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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하는 류미숙 작가. 접시,물잔 등에 회화로 표현해 캔버스에 붙이는 방식으로 그릇회화 장르를 개척했다. 그릇그림은 캔버스 그림과 따로따로가 아닌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되어진다.
 작업하는 류미숙 작가. 접시,물잔 등에 회화로 표현해 캔버스에 붙이는 방식으로 그릇회화 장르를 개척했다. 그릇그림은 캔버스 그림과 따로따로가 아닌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되어진다.
ⓒ 홍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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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먼 곳으로 가시고 50여 년 동안 쓰시던 그릇들만 덩그러니 남았다. 나는 엄마의 그릇에 내 마음을 색칠한다. 온 정성을 다해 영혼까지 버무려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내듯 나는 엄마의 그릇에 내 온 정성과 영혼을 칠한다. 그 속에 엄마가 있다. 끝이 날 것 같지 않은 작업들. 엄마는 늘 내 곁에 계신다." 

류미숙 작가는 '엄마의 밥상'을 주제로 작품을 하는 '그릇회화' 작가다. 그릇과 쟁반, 밥그릇, 도마 등 다양한 소재에 회화를 그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하고 있다. 지난 8월 20일, 그를 만나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수년간 류 작가가 완성시켜온 화폭에는 그림 접시가 붙어 평면과 입체의 앙상블을 이룬다. 이런 작품을 처음 보는 이들은 약간은 의아해서 '이게 뭔가' 생각할 수도 있다. 독특한 작품들이다.

형형색색 옷을 입은 접시에는 꽃과 벌, 나비, 새가 날아든다. 어머니가 해보고 싶어하던 스포츠인 암벽타기, 패러글라이딩, 그리고 자유롭게 뛰어오르는 사람들의 몸짓 등이 작품에 펼쳐져 있다. 어머니의 손때가 진하게 묻은 그릇에 어머니가 이루지 못한 꿈을 류 작가가 담아낸 것이다. 

다가올 전시를 앞두고 작업하는 캔버스에 올려진 낡은 전대는 마음을 짠하게 만든다. 그것은 생전의 어머니가 몸에 두르던 물건이다. 그릇엔 빛바랜 사진 같은 이야기가 가득 채워져 있다. 작품은 어머니의 꿈과 희망이고, 작가의 삶이나 다름없다. 그렇게 접시 등에 그림을 그려 캔버스에 붙이는 방식으로 작품을 완성하다 보니 어느덧 '그릇회화 작가'란 호칭이 붙었다.

어머니와 작가의 꿈 담은 '회화그릇' 
 
'엄마의 밥상' 주제 중 하나다. 접시안에 꿀벌이 날아 들었다.
▲ 작품 - 꿀벌 "엄마의 밥상" 주제 중 하나다. 접시안에 꿀벌이 날아 들었다.
ⓒ 류미숙 작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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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 작가는 이런 작품을 모아 '엄마의 밥상'이라는 제목으로 묶었다. 이는 지난 2019년 아트광주19 개인 부스전을 필두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올해 4월, 전남도청 윤선도 홀에서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이 전시에서는 접시 위에 만개한 꽃과 새를 화사한 색감으로 표현한 '행복한 날들', 나비와 꿀벌이 날아든 그림, 암벽타기, 패러글라이딩 '엄마의 꿈', 파도와 돌고래의 자유로운 움직임이 인상적인 '자유' 등 30여 점을 선보였다.

작품들은 그동안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으로 묵묵히 수행한 작업 의식의 결과물이었다. 류 작가가 어머니의 삶을 회화적으로 표현하고 시각적으로 풀어낸 것들을 바탕으로 작품 밑에 설명글을 써 붙였다.

관람객들은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했다. 류 작가는 당시를 회상하며 "처음 보는 이들이었지만 부스 안으로 들어와 말없이 저의 손을 잡아주고 '다 안다'면서 고개를 끄덕여 주었던 그분들에게 감사하다. 커다란 힘이 됐다"고 말했다.

식당 운영해 자식 키우고 그릇만 남기고 가신 어머니

류미숙 작가의 어머니는 50년간 옻닭집을 했다. 어머니는 생전에 자식들에게 "난 시간이 없어 못 하지만, 너희들은 무엇이든 해보아라"라며 언제나 꿈을 갖도록 해줬다. 그러나 영원히 함께할 것 같았던 어머니가 어느 날 홀연히 떠나버렸다.

작가는 많이 아팠고 망연자실했다. 그리움만 남았다.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고 세상을 떠나신 어머니가 덩그러니 남긴 건 온통 그릇들이었다. 어머니가 식당 살림으로 늘 뗄 수 없었던 물건이었다. 당신의 희생으로 자식에게 사랑을 베풀며 함께 했던 흔적이었다.

"망연자실 넋 놓고 있던 제가 엄마를 위해 할 수 있는 건 엄마의 손때 묻은 살림에 엄마의 꿈을 그려내는 것이었어요." 
 
엄마의 밥상을 주제로 한 작품 중 하나. 류미숙 작가의 어머니 생전에 식당을 하며 등산이나 암벽타기 하는 사람들을 많이 부러워 했었다. 자신의 시간을 일생동안 갖지 못한 어머니의 꿈을 작가가 그림으로 표현해 풀어 본 것이다.
▲ 작품-암벽타기 엄마의 밥상을 주제로 한 작품 중 하나. 류미숙 작가의 어머니 생전에 식당을 하며 등산이나 암벽타기 하는 사람들을 많이 부러워 했었다. 자신의 시간을 일생동안 갖지 못한 어머니의 꿈을 작가가 그림으로 표현해 풀어 본 것이다.
ⓒ 류미숙 작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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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는 그릇을 버리자고 했다. 하지만 류 작가는 고집스럽게 버리질 못했다. 그리고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의 끝자락을 붙잡고 '애오라지' 작업에 매달렸다. 고래가 노니는 공간을 자유롭게 뛰노는 모습으로 표현했다.

접시에 그려진 등대와 사람은 우리가 살면서 갑자기 길을 잃었을 때 한 가닥 희망의 불빛을 보며 길을 찾아가는 모습이다. 바다의 고래들은 하늘나라에 가신 부모님이 그곳에서 자유롭게 넓은 세상을 돌아다니셨으면 하는 딸의 바람과 소망을 표현한 것이다.

그렇게 어머니가 운영하시던 식당에 있던 다양한 크기의 그릇과 쟁반, 컵, 밥그릇, 도마, 그리고 음식을 기다리며 손님들이 즐겼던 화투, 카드 등이 작품으로 재탄생했다. 

하지만 그릇에 색감을 입히고 그림을 그리는 건 쉽지 않았다. 접시를 문지르고 또 문지르고, 그림 그리기를 반복했다. 수십 차례 실패하는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색칠 직업을 해놓으면 다 흘러내리거나 저녁에 완성해놓고 다음 날 일어나 보면 작품이 망가지는 게 다반사였다.

물감이 벗겨지지 않게 그릇에 안착시키고, 에폭시로 캔버스에 그릇을 접착시키는 수많은 시행착오의 연속과 집념의 연구 끝에 결실을 거뒀다. 어머니가 운영했던 '청솔가든' 식당 간판은 아직도 그대로 걸려 지금도 찾아오는 손님들이 있다. 이곳은 이제 작가의 소중한 작업실이 되었다.
 
파도와 어울린 돌고래의 유영이다. 얽매인 시간에서 자유를 갈망했던 어머니의 마음을 작가가 접시와 캔버스에 표현한 것이다.
▲ 작품 - 자유 파도와 어울린 돌고래의 유영이다. 얽매인 시간에서 자유를 갈망했던 어머니의 마음을 작가가 접시와 캔버스에 표현한 것이다.
ⓒ 류미숙 작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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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먹먹하면서 따뜻한 작품들 

'엄마' 이야기를 꺼내면 누구에게나 그리움, 애틋함, 먹먹함이 떠오른다. 모든 이들이 마찬가지일 터이다. 삶은 다르지만,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은 하나로 모아진다. 그렇게 류 작가에게 있어 어머니는 그리움의 존재이자, 작품의 원천이 되었다.

류 작가는 전남대학교 예술대학 미술학과를 졸업해 개인전 등 다수의 단체전과 아트페어에 참가한 바 있다. 현재 청동회, 조형21 등에서 지역의 미술발전을 위해 활동하는 중견작가다.

류 작가에 대해 노의웅 노의웅미술관장(전 호남대 예술대학장)은 "독자적인 경지로 접시와 밥그릇에 그림을 그린다. 색의 향연, 색의 마술사라는 표현이 어울린다. 번득이는 아이디어와 사실적 표현 능력이 누구에 비할 바 없는 작가다. 밝고 구김살이 없다"라고 평했다.

류 작가는 9월 17일~10월 14일, 광주 생각상자갤러리에서 '엄마의 밥상'을 주제로 세 번째 초대개인전을 갖는다. 이번 전시는 접시 오브제와 아크릴로 완성된 '엄마의 전대'(사랑), '엄마의 품' 등 30여 점을 관람객들에게 선보일 예정이다.

그녀는 "펼쳐 보일 수 있는 아이디어는 많다. 기회가 되면 아트페어 등 국제전시도 자주 나가려 한다. 외국에 우리네 밥상문화와 함께 그릇회화를 더 알리고 함께 나누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류 작가는 접시뿐 아니라 어머니 유품인 모든 그릇에 색칠해서 그림을 그린다.
▲ 작품 - 식기그릇 류 작가는 접시뿐 아니라 어머니 유품인 모든 그릇에 색칠해서 그림을 그린다.
ⓒ 류미숙 작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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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딸이자 이젠 대학생 딸을 둔 류미숙 엄마작가. 초대 개인전을 앞둔 류 작가가 어려운 상황에서 작품을 지속할 수 있도록 보이지 않는 힘을 준 영혼의 부모님에게 드리는 애틋한 시를 적었다. 
 
엄마의 밥상(사랑)

우리 삼 남매를 위해 50년 동안
식당을 운영하시며 허리에 항상 몸 일부처럼 함께 한 사랑의 전대
여기에 채운 건 엄마의 사랑이었다
우리 삼 남매는 엄마의 사랑으로 지금 여기에 이렇게
엄마 아빠 사랑합니다 
- 둘째 딸 미숙 올림
 
'엄마의 밥상' 타이틀의 대표 작품인 전대와 가족 그림이다. 위의 전대는 류 작가 어머니가 식당을 운영하며 늘 몸의 일부처럼 허리에 둘렀던 것이다. 어머니는 어느 날 전대와 그릇을 남겨놓고 홀연히 세상을 떠났다.
▲ 작품 - 전대 "엄마의 밥상" 타이틀의 대표 작품인 전대와 가족 그림이다. 위의 전대는 류 작가 어머니가 식당을 운영하며 늘 몸의 일부처럼 허리에 둘렀던 것이다. 어머니는 어느 날 전대와 그릇을 남겨놓고 홀연히 세상을 떠났다.
ⓒ 류미숙 작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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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류미숙, #엄마의밥상, #그릇회화, #작품, #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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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경제 전문 프리랜서로 글과 사진으로 소통해 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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