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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70주기를 맞아 열두번째 합동추모제가 태안군청 대강당에서 엄수됐다.
▲ 초헌하는 정석희 태안유족회장 한국전쟁 70주기를 맞아 열두번째 합동추모제가 태안군청 대강당에서 엄수됐다.
ⓒ 최하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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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태안경찰서장이 추모사와 추모화환을 보내고, 경찰 출신 태안군 수장인 가세로 군수가 취임 이후 3년째 추모식에 참석하면서 화합과 상생의 상징으로 자리 잡고 있는 자리가 있다.

바로 매년 이맘때 열리는 한국전쟁 민간인희생자 태안군 합동추모제다. 올해는 특히 한국전쟁 70주기를 맞아 열두번째 합동추모제가 태안군청 대강당에서 엄수됐는데, 이 자리에는 민간인희생자 유족들을 비롯해 애국지사 우운 문양목 선생 기념사업회원들, 동학농민혁명 유족회원들도 자리를 함께 해 추모제에 힘을 실었다.

특히 태안민간인 희생자의 3세가 자율방범대 제복을 입고 가슴에 추모리본을 단 채 참석해 유족들의 이목을 끌기도 했다.

또한, 비록 참석은 못했지만 황정인 태안경찰서장이 추모화환과 함께 태안민간인 희생자의 명복을 비는 추모사를 보내 눈길을 끌었다. 황 서장은 추모글에서 "70년 전 전쟁과 이념 갈등 속에서 수많은 민간인이 억울하게 희생을 당했다. 그들은 선량한 주민이자 친절한 이웃이었고, 누군가의 다정한 혈육이었다"며 "다시는 이 땅에 이러한 비극이 되풀이 되지 않아야 할 것"이라고 썼다.

 
가세로 태안군수가 한국전쟁 70주기를 맞아 열린 제12회 태안군합동추모제에서 추모사를 하고 있다.
▲ 민선7기 취임이후 3년째 참석한 가세로 태안군수 가세로 태안군수가 한국전쟁 70주기를 맞아 열린 제12회 태안군합동추모제에서 추모사를 하고 있다.
ⓒ 최하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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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선7기 취임 이후 3년째 합동추모제에 발길을 이어가고 있는 경출 출신의 가세로 태안군수도 화해와 상생의 메시지를 보내며 유족들을 위로 했다.

가 군수는 "경찰관의 한사람으로서, 이제는 군수로서 모든 부분에 대해 용서하시고, 화해와 해원으로 더 큰 태안을 만드는데 힘을 모아 달라"면서 "생각이 다르다고, 이념이 다르다고 해서 편견과 질시는 안된다. 후손들에게 부끄럼 없는 태안을 물려줘야 한다. 이제는 용서해달라. 화해, 상생해야 한다"고 숙연한 메시지를 보냈다.

박수 소리 없는 추모제… 유일하게 박수 받은 군의원

 
한국전쟁 70주기를 맞아 열두번째 합동추모제가 14일 태안군청 대강당에서 엄수됐다.
 한국전쟁 70주기를 맞아 열두번째 합동추모제가 14일 태안군청 대강당에서 엄수됐다.
ⓒ 김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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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편, (사)한국전쟁민간인희생자 태안유족회가 주최하고 태안군의 후원 아래 14일 열린 제12회 태안군 합동추모제는 코로나19의 엄중한 상황 속에서도 방역수칙을 철저히 준수하며 엄숙하게 진행됐다.

박민교 유족회 부회장의 개제선언으로 시작된 이날 합동위령제에서는 지난 70년간 유족들의 마음 한 켠에 켜켜이 쌓여 있는 한이 서린 축문이 행사장에 울려퍼지며 유족들의 심금을 울렸다.

함정만 유족회 이사의 목소리로 낭독된 축문은 "사상이 무엇인지 가갸거겨도 모르던 무지렁이를 보도연맹의 낙인을 찍고 부역의 딱지를 붙여 평화롭던 이웃을 갈랐습니다. 아버지! 원통하고 애통합니다. (중략) 아버지! 가슴이 찢어지고 목이 멥니다. 평생을 불러보지 못한 이름 '아버지', 한번도 그려보지 못한 얼굴 '아버지', 생전에 효도 한번 못해 본 게 한이 되어 불효자는 땅을 치며 통곡합니다. (중략) 부디 해원 안식을 비옵니다."라는 글에 감정이 더해졌고, 합동추모제를 엄숙한 분위기로 이끌었다.

정석희 유족회장이 단상에 나서 이어진 내빈 소개에서는 내외 귀빈과 유족회 임원들의 소개가 이어졌다. 특히, 이 자리에서는 이날 합동추모제에서 유일하게 박수소리가 대강당을 메웠다.

박수의 주인공은 태안군의회 송낙문 부의장. 송 부의장은 민간인희생자 유족회가 결성된 충남 6개 시·군 중 유일하게 조례가 없었던 태안군에 지난 2018년 '태안군 한국전쟁 민간인희생자 위령사업 지원 등에 관한 조례'를 대표발의해 민간인희생자에 대한 추모 및 위령사업 등 유족회를 지원해 유족들의 아픔을 치유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됐기 때문이다.

 
한국전쟁 70주기를 맞아 열두번째 합동추모제가 14일 태안군청 대강당에서 엄수된 가운데 정석희 태안유족회장과 가세로 태안군수가 헌화하고 있다.
▲ 헌화하는 정식희 유족회장과 가세로 태안군수 한국전쟁 70주기를 맞아 열두번째 합동추모제가 14일 태안군청 대강당에서 엄수된 가운데 정석희 태안유족회장과 가세로 태안군수가 헌화하고 있다.
ⓒ 최하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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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빈 소개 후 인사말에 나선 정석희 태안유족회장은 "70년이 지나도록 아직도 안식을 찾지 못하고 구천을 떠돌고 있는 백만 희생자의 원혼과 그 뒤에 남겨진 수백만 유족들이 흘린 통한의 피눈물은 어찌할 것인지 이젠 문재인 대통령이 있는 대한민국이 대답해야 한다"면서 "지난 5월 20일 가까스로 국회를 통과한 과거사법 개정안에 기대를 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며 제2기 과거사법에 거는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정 회장은 이어 "2005년 1기 과거사법이 이명박 정부 당시 유야무야 단축됐다"고 전제한 뒤 "이제 2기 과거사법이 시작되는데, 내년 1월이면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본격 가동될 것으로 보인다. 15년 전 신청 못했던 유족분들 이번에는 꼭 신청해서 기대를 걸어보자"면서 "태안유족회도 TF팀을 구성해 유족들을 돕겠다. 좋은 법이 만들어진 만큼 관심을 갖고 적극 활용해보자"고 말했다.

엄숙하게 마무리된 열두번째 합동추모제… 영화 '태안'도 이달 21일부터 공동체상영 돌입

 
이날 열두번째 합동추모제에는 문양목선생 기념사업회, 동학농민혁명 태안유족회, 태안유도회 등도 함께 참석해 행사에 힘을 실었다.
▲ 참석자들 단체사진 이날 열두번째 합동추모제에는 문양목선생 기념사업회, 동학농민혁명 태안유족회, 태안유도회 등도 함께 참석해 행사에 힘을 실었다.
ⓒ 최하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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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편, 이날 합동추모제에서는 또 지난해 1년 동안 촬영한 태안민간인 희생자 유족들의 생생한 증언이 담긴 영화 '태안'에 공동체 상영일정 공지와 함께 영화 '태안'에 직접 출연하면서 유족들의 아픔을 마주했던 강희권 유족회 상임이사의 추모글도 낭독되며 추모제 마지막까지 엄숙하게 진행됐다.

'해원'을 연출한 구자환 감독의 작품 영화 '태안'은 이달 21일 창원을 시작으로 오는 27일에는 전남 광주의 광주극장에서 상영될 예정이다. 이 자리에는 구자환 감독과 세월호 유민아빠 김영오 씨, 강희권 상임이사가 참석해 관객들과 만난다. 아직까지 태안에서의 상영 일정은 확정되지 않았지만 강 상임이사는 "태안에서도 태안군과 협의해 상영일정을 잡겠다"고 상영을 예고했다.

'유복자'라는 제목의 글을 쓴 강 상임이사는 "지난해 1년간 영화 태안을 촬영하면서 상상할 수 없는 사연들이 많았다"면서 촬영당시 만났던 유족들의 사연을 추모글로 소개했다.

다음은 추모글 '유복자' 전문이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없었다.
철이 든 후 알았다.

아버지는 한국전쟁 당시 보도연맹이란 이유로 경찰에게 끌려가 사기실재에서 희생당했고, 어머니는 유복자로 태어난 젖먹이와 헤어진 채로 원북면 아이를 못 낳은 집의 두 번째 부인이 되었다는 것을.

보도연맹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어머니가 왜 어린 젖먹이를 놔둔 채 다른 집으로 떠나야 했는지 알지 못했다.
큰 댁에서 집안 식구들의 천덕꾸러기로 살았고,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다.

2008년인가 한국전쟁 민간인희생자 진실규명 신청을 했다.
국가를 상대로 배상청구소송을 해서 대법원까지 갔으나 승소하지 못했다.
억울한 마음으로 몇 일간 막걸리만 한없이 들이켰다.

아버지는 사기실재에서 뜨거운 불길 속에 총 맞아 학살당하며 신혼의 어린 새댁을 얼마나 걱정하셨을까. 할아버지는 불에 타 검게 그을린 100여 구와 시신 속에서 젊은 아들의 시신을 찾아 지게에 지고 오시며 찢어지는 가슴에 눈물이나 제대로 흘리셨을까.

어머니는 소름끼치게 처참한 남편의 시신을 껴안고 얼마나 피눈물을 흘려셨을까.
어린 젖먹이를 뒤로한 채 시댁을 떠나야 했던 가여운 어머니는 평생을 어찌 사셨을까.

언제부터인가 마음 속에 "누가 뭐라고 한다 해도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아버지 산소 옆에 함께 모셔야지." 자꾸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무엇이든 하고 싶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이 왔다.

장례식장으로 달려가 어머니가 낳은 성이 다른 동생에게 눈물로 부탁했다.
"아우, 아우는 큰 어머니가 계시니 지금 돌아가신 어머니는 내가 모셔가야겠네"

한동안 말이 없던 동생이 입을 열었다.
"그래유 형, 형이 모셔 가유"

아버지 산소 옆에 어머니를 모신 유복자의 울음소리는 안기리 들판을 건너 태안경찰서를 지나 사기실재로 향했다.」

덧붙이는 글 | 태안신문에도 송고합니다.


태그:#한국전쟁민간인희생자, #합동추모제, #태안유족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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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의 지역신문인 태안신문 기자입니다. 소외된 이웃들을 위한 밝은 빛이 되고자 펜을 들었습니다. 행동하는 양심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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