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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서 '국민'이라는 용어는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는 일상용어 중 하나다. 특히 정치인들이 '국민'이라는 용어를 너무나 애용한다. 정당의 명칭에서도 '국민'은 언제나 최우선 순위에 오르고, 그를 둘러싼 논란도 이어진다.

그런데 이와 전혀 다른 차원에서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놀라운 사실이 있다. 바로 현대 사회에서 전 세계적으로 '국민'이라는 용어는 거의 사용되지 않고 있으며, 더구나 잘못된 번역어였다는 사실이다.

잘못된 일본식 번역

본래 'nation'이라는 영어 단어의 올바른 의미는 '민족'이나 '국가' 혹은 '한 국가를 이루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 'nation'은 그 정확한 의미가 '국민'이라고 잘못 알려지고 있는 것이 오늘날 '확고부동한' 현실이다. 그리하여 이를테면 본래 '민족국가'여야 할 'nation-state'도 '국민국가'가 정확한 번역인 것처럼 '보편화'되어버린 현실이다. 학계와 언론계 역시 아무런 의심 없이 이를 받아들이고 있다.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nation'을 '국민'의 의미로 이해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 그런데 예외적인 나라가 있다. 바로 일본 그리고 우리나라다.

'nation'의 개념이 이렇게 '국민'으로 잘못 알려진 것은 일본제국주의 시대에 'nation'을 비롯한 서양용어들이 일본에 의해 대대적으로 번역이 이뤄지면서 이후 널리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봉건적 국가주의체제였던 일본제국주의는 '국민'이라는 용어를 무의식적으로 '선호'하였고, 혹은 의도적으로 '선택'하여 널리 보편화시켰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일제 강점기를 거쳐 지금까지 여전히 일본 문화와 사고방식을 철저하게 극복해내지 못하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도 '국민'이라는 용어가 범람하고 있는 것이다.

'국가신민(國家臣民)' 개념으로서의 '국민(國民)'

한편 '국가(國家)'라는 한자어는 원래 제후가 다스리는 '국(國)'과 경대부(卿大夫)가 다스리는 '가(家)'의 총칭으로서 "특정한 경계(境界)를 가진 지배지(支配地)와 지배민(支配民)"을 의미하고 있다. 중국 고대 주(周) 왕조는 정치와 혈연이라는 두 가지 기준에 의하여 '가(家)'와 '국(國)'이 일체화된 종법권력 체제를 구축하였다.

일본에서는 율령(律令) 용어에서 '국가'란 곧 천황을 의미해왔다. 지금은 '초등학교'로 명칭이 바뀐 '국민학교'라는 용어는 '황국신민(皇國臣民)' 혹은 '국가신민(國家臣民)'을 양성한다는 일본 제국주의의 초등교육 정책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이렇듯 '국가'란 가족의 질서가 확대된 개념으로서 자율적인 시민사회의 존재는 상정되지 않는다. 오로지 특정한 영토 내에 살고 있는 신민(臣民)으로서의 '국민'이라는 개념이 있을 뿐이다. '신민'이란 사회라는 집단적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와 의무를 모두 지닌 '시민' 혹은 '공민'과 결코 동일한 범주의 용어가 될 수 없다.

국민과 시민, 그리고 공민

'국민'이라는 용어와 대비되는 것이 바로 '시민(citizen)' 혹은 '공민(公民)'이라는 개념이다.

'시민'이란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즉 참정권(선거권과 피선거권)을 가졌으며 동시에 국가권력에 대한 감독권을 지닌 사람들을 지칭한다. '공민'이라는 개념도 우리나라에서 거의 사용되지 않는 용어이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이 개인으로서 자각을 하고 사회에 참여한다"는 주체적인 개인주의의 인간관이 강력하게 반영되어 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이른바 '전체(全體)'는 책임과 의식을 지닌 개인 한 사람 한 사람으로부터 성립된 것이다. 그리하여 '시민'이라는 개념은 역사적으로 절대 왕정을 타파하는 과정에서 무능하고 부패한 절대 권력에 맞서는 '자유인의 정치적 실존 방식'으로 형상화되었다.

'시민'이라는 개념은 자신의 사적 이익과 함께 공공의 이익도 동시에 추구하는 존재였으며, 결국 '국가 또는 사회의 능동적 구성자' 또는 '국가 또는 사회를 만드는 개인들'로서의 '시민'의 참여는 국가의 주요 정책에 대한 결정 과정에서 보편적인 수단이 되었고 민주적 행정의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가 되었다.

결국 '국민'이라는 용어는 국가주의적 용어로서 현대 사회에 부합하지 않으며, 더구나 일본에 의해 잘못 번역된 용어로서 향후 모든 사람들이 의식적으로 사용을 자제해야 할 대표적 용어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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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관계학 박사, 국회도서관 조사관으로 근무하였고, 그간 <오마이뉴스>와 <프레시안> 등 여러 매체에 글을 기고해왔다. <변이 국회의원의 탄생>, <논어>, <도덕경>, <광주백서>, <사마천 사기 56>등 여러 권의 책을 펴냈다. 시민이 만들어가는 민주주의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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