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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의사 수는 부족하다. 이는 사실이다. 절대적인 수를 비교해보자. 우리나라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는 2017년 기준으로 2.3명으로 OECD 평균 3.5명보다 모자라다. 게다가 이 중 0.4명은 한의사로 실제 의사만 보면 1.9명으로 더 낮아진다. 지방으로 가면 의사 수는 더 부족해진다. 서울시 종로구는 인구 1000명 당 활동하는 의사는 16.29명이다. 반면 강원도 고성은 0.45명으로 격차가 상당하다. 

올해 6월을 기준으로 우리나라에서 활동하는 의사는 총 10만7천928명으로 인구 1000명당 평균 2.08명의 의사가 활동 중에 있다. 그러나 전국 250개 시군구 중 평균에 미치지 못하는 곳이 192곳으로 76%나 되며, 1000명 당 의사 1명도 없는 지역이 45곳이나 된다.

현재 우리나라는 가파른 속도로 노령 인구가 증가하는 반면 출생률은 지속적으로 감소해 초고속 고령화 사회에 접어든 상태다. 2029년부터 총인구가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그러므로 앞으로 의료서비스를 찾는 사람은 더 많아질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의대 졸업생은 인구 10만 명당 7.6명으로 OECD 평균 13.1명 보다 낮다. 의료서비스를 찾는 사람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의사 수는 늘어나지 않고 있다.

그들이 '공공 의대 설립'을 반대한 이유

정부는 지역별 의사 편차가 심한 점, 의료서비스 수요 대비 의사 공급이 적은 점을 고려하여 지난 8월 특단의 조치를 내놨다. 바로 '의대정원 확대'와'공공 의대 설립'이었다. 의사들은 곧장 반대하며 파업을 선언했다. 의대 정원 확대는 의사의 밥그릇이 걸린 문제였다. 의사가 늘면 경쟁상대가 늘어 소득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의사들은 의사가 많아질 경우 의료서비스 질이 낮아질 수 있다는 점, 인구는 줄고 의사는 늘고 있어 현 추세로라면 2038년쯤 OECD 평균과 비슷해질 것이라는 점을 들어 의대 정원 확대에 반대했다.

처음엔 '의대정원 확대'가 가장 큰 이슈가 되는 것 같았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의사들은 '공공 의대 설립'에 더 격분했다. 특히 의대생들이 '공공 의대 설립'에 더 반대했다. 그들은 '공정함'을 내세워 더 강렬하게 반대했다. 공공 의대에 추천제가 들어가 있다는 이유로 불공정함을 강조했다. 이는 의사협회에서 게시한 카드 뉴스에 잘 담겨있었다. 
 
ⓒ 의사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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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협회는 이 게시물을 통해 시민들에게 지지를 얻고 싶어했던 모양이다.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던  성적이 뛰어난 사람한테 진단받고 싶지 않으냐'는 뜻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시민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되려 오만하다는 평을 듣자 게시물은 하루 만에 바뀌었다.

A. 정당한 경쟁과 입시전형을 통해 꿈꾸던 의대에 진학한 의사.
B. 선발 기준이 명확하지 않은 시민단체 추천으로 공공 의대에 진학한 의사.


선택지 내용이 바뀌긴 했으나 결국 내용은 같았다. "더 유능하고 똑똑한 의사에게 진료를 보고 싶지 않냐"라는. 여기다 시민단체 추천은 사실과도 다른 내용이다.

수능이나 전교 1등만으로 더 유능하고 똑똑한 의사인지 판단할 수는 없다. 유능한 의사를 판단하기 위한 조건으로는 수능과 내신 이외에도 너무 많은 것들이 있다. 예를 들어 큰 수술을 할 때 의사는 전공의, 간호사를 포함한 팀을 꾸린다. 리더십이 필요한 셈이다. 절체절명의 시기엔 신속하고도 정확한 판단력을 갖춰야 한다. 낙태 수술과 같이 한 생명의 생사가 달린 수술엔 윤리의식도 필요하다. 그러나 다른 친구와 경쟁에서 이겨야 가능한 전교 1등과 수능 제도로는 이와 같은 능력을 판단할 수가 없다. 오히려 지금처럼 환자의 목숨을 담보로 파업하는 이기적인 의사만 만들지도 모른다.

의사들은 성적을 통해 뽑힌 한정된 인력이라는 조건을 내세워 코로나 시국에도 파업할 수 있었고, 추천제로 뽑힌다는 공공 의대생은 가볍게 무시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AI 의사가 등장하면 어떨까? 지난 2016년 가천 길병원은 인공지능 의사 왓슨을 암 환자 치료에 도입했다. 왓슨은 미국 컴퓨터 회사 IBM이 만든 인공지능으로, 290종의 의학저널, 200종의 교과서, 1200만 쪽에 이르는 의학 전문 자료를 담고 있다. 왓슨은 이러한 자료를 바탕으로 의사가 환자 정보를 입력하면 환자에게 적합한 치료 방법을 제시한다. 엄청난 데이터와 다양한 수술 노하우를 가진 왓슨은 때론 의사들이 생각해내지 못한 수술방법을 제시하기도 한다. 때문에 의학계에선 권위 있는 교수들의 처방이 조만간 무너질 것이라는 농담도 흘러나온다. 그만큼 AI 의사가 내리는 처방과 진단이 교수보다 훨씬 나을 수 있기 때문이다. 벌써 왓슨은 길병원에서 위암 환자 14명, 대장암 환자 23명 등 85명의 암 환자를 진료했다. 그럼 이제 의사들에게 같은 질문을 해보려고 한다.

당신의 생사를 판가름 지을 중요한 진단을 받아야 할 때, 누구의 진단을 받으시겠습니까?

A. 1200만 쪽에 달하는 의학서적과 논문을 탑재한 AI 의사.
B. 매년 전교 1등을 놓치지 않기 위해 학창 시절 공부에 매진한 의사.


불공정하다는 이유로 공공 의대 설립을 반대하는 의사들은 뭐라고 대답할까? 기계와 인간의 대결은 불공정하다고 할까? 의사들의 논리라면 AI 의사가 훨씬 더 똑똑한데 불공정하다고 말할 게 있을까? 이처럼 공정하다고 해서 모두 정의로운 것은 아니다. 당연히 시험은 AI 의사가 사람보다 더 잘 볼 것이다. 시험으로만 따진다면 AI 의사가 훨씬 더 능력 있다고 판단할 것이다. 그러나 AI 의사와 사람 의사를 비교하는 것 자체가 불공정하다고 볼 수도 있다. 의사들이 말하는 수능도 누군가에겐 불공정한 제도일지도 모른다. 

서울대 입학하는 비율이 수도권 학생이 압도적이다. 부모의 경제 능력이 좋을수록 더 좋은 대학을 갈 확률이 높다. 좋은 사교육도 받고, 학습 요건도 잘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은 집안의 학생들 중엔 학원에 가는 대신 아르바이트를 하는 학생들도 있다. 사교육은 물론이거니와 공교육의 울타리 안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학생들도 있다. 그들에게 수능과 내신은 어쩌면 처음부터 불공정한 제도일지도 모른다. 
  
본인들의 의사에 따라 국시를 보지 않은 것이다. 그 어느 누구도 시험을 보지 말라고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와서 한 마디의 사과도 없이 다시 보게 해 달라는 의대생들의 뻔뻔함을 보면 여러모로 아쉬울 따름이다. 우리 사회가 의사 집단을 기득권으로 인정하는 건 그들이 똑똑해서만이 아니다. 그 똑똑함으로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환자의 목숨을 구하고, 코로나와 같은 비상시기에 온 몸을 받쳐 최전선에 서주기 때문이다. 코로나가 재확산돼 위급했던 시기에 환자들의 목숨을 걸고 파업하는 의사들을 보며 나는 그들이 얼마나 능력주의적이고 엘리트주의적인지를 깨달았다.
 
ⓒ 뉴스사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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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29일 사천시 선구동 한 아파트에 페인트공이 밧줄 하나에 목숨을 담보로 밀린 임금을 달라고 한 농성이 화제였다. 이처럼 보통 평범한 노동자들의 파업을 보면 종탑이나 철탑 같은 높은 데서 자기들의 목숨을 걸고 파업한다. 그럼에도 노동자들에겐 공권력이 행사되고 언론의 비난이 쏟아진다. 그런데 하물며 의사들은 버젓이 남(환자)의 목숨을 담보로 파업을 하면서 결국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아무런 반성 없이 요구하는 것을 보면서 우리 사회가 전교 1등들을 괴물로 만든 건 아닌지 되돌아보게 된다.

의사들은 맨날 수술장에서 사는 까닭에 계절이 바뀌는지도 모르며 산다고 한다. 이번 기회에 당신들보다 더 힘들게 파업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안 보겠다는 시험을 떼쓴다고 다시 볼 수 없음을 알았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비슷한 글이 개인블로그 '신세대정치레이블(https://politicsofnewgeneration.tistory.com/)'에도 게제되어있습니다.


태그:#의사파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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