낚싯배로 붐빈다.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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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착장 건너편 야영장에는 캐러밴이 줄지어 있다. 간이 의자에 앉아 여유롭게 차를 마시는 중년의 남녀가 눈길을 끈다. 큼지막한 캐러밴에 자전거까지 싣고 온 가족도 있다. 큰 욕심 없이 삶을 있는 그대로 즐기는 모습이다. 호주 특유의 여유 있는 삶을 본다.  

빠르게 흘러가는 삶의 흐름에서 벗어나 잠시 머무른 시간,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 관념에서 벗어난 시간을 가져 보았다. 이곳에 잠시 있는 동안 다양한 삶을 만났다. 모든 사람은 나름의 삶을 지내고 있다. 좋고 나쁨으로 평가할 수  없는 자신만의 독특한 삶을 보내고 있다.

삶은 과정이라고 한다. 지난 나의 삶을 잠시 돌아본다. 앞으로의 삶도 생각해 본다. 위로받기보다는 위로하며,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겠다는 노래가 떠오른다.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겠다는 윤동주 시인의 읊조림도 머리를 스친다.

내가 삶을 사는 것인지, 삶이 나를 살게 하는지 모를 정도로 헷갈리는 하루하루를 요즈음 보낸다. 평소에 즐겨듣던 '살다 보면 살아진다'라는 한이 넘쳐흐르는 노랫말을 흥얼거리며 위안을 삼는다. 
 
호주 사람들이 꿈꾸는 전형적인 캐러밴 여행, 관광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호주 사람들이 꿈꾸는 전형적인 캐러밴 여행, 관광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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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호주 동포신문 '한호일보'에도 연재하고 있습니다.


태그:#호주, #FORSTER,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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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에서 300km 정도 북쪽에 있는 바닷가 마을에서 은퇴 생활하고 있습니다. 호주 여행과 시골 삶을 독자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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