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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최근에 매우 황당한 자료를 읽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여야 의원실이 올해 8월과 9월에 걸쳐 국가보훈처로부터 제출받은 서면 자료였다. 이들 자료는 국가보훈처 공훈발굴과의 행정사무관이 작성한 것이다. 필자는 이 자료들을 살펴볼 기회를 얻었다.

여야 의원실은 2차 동학농민운동의 서훈과 관련하여 질의하였는데, 국가보훈처는 엉뚱하게도 2차 동학농민운동의 서훈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답변하지 않고, 동학농민운동 전체에 초점을 맞추어 답변하고 있었다. 이런 서면 답변은 여야 의원실의 질의에 혼란을 초래하여, 궁극적으로 2차 동학농민운동 참여자의 서훈을 무산시키는 결과를 야기하기에, 문제의 심각성이 매우 크다.

참으로 통탄스러운 답변

이에 필자는 국가보훈처의 서면 답변이 왜 문제가 되는지를 국민 여러분에게 알리고자 한다. 

첫째, 국회 의원실에서 2차 동학농민운동의 서훈과 관련하여 "서훈 불가 판단 사유 및 근거, 관련규정"에 대해 질의하자, 국가보훈처는 "동학농민혁명의 독립운동 성격에 대한 학계의 의견이 일치되지 않아 현재는 독립유공자로 포상을 하고 있지 않다"라고 서면 답변을 했다.

필자는 참으로 통탄스러운 답변이라고 판단한다. 서면 답변은 2차 동학농민운동의 서훈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고 있고, 전체 동학농민운동에 대해 답변하고 있다. 즉 동학농민운동의 독립운동 성격에 대해 학계의 의견이 일치되어 있지 않아, 현재 독립유공자로 포상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서면 답변은 명백한 거짓이다. 이는 궤변에 불과하다. 2차 동학농민운동이 항일 독립운동이라는 역사학계의 의견(학술논문, 저서, 학술 발표)은 일치되어 있다. 역사학계의 연구 성과가 반영되어 정설이 되어서 통일된 견해가 현재 8종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에 기술되어 있다. 현재 8종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는 2차 동학농민운동을 일본군을 몰아내려고 한 항일 구국 투쟁 즉 독립운동으로 기술하고 있다. '2차 동학농민운동이 항일 구국 투쟁'이라는 기술은 1980년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에서 지금까지 일관되게 서술하고 있다.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에 실린 2차 동학농민운동 관련 서술.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에 실린 2차 동학농민운동 관련 서술.
ⓒ 박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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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학술 논문과 저서에서 2차 동학농민운동이 항일 투쟁 즉 독립운동이라고 논증하였다. 연구 사례 둘만 예로 들겠다.

서울대 국사학과 한우근(1915~1999) 교수는 "동학농민군의 1차 봉기는 반봉건투쟁, 2차 봉기는 항일전쟁"이라고 1984년에 논증했다.(한우근, 「동학농민군의 제1차봉기」, 「동학농민군의 제2차봉기」, 「역사적 의의」, <한국사>17(동학농민봉기와 갑오개혁), 국사편찬위원회, 1984.) 그는 "제2차 봉기는 순전히 국권을 유린하는 일본군에 대한 구국투쟁으로 나타났다"(203쪽)라고 서술했고, "동학군의 제2차 봉기는 국토와 국민과 국권을 유린하는 일본군에 대한 민족적 항쟁이었다. 외국의 침략에 대한 항거의식은 이제 농민들의 반봉건 투쟁에서 항일 구국투쟁으로 전개되었던 것이다"(210쪽)라고 확고히 논증했다.

한국독립운동사 연구의 태두인 국민대 국사학과 조동걸(1932∼2017) 교수는 1978년에 "동학혁명의 후기 운동에 이르면 그 자체가 항일 독립운동이었다"(255쪽)라고 논증했다.(「농민편」, <독립운동사>제10권(대중투쟁사),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8.) 계속해서 그는 1980년 <의병들의 항쟁>이라는 저서에서, "동학혁명운동은 처음에 당시의 봉건체제에 대한 혁명운동으로 전개되었으나 후에는 일본군의 파병에 따라 혁명전쟁으로 확대되어 반제국주의운동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동학혁명운동이 독립운동으로서의 성격이 있으며 아울러 독립운동의 기점으로 각광을 받게 된 것이다"(50쪽)라고 밝혔다.(<의병들의 항쟁>(민족운동총서편찬위원회), 민족문화협회, 1980.)  
 
 조동걸, <의병들의 항쟁>(민족운동총서편찬위원회), 민족문화협회, 1980.
 조동걸, <의병들의 항쟁>(민족운동총서편찬위원회), 민족문화협회, 1980.
ⓒ 박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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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해서 1998년 조동걸은 "한국의 독립운동은 1894년 갑오왜란에 대항하여 의병이 봉기하고, 이어 일본군의 침략을 맞아 동학농민전쟁이 다시 일어나 독립운동의 포문을 연 후, 1945년 해방에 이르기까지 50년간 끊임없이 계속되었다"(14쪽)라고 확실히 논증했다.(<한국근현대사의 이해와 논리>, 지식산업사, 1998.) 즉 갑오의병과 2차 동학농민운동이 한국 독립운동의 포문을 열었다는 것이다.

2차 동학농민운동이 항일 독립운동이고, 독립운동의 성격이 있다는 역사학계의 연구 성과가 1978년 조동걸 교수의 연구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역사학계의 연구 성과는 1차 동학농민운동은 반봉건 운동으로, 2차 동학농민운동은 항일 독립운동으로 오래 전에 정리하였다. 국가보훈처는 2차 동학농민운동에 대해 역사학계의 의견이 불일치한 근거를 학술 논문과 저서의 내용, 쪽수를 적어 국민 앞에 밝혀 보라. 필자는 국가보훈처가 단 한편의 글도 국민 앞에 제시하지 못할 것으로 확신한다.

국가보훈처, 근거를 대보라

현재 갑오의병(1894년 8월)과 을미의병(1895년)은 국가보훈처의 독립유공 서훈대상에 들어가 있다. 너무도 지당한 결정이다. 그런데 갑오의병과 을미의병의 사이에 있는 2차 동학농민혁명(1894년 9월)은 국가보훈처가 서훈대상에서 지금까지 누락하고 있다. 위의 세 운동은 똑같이 국권을 침탈한 일본군에 맞서 항거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는데, 2차 동학농민혁명만 서훈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

갑오의병, 을미의병 등 의병 운동 참여자에 대해서는 국가보훈처가 지금까지 1천여 명을 독립유공자로 서훈하였다. 그런데 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는 단 한명도 독립유공 서훈을 하지 않고 있다. 이는 국가보훈처가 서훈의 형평성과 공정성을 스스로 위반한 것이다. 이제라도 바로잡아야 한다.

국가보훈처는 2차 동학농민운동의 서훈 불가 사유에 대해서 왜 밝히지 못하는가? 어떤 학문 연구 성과에 근거하여 "동학농민혁명의 독립운동 성격에 대한 학계의 의견이 일치되지 않다"는 것인가? '학계의 의견이 일치되어 있지 않다'는 학문 연구 성과를 국가보훈처는 제시할 의무가 있다. 국가보훈처는 역사학계의 학문 연구 성과를 제시하기 바란다.

다음으로 국가보훈처의 서면 답변은 2차 동학농민운동의 서훈과 관련된 규정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고 있다.

'독립유공자예우에 관한 법률'<약칭:독립유공자법>에 "일제의 국권침탈 전후로부터 1945년 8월 14일까지 국내외에서 일제의 국권침탈을 반대하거나 독립운동을 위하여 일제에 항거하다가 그 반대나 항거로 인하여 순국한 자"는 '순국선열'에 해당한다. 순국선열은 '독립유공자'로 포상한다고 되어 있다. 따라서 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로 일제와 항거하다가 순국한 자는 독립유공자에 해당한다. 이에 해당하는 자는 국가보훈처는 독립유공자로 포상해야 한다.

2004년에 국회가 제정한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등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에 "1894년 9월에 일제의 침략으로부터 국권을 수호하기 위하여 2차로 봉기하여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한 농민 중심의 혁명 참여자"를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로 규정하고 있다. 이 특별법에 의거하여 "동학농민혁명 참여자"의 명예를 회복한다고 되어 있다. 그렇다면, 국가보훈처는 특별법 제정의 의미를 수용하여, 2차 동학농민혁명도 독립유공 서훈대상에 넣어야 할 책무가 부여되어 있다.

이런 기본적인 일을 하지 않는다면, 국가보훈처는 독립유공 업무를 맡아서는 안 된다. 필자는 대한민국의 국기기관인 독립기념관이 독립유공 서훈 업무를 맡아도 충분하다고 본다. 독립기념관은 부속 연구기관으로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를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다.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에 소속한 독립운동사 연구자들이 국가보훈처 공훈발굴과의 빈약한 인원과 비교하였을 때,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가 전문 인력을 훨씬 많이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문서답

둘째, 2차 동학 농민 운동의 서훈과 관련하여, "서훈 추진시 관련 절차 및 소요일정"에 대한 여야 의원실의 질의에 대해, 국가보훈처는 "2021년 상반기까지 학술회의 등을 통해 동학농민운동의 독립운동 성격에 대한 의견을 수렴할 예정"이라고 서면 답변했다. 이와 관련한 또 다른 의원실의 질의에 대해, 국가보훈처는 "학술회의 등을 통해 동학농민운동의 독립운동 성격에 대한 의견을 수렴할 예정"이라고 똑같이 답변했다.

이처럼 국가보훈처는 여기서도 국회 여야 의원실의 질의에 동문서답하고 있다. 국회 의원실은 2차 동학농민운동의 서훈과 관련한 절차를 묻고 있는데, 국가보훈처는 "동학농민운동의 독립운동 성격에 대한 의견을 수렴할 예정"이라고만 답변하고 있다.

국회 의원실에서 서면 질의를 통해 국가보훈처에 묻자, 다시 국가보훈처는 내년 2021년 상반기에 학술회의 개최 예정이라고 회신한 것이다. 이는 내년 상반기 학술회의도 "예정"에 불과하여, 그 때 가면 다른 핑계를 대어, 학술회의를 다시 지연할 것으로 사료된다.

국가보훈처는 1차 동학농민운동과 2차 동학농민운동도 구분하지 못하고 있는가? 중학교 역사 교과서와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도 1차 동학농민운동과 2차 동학농민운동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2차 동학농민운동의 독립운동 성격에 대한 의견을 묻겠다고 왜 당당하게 밝히지 못하는가? 2차 동학농민운동이 항일 독립운동이라는 것이 밝혀지는 게 두려워서인가?

필자는 국가보훈처가 2021년 상반기에 학술회의 등을 열어, 의견을 수렴할 예정이라고 한 것은 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전봉준, 최시형 등)의 독립유공 서훈을 계속 지연시키려는 술책으로밖에 판단되지 않는다. 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인 전봉준, 최시형은 현재 국가보훈처 독립유공 서훈 공적심사에서 재심에 들어가 있고, 11월 순국선열의 날 이전에 재심이 끝나기로 되어 있었다.

이렇게 간단한 일인데

2차 동학농민운동의 독립운동 성격에 대한 학계의 연구 성과는 1980년에서 지금까지 산더미처럼 쌓인 연구에서 일제의 국권 침탈에 맞선 독립운동이라고 진즉 밝혀졌다. 내년으로 미루어 "동학 농민 운동의 독립운동 성격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겠다는 것은 국가 재정만 쓸데없이 소모시키는 일에 불과하다.

'2차 동학농민운동'이 독립유공 서훈대상에 해당하는지 아니하는지는 독립유공 서훈대상 개정위원회를 만들어, 기존의 역사학계 연구 성과를 검토하고, 합의를 통해 결정하면 간단히 끝날 일이다. 내년으로 미룰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미 1980년에서 2020년까지 40년간의 산더미처럼 많은 2차 동학농민운동에 대한 연구 성과가 있다. 연구사 정리도 되어 있다. 학술논문과 저서,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개설서를 검증해 보면 국가보훈처는 저절로 답을 얻어낼 수가 있다. 왜 이런 일을 하지 않고 있는가?

국가보훈처 장관은 보훈 업무 특히 독립유공 업무에 책임을 지고 있는 고위 공무원이다. 2차 동학농민운동의 서훈 문제를 신속히 해결하여, 이 문제로 더 이상 국가보훈처가 국민의 따가운 질책을 받지 말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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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 한국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과 우리말로 학문하기 모임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고려대 한국사연구소 연구교수와 한글학회 연구위원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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