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만삭의 몸으로 지하철을 탈 때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출입구가 어딘지 파악하는 게 중요했다. 5호선처럼 땅 속 깊이 내려가야 하는 지하철이나 2개 이상 노선이 교차하는 환승역에선 엘리베이터가 있는 출구를 찾는 게 더욱 중요했다.

횡단보도를 건너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철을 타는 것까지는 무난하다. 문제는 내릴 때 발생한다.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야 하는데, 엘리베이터 앞에는 나이 지긋한 어르신부터 젊은 사람들까지 줄이 길다.

출산하고 유아차를 밀고 외출을 하려니 이건 문제가 더 심각하다. 유아차를 밀며 마트라도 한 번 다녀올라치면 머릿속으로 외출 과정을 시뮬레이션하고 만약의 상황을 대비한 뒤 현관을 나서야 한다. 우선, 인도가 끊겼다 다시 이어질 때마다 만나는 턱은 유아차를 운전하는 데 장애물이다.

유아들은 작은 덜컹임에도 잠이 깨거나 뇌에 영향을 받는다. 출산 후 약해진 관절로 유아차를 밀며 턱을 넘는 건 산모에게도 쉽지 않다. 이 난관을 헤치고 마트 앞에 도착하면 문을 통과해야 한다. 자동문인 경우는 자연스럽게 들어갈 수 있지만 버튼식 자동문이나 수동문인 경우도 많다.

버튼식 자동문은 몸을 뒤로 돌려 등으로 버튼을 누르거나, 손으로 버튼을 누르고 잽싸게 유아차 손잡이를 잡고 밀고 들어가야 한다. 자동문이 아닌 경우가 최고난이도인데, 몸을 뒤로 하고 등으로 문을 열어 그 상태를 유지면서 유아차를 안으로 당겨야한다(기인열전에 나올 자세가 된다. 온몸의 유연함을 최대한 끌어 올려야 함). 

다행히 마트 개장 시간이 아닌 경우에는 드나드는 사람들이 도와주어서 이런 곤란함이 매번 있는 건 아니다. 집 근처 마트도 이러할진대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이동하는 건? 지하철은 엘리베이터라도 있지만 버스는 유모차를 접지 않는 한 이용할 수 없는 대중교통 수단이다. 휴대용 유아차들은 접을 수 있게 나오지만 그런 유아차를 타려면 아이가 24개월 이상은 되어야 한다. 그 이전에 사용하는 무거운 유아차들은 접어서 들고 버스를 탈 수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어린 아이를 데리고 유아차를 밀고 밖으로 나오기 보단 집 안에 있게 된다. 자가용이 있고, 남편이나 다른 가족같은 도와줄 인력이 있을 경우에만 자유로운 외출이 가능하다.

홍은전의 <노란들판의 꿈>을 읽으면서 8살인 아이가 어렸을 때 겪은 일들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아이를 임신하고 낳기 전까지는 몰랐던 세상. 비장애인으로 당연하게 누렸던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몸의 변화로 한순간 달라지는 경험은 충격이었다. '잠시 불편하다, 장애인들은 정말 힘들겠구나!'에서 생각은 더 나아가지 못 했고 일상에 쫓기며 살았다. 

홍은전 작가의 첫 책이자 노들장애인야학 사람들의 이야기 <노란들판의 꿈>은 내게 보이지 않던 세상을 보게 한 책이다. 중증 장애인들의 삶에 대해 눈 뜨게 한 이 책은 그들의 곁에서 같이 공명하며 살아온 이가 쓴 기록이 아닌 자서전 같은 이야기였다.

재난은 우리 모두의 일이자 내 일
 
 그냥, 사람. 홍은전(지은이)
 그냥, 사람. 홍은전(지은이)
ⓒ 봄날의책

관련사진보기

 
그런 그가 이번에 신간을 낸다고 해서 출간되자마자 구입했다. 사람에 대한 따스한 시선과 깊이 있는 공감으로 이야기를 전하는 그의 목소리가 담긴 책 <그냥, 사람>. 5년 동안 한겨레 신문에 쓴 칼럼 60편을 모은 이 책에는 여러 사람이 담겨 있다. 홍은전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촘촘하게 과속하는 사회에서 촘촘하게 고통이 전가된다. 제 속도를 고집하며 안전거리를 유지하는 일은 욕먹기 십상이므로 사람들은 걸림돌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누군가를 몰아붙인다. 더이상 고통을 전가할 곳 없는 이들이 벼랑 끝에 매달려 있고 위로받지 못한 영혼들이 스스로 몸을 던진다. 죽음이 일상이 되었으나 책임을 추궁하는 일은 부질없다.(44쪽)

과속 트럭이 차선을 넘어와 언니 부부 차를 덮치고 뒤따라 오던 차 두 대가 현장을 들이 받으면서 홍은전 작가의 언니 부부는 10년 전 고인이 됐다. 과속과 안전거리 미유지로 인해 가족이 겪은 불행에서 그는 세월호, 산재와 장애인 이동권을 읽는다. 우리 주변에 있는 수많은 사건사고가 누군가의 일이 아니라 바로 내 일이었음을 말한다.

30년간 갇혀 지내던 장애인들이 거리에 나와 이동권을 요구하며 비장애인의 발을 30분 묶자, 사람들은 살기를 뿜으며 장애인들을 비난했다. 3분 빨리 가려고 안전거리를 유지하지 못하고 과속해야 하는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들이었다. 

이 책에서 선감학원과 서울시 지하도로 건설에 대해 처음 알게 됐다. 1970년대 거리정화, 사회정화를 한다는 명목하에 빈민을 상대로 진행된 국가 폭력행위인 선감학원은 어린 소년들을 대상으로 자행된 일이다.

어른들이 끌려간 곳이 삼청교육대였다면 아이들은 선감도의 선감학원에 끌려 갔다. 부모가 있다고 소리쳐도 마구잡이로 잡아갔다. 구타, 가혹행위, 성폭행, 살인, 강제노동이 자행되었고, 공포를 견딜 수 없는 소년들은 바다를 헤엄쳐 탈출하다 죽거나 다시 잡혔다. 선감도 야산에는 300여 구의 유골이 묻힌 것으로 추정된다.

안산의 지역사학자에 의해 다시 알려졌고 2016년 경기도의회에서 특별위원회를 꾸려 피해자들의 신고를 받았다는데, 이 책에서 처음 접했다. 50여년 전의 일이지만 지금도 이때와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사회 발전, 다수를 위한, 어쩔 수 없는'이라는 핑계로 권력을 가진 집단이 소수자를 치워 버리는 행위는 우리 사회에 여전하다. 거리에서 우리가 장애인을 만날 수 없는 이유다.

서울시 지하도로 건설은 서울시가 교통난을 해소하겠다며 주요도로를 지하화하는 사업에 대한 것이다. '박원순 표 4대강 사업'이라 불러도 좋을 수조 원의 세금과 민간 자본이 들어간 이 사업은 지하 50미터와 80미터에 10키로미터의 도로를 뚫는 일이다. 인구 천만 도시, 초고층 빌딩이 숲을 이루고 있는 도시에서 진행되는 이 사업은 규모에 비해 알려진 게 없다.

싱크홀 문제는 없는지, 지하도로 안에서 발생되는 매연은 어떻게 처리할 것이며 환경과 안전문제가 검토 됐는지도 궁금하지만, 이것이 최선의 교통난 해결책이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교통난을 해소하는 데에는 도로 확장이 아닌 자동차 수를 줄이는 방법도 있다. 대체 에너지가 개발되어 친환경 에너지를 사용하더라도 에너지 소비를 줄이지 않으면 환경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이처럼 교통문제는 도로확장이 아닌 자동차 수 감소와 대중교통과 자전거 등 친환경적 교통수단 이용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다. 

홍은전 작가도 서울시 지하도로 사업에 대해, 살고 있는 동네 양평동에 매연굴뚝이 생기는 사건을 통해 알게 됐다. 이를 통해 주민들이 발파로 이한 소음과 진동, 분진으로 항의하는 과정을 보면서 그는 대구지하철 참사, 2013년 태안 해병대 캠프 참사와 같은 재난이 우리 사회에서 반복되고 있음을 본다.

지하도로를 뚫으면 환기구든 출입로든 매연은 뿜어져 나오고 누군가는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 자동차를 찍어내고 도로를 뚫어대면서 교통량을 줄이겠다는 게 가능한지 의문을 던지는 그의 답답함에 깊이 공감했다.

내가 할 수 있을 일을 하겠다는 다짐

<그냥, 사람>에는 우리 사회에서 보여주지 않는 의도적으로 가려진 사람들이 나온다. 우리 곁에 숨쉬고 있고 그들의 활동으로 인해 나의 일상이 유지되고 있음에도 알 수 없었던 이야기들. 홍은전 작가가 전해 주는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이 됐다.
 
인구의 10퍼센트가 장애인이지만 그들의 존재는 드러나지 않고,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비장애인들은 일상적으로 자신들의 가해 사실을 인식할 수조차 없다. (125쪽)

소음이 차단된 방음 시설 속에 사는 것처럼 나에게 들리지 않는 소리를 들려 주고, 보이지 않던 비가시화된 사람들을 보여주는 <그냥, 사람>을 읽으면서 나의 가해 사실을 인지했다. 모두가 침묵하면 이러한 차별은 자연스러운 현상이 된다. 보았으니 침묵하지 않는 것, 내가 볼 수 없었던 내게 보이지 않았던 세상을 보려고 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홍은전 작가는 글쓰기를 통해 가려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불멸화 하려 한다. 그의 이야기를 나의 목소리로 옆사람에게 전하며 내가 할 수 있는 저항을 하고자 한다. 그러면 가려진 사람들이 어느 날은 <그냥,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개인블로그에도 실립니다.


그냥, 사람

홍은전 (지은이), 봄날의책(2020)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