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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14회 서울여성문화축제의 일환으로 연재되는 기획 기사입니다. 2020년 대한민국의 성교육의 현재와 문제점과 대안, 다양한 경험이 있는 주체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N번방과 같은 사회의 성폭력이 계속되고 있는 중 많은 사람은 성교육을 대안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성교육이 대안이 되기 위해선, 현재 진행되고 있는 성교육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내용을 바탕으로 성평등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떤 성교육이 필요할지에 대해 이야기해야 합니다.

본 기사는 세 편의 연재 기사로 연재됩니다. 첫째, 여성단체 활동가로서 사회의 성과 관련된 폭력 속에서 성교육의 대안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둘째, 실제 아이를 키우고 있는 여성으로서 현행되고 있는 성교육 제도에 대한 문제점과 포괄적 성교육의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마지막으로, 직접 아이들을 만나는 성교육활동가로서 겪었던 성교육의 실태 속 고민과 대안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기자주]


조두순의 출소가 한 달도 남지 않았다. 2008년 12월 경기도 안산시에서 8세 여아를 성폭행해 장기 파손 등의 상해를 입힌 조두순은 오는 12월 13일 만기출소를 한다. 조두순은 사건 당시 음주 상태였다는 심신미약이 참작돼 12년 형을 받았다. 지난 10월 정부는 출소를 앞둔 조두순의 재범 방지와 피해자 보호를 위한 관리방안을 뒤늦게 수립하기도 했지만 결국 피해자 가족이 안산시를 떠나기로 결정했다. 12년이 지난 뒤에도 피해자가 평범한 일상을 안전하게 누릴 수 없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최근 4년간 13세 미만 아동 대상 성폭력범죄 발생건수는 2016년 1083건, 2017년 1261건, 2018년 1277건, 2019년 1374건으로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성폭력 범죄의 재범률 역시 2016년 4.4%에서 2019년 6.3%로 증가세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은 불안감에 휩싸여 두려움을 느낀다. '하루 평균 3.4건 발생하는 성폭력범죄에서 어떻게 우리 아이를 보호할 수 있을까? 우리 아이의 안전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것은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부터 의무적으로 실시하고 있는 안전교육이다. 아이들은 매달 화재와 지진, 교통 등의 사고 예방 교육을 의무적으로 받는다. 하지만 이 교육에서 성교육은 빠져 있다. 당연하게 성폭력 예방 교육을 받을 기회는 주어지지 않는다. 불안한 양육자들은 시중에 나와 있는 성교육 그림책을 구입해 '각자 교육'을 할 수밖에 없는데, 성폭력 예방 그림책을 읽어주다 보면 혼란에 휩싸인다. 높은 판매량을 믿고 구입한 베스트셀러 성교육 그림책이 알려주는 예방법은 "싫어요!", "안돼요!"를 외치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성폭력 상황에서 소리를 지르거나 싫다고 저항을 해야 한다는 '피해자 중심 교육'은 피해를 입은 아이에게 죄책감을 줄 수 있다. 성폭력의 원인은 가해자의 행동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싫어요'를 하지 못해서, 내가 잘못해서 성폭력을 당했다는 생각을 심어줄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아이가 저항을 한다 한들 실효성도 희박하다. 어떤 그림책은 네가 싫다고 소리를 지르기만 하면 무서운 사람이 너를 괴롭히지 못하고 도망을 갈 거라고 단언을 하기도 하는데, 아이들에게는 사실과 전혀 다른 내용을 가르쳐도 되는 걸까?

현실과 동떨어진 그림책, 아동 성폭력 가해자 65.3%는 아는 사람

성폭력 예방 그림책의 문제는 성폭력이 일어나는 상황에서도 찾을 수 있다. 다수의 그림책이 성폭력이 발생하는 공간을 놀이터나 학교 근처, 상점으로 설정하며 가해자를 낯선 사람으로 그린다. 하지만 아는 사람에게 당하는 피해 비율도 2005~2009년 64.4%에서 2015~2019년 78.3%로 증가하는 추세(광주해바라기센터)다. 이런 관계에서 발생하는 성폭력은 1회에 그치지 않고 은밀하게 장기간 지속된다. '낯선 사람'을 조심해야 한다는 가르침이 무의미한 이유다.

또한 성폭력의 가해자가 주로 성인 남성으로 그려진다는 점 또한 한계를 가진다. 아동 청소년 성범죄 가해자는 점점 어려져 10대가 63.6%에 이르고 있기 때문이다. 광주해바라기센터의 2005~2019 가해-피해 현황 분석 결과, 19세 미만 가해자의 비율은 2005년 36%에서 63.6%로 15년 사이에 2배가 늘어났다. 가해자 성인- 피해자 아동의 구도에서 벗어나 또래 간에서 발생하는 피해를 예방하기 위한 대책과 교육이 시급하다.

그렇다면 우리 아이들에게 읽어주어야 할 성교육 그림책, 바람직한 성폭력 예방 방법을 담은 책은 무엇일까? 9살 아이를 키우고 있는 필자는 지난 9월과 10월, 서울여성회의 성교육 교재 모니터링에 참여했다. 성평등한 사회를 위해 활동하는 서울여성회는 N번방 이후 제대로 된 청소년 성교육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 아래 시중에 유통 중인 성교육 교재의 문제를 찾고 대안을 모색했다. 모니터링 결과 성폭력 예방을 위해 읽어 주기 좋은 그림책을 찾을 수 있었다. 추천도서는 다음과 같다.

나와 다른 사람의 경계를 인지하고 존중하며 안전한 관계를 맺는 방법은?
 
<내가 안아줘도 될까?>와 <동의>의 표지
▲ 건강한 경계 교육 그림책 <내가 안아줘도 될까?>와 <동의>의 표지
ⓒ 풀빛,아울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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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닌 샌더스 글, 세라 제닝스 그림, 풀빛 출판사의 그림책 <내가 안아 줘도 될까?>는 경계를 존중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좋아하는 친구가 있더라도 마음대로 껴안거나 뽀뽀를 하면 안 된다는 것,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개인 영역이 있고 이걸 함부로 마음대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차근차근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아울북 출판사의 그림책 <동의>는 안전하고 건강한 관계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동의'의 개념을 알려준다. '동의'를 설명하는 짧은 성교육 동영상 <동의는 차 마시는 것(TEA CONSENT)>으로 유명한 저자 레이철 브라이언은 밝고 활기찬 일러스트로 나만의 경계선을 정하고 멋진 친구가 되는 방법을 유머러스하게 전달한다.
 
<슬픈 란돌린>과 <선생님, 도와주세요>의 표지
▲ 아동 성폭력 예방 그림책 <슬픈 란돌린>과 <선생님, 도와주세요>의 표지
ⓒ 문학동네어린이,고래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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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트린 마이어 저, 문학동네어린이에서 출판한 <슬픈 란돌린>은 가까운 사이에서 발생하는 성폭력 문제를 다루고 있다. 성폭력 가해자들의 비밀유지 강요로 인해 성폭력이 발생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는 아동 성폭력 문제를 예방할 수 있는 그림책이다.

고래이야기 출판사의 <선생님, 도와주세요!>는 두려움을 앞서게 하는 성폭력 예방교육에서 탈피한 그림책이다. 이 책의 글쓴이 섀논 리그스는 어린 시절 성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어 아이들이 같은 아픔을 겪지 않도록 책을 썼다고 밝힌다. 자연스럽고도 잔잔한 감정이입을 통해 성폭력에 대비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

전 연령의 광범위하고 포괄적인 성교육이 필요해

서울여성회의 성교육 교재 모니터링을 통해 아이에게 읽어줄 좋은 그림책을 찾을 수 있었지만 동시에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심각한 문제를 느낄 수도 있었다. 일단 아이를 키우는 양육자 본인이 제대로 된 성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다는 사실, 그래서 아이에게 어떤 교육을 해줘야 하는지 방향을 잡는 것부터 쉽지 않다는 현실이다. 성교육의 필요성은 갈수록 올라가지만 제대로 된 성교육은 여전히 부재한 상황에서 우리는 하루빨리 바람직한 성교육의 표준을 제정해야 한다. 전 연령의 사람들에게 광범위하고도 포괄적인 성교육의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오늘도 여전히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는 성폭력의 문제는 결코 개인의 노력으로 해결할 수 없다. 성교육의 현장은 가정뿐 아니라 모든 기관과 단체, 사회 전체가 되어야 한다. '정자와 난자, 임신과 출산' 중심의 교육을 넘어서, '피해자가 조심하면 된다'는 식의 대책을 넘어서. 아동과 청소년은 물론 성인 모두가 몸과 성을 바르게 이해하고, 안전하고 평등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관련 기사] 성교육은 'N번방 문제' 해결할 수 있을까? http://omn.kr/1qhsa

태그:#성교육, #성폭력예방, #조두순출소, #성교육그림책, #아동성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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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여성회는 서울 여성들의 자기성장, 성평등한 마을 만들기, 폭력과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위해 활동하는 생활인 여성들의 공동체입니다. 2007년 7월에 창립하여 서울여성문화축제, 서울여성아카데미, 지역아동센터 성교육 및 부모교육, 지속 가능한 생태 지킴이 활동과 식량주권운동 등 다양한 사업을 진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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