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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기야 한방 병원 문까지 두드렸다. 우울증이라는 글자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란 뒤 나흘 만이다. 적어도 수면 유도제를 처방하지는 않을 거라는 막연한 생각 때문이었다. 당장 먹던 약을 끊고 싶었고, 그곳에서는 어떤 검사를 하고 진단을 내리는지도 궁금했다.

얼마 전 했던 검사를 그 방식 그대로 다시 했다. 피를 뽑기 위해 주사기 바늘을 꽂았던 자리조차 똑같았다. 예상대로 모든 수치는 정상이었고, 문제 될 곳은 없었다. 다만, 한방 요법의 체열 검사 결과, 머리와 가슴 부위에 열이 많다는 진단이 추가됐을 뿐이다.

특정 부위에 열이 많다는 걸 한방에서는 매우 중요하게 받아들이는 듯했다. 진단서에 적힌 '심화상염증'이라는 한자어를 유추해보면 대충 짐작해볼 수 있다. '마음에 불이 나서 생긴 병'이라는 뜻 아닌가. 옛 어르신들이 화병이라고 부르던, 바로 그 병을 가리킨다.

서양 의학에서 'Blue'는 한방에서 'Red'와 같은 뜻이라는 설명을 어디선가 읽은 적 있다. 대개 'Blue'로 표기하는 우울을, 한방에서는 화기, 곧 'Red'로 진단한다는 뜻이다. 말하자면, 우울증과 화병은, 서로 관점만 다를 뿐 원인도 증상도 같은 병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혹 떼려다 다른 혹을 붙인 꼴이 됐다. 진단서에 적힌 병명이 더욱 살벌해졌다. 그럴수록 아무렇지도 않던 몸이 구석구석 아픈 것만 같다. 우울증을 넘어 화병이라니, 처음의 과도한 스트레스로 인한 수면 장애라는 진단에서 멈출 걸 그랬다. 정말이지 '아 다르고 어 다른' 셈이다.

결국 입원하기로 했다. 무엇보다 몽롱하고 무기력한 채 아이들을 만나는 건 죄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나름 아픈 티를 내지 않으려고 더 큰 목소리로 떠들었는데, 수업을 마치고 교실을 나오면 마스크 낀 얼굴과 등에 식은땀이 났다. 말 그대로 매일 녹초가 되어 집에 돌아왔다.

그렇듯 몸이 천근만근인데도 하루가 멀다 하고 밤잠을 설쳤으니, 입원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적어도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다 해도 다음 날 출근 걱정이 없으니 몸이 닳지는 않을 테다. 언제까지 병원 신세를 질 수는 없는 법, 어떻게든 서둘러 수면 리듬을 찾아야 한다.

낮엔 잠과의 전쟁, 밤엔 깸과의 전쟁
 
 시곗바늘 소리와 함께 밤을 지새워본 사람은 안다.
 시곗바늘 소리와 함께 밤을 지새워본 사람은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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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원 첫날. 환자복으로 갈아입으니 저절로 초췌한 환자의 몰골이 됐다. 화기를 식히기 위해 침을 맞았고, 혈액 순환을 위해 부항 치료를 받았다. 발이 삐거나 했을 때 한의원을 찾긴 했어도, 부항 치료는 태어나 처음이었다. 살을 빨래 비틀어 짜는 듯한 그 느낌이 싫진 않았다.

낮잠을 자면 안 된다는 건 철칙이다. 낮에 병실 침상에 눕거나 기대서도 안 된다. 눕거나 엎드려 치료를 받을 때조차 잠시라도 눈을 붙여서는 곤란하다. 아닌 게 아니라, 지난 두어 달 동안 낮에 잠깐 졸기라도 하면 어김없이 지옥과 같은 밤을 보내야 했다.

시곗바늘 소리와 함께 밤을 지새워본 사람은 안다. 의사의 조언이 아니라도, 하품이 나오면 무조건 자리에서 일어나야 한다. 오후의 따사로운 햇볕이 주는 나른함은 수면 장애를 겪고 있는 환자에게 용납될 수 없다. 졸지 않도록 몸을 움직여야 한다. 계속 무언가를 해야 한다.

하루 두 번의 치료 중 오후 시간이 최대 고비다. 침이 꽂히고 부항이 살을 조이는 감각조차 느끼지 못할 정도로 잠이 쏟아진다. 그때를 못 넘기고 눈꺼풀이 감기면 지는 거다. 저녁 시간 운동을 하고, 명상을 하고, 미지근한 물로 샤워를 한다 해도 백약이 무효다.

낮엔 잠과의 전쟁이고, 밤엔 깸과의 전쟁이다. 스트레스가 해소되면, 응어리가 풀리면, 자연스럽게 일상으로 돌아갈 거라고 하지만, 당최 그게 뭔지도 모르는 마당에 뜬구름 잡는 이야기로 들린다. 여하튼 낮 동안 끝까지 버티다, 밤에 곯아떨어지게 만드는 게 급선무다.

점심께 시답잖은 '병원 일기'를 쓰는 것도 졸음을 쫓으려는 몸부림이다. 어차피 저녁 식사 이후에는 노트북을 켤 수도 없다. 환한 화면이 커피 못지않은 각성 효과가 있어 금기 사항이다. TV는 물론, 손바닥만 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것도 자제하라는 처방이 내려진 터다.

신기하게도 글을 쓸 때만큼은 졸리지 않다. 책을 읽을라치면 채 10분도 안 돼 하품이 쏟아진다. 적어도 지금 내게 책은 위험한 물건이다. 몸을 피곤하게 만든답시고 종일 병원 계단을 오르내릴 수도 없는 법, 그나마 자판을 두드릴 수 있으니 불행 중 다행이다.

- 다음 회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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