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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태풍 볼라벤이 왔을 때의 일이다. 강력한 태풍 탓에 후배 농부가 재배 중이던 배가 낙과했다. 현장에 찾아가 보니 실로 처참했다. 착잡한 마음을 안고 집으로 돌아와 네이버 블로그, 카카오스토리, 페이스북에 그 실태를 올렸다. 그저 사진 몇 장 찍어 올렸을 뿐, 판매에 관련된 말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 40박스가 팔렸고 SNS 팔로워들의 공유 덕에 더욱 바람을 탔다. 그렇게 이틀 만에 220박스를 판매했다. 이외에 물러진 배는 식당에 고기 숙성용으로 팔았다. 인근에서 직접 차를 몰고 와 몇 박스씩 사 가는 사람도 있었다.
 
'지리산 자연밥상'을 운영하는 고영문 대표가 자신의 SNS에 직접 게시한 낙과 사진.
 "지리산 자연밥상"을 운영하는 고영문 대표가 자신의 SNS에 직접 게시한 낙과 사진.
ⓒ 고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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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심은 옛말이 아니다. 요즘 SNS에는 인심이 넘친다. 그중에는 건강한 먹거리를 찾는 도시인들이 있다. 이들은 농가에서 운영하는 SNS 게시물을 보며 가끔은 귀농을 꿈꾸기도 한다. 소비자들이 소셜미디어로 모여들면서 이제 농민들은 SNS를 직접 운영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그렇다면 현재 중소규모 농가에서 운영하는 SNS는 어떤 모습일까? 그리고 실제로 농가 소득에 도움이 될까? 지리산 중소농가의 제품을 모아 '지리산 자연밥상'이라는 쇼핑몰을 운영하는 고영문 대표(56)를 만났다. 쇼핑몰에는 약 100개의 상품이 등록되어 있다. 그중 3분의 2가 중소농가의 상품이다.

그는 쇼호스트이기도 하다. 동료 농부들이 농사를 짓고 수확하여 재가공하는 장면을 화면에 담는다. 포장부터 홍보 영상 촬영까지 직접 진행한다. 특히 담금주와 김부각은 완판 시켰다. '지리산 자연밥상'은 지리산 플랫폼으로 성장하고 있다.

고 대표는 전남 구례군 백두대간 첫 마을인 농평 마을에서 돌배, 쑥부쟁이 등을 직접 키우는 농부다. 또한, '지리산 자연밥상' 영농조합원들과 상품을 직접 만들어 판매한다. 다양한 SNS 채널을 통해 지리산의 아름다운 자연을 소개하며 친환경 농산물의 재배 과정을 이야기 형식으로 풀어낸다.

자칭 '소셜 농부'인 그는 카카오스토리, 페이스북, 인스타, 네이버 블로그 등을 합쳐 11만 명이 넘는 팔로워를 보유하고 있다. 그에게 현재 중소농가의 실태와 향후 발전 방향에 대해 물었다.

온라인 플랫폼에 허우적대는 농부들
 
고영문 지리산 자연밥상 대표.
 고영문 지리산 자연밥상 대표.
ⓒ 고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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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이 너무 많고 변화도 빨라요. 어르신들이 네이버, 쿠팡, 인터파크, 티몬, 아마존 등을 모두 배워서 관리하는 데엔 한계가 있죠. 또 매체마다 특성도 다를 뿐더러 당근 마켓과 같은 최신 트렌드도 따라가야 해요. 마을 어른들은 '나는 15년째 준비만 하고 있네'라고 하십니다. 플랫폼이 새로 나올 때마다 모두 권유하는 것 자체가 어르신들께 부담이 되는 거죠." 

에릭 슈밋(Eric Schmidt) 구글 회장이 "플랫폼은 강력한 성공 비결"이라고 전할 만큼 급변하는 인터넷 시대에서 플랫폼 활용법은 더욱 중요해졌다. 이에 발맞춰 고 대표 또한 '지리산 플랫폼'을 만들어 중소농가들에게 온라인 플랫폼 활용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주변 농가들과 정보를 나누기 위해 하동과 구례의 농부들을 모아 '지리산 소셜 골방'이라는 스터디그룹을 만들었고 2011년에는 스마트소셜연구회를 결성, 지금은 전국을 찾아가는 SNS 농산물 마케팅 강사로도 활동 중이에요."

종일 일해야 하는 농사일의 특성상 농부들이 온라인 플랫폼을 사용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최신 트렌드를 파악하고 대응하는 것은 상상하기도 어렵다. 직접 지은 작물로 상품 개발까지 한다고 하더라도 자신에게 적절한 홍보 방법을 찾는 일은 혼자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상위 노출? 알고리즘? 알쏭달쏭 마케팅 기법

고 대표는 글로벌 전자상거래 플랫폼인 '카페24'를 통해 여러 플랫폼을 한 번에 관리한다. 또한 농사를 지을 수 없는 겨울에는 광고·마케팅에 조금 더 치중하여 온라인 플랫폼에 상품을 노출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예를 들어, '지리산 자연밥상' 사이트가 네이버 상단에 노출되기 위해서는 여러 활동이 필요하다. 페이스북이나 카카오스토리 등에서 '유기농 꿀'을 검색한 소비자들이 네이버 스마트 스토어로 들어올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또한 블로그에 주기적으로 글을 게시하고, 지식인에 성실히 답변을 달아 해당 사이트로 고객을 유입시켜야 한다. 상품 판매 개수, 좋은 후기, 재구매율 등을 모두 고려해 상위 노출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이처럼 각종 검색 엔진에 자신의 게시물을 상위에 노출시키는 이 모든 과정을 '검색 엔진 최적화'(SEO :Search Engine Optimization)라고 한다. 하지만 이런 전문 지식이 부족한 중소농가에게는 곤혹스러운 일일 뿐이다.

"과거에는 입소문이나 전단지, 옥외 광고를 이용해 충분히 홍보가 가능했습니다. 또한, 직거래 쇼핑몰에 농산물을 올리기만 하면 알아서 팔리는 형태였어요. 하지만 요즘 인터넷 포털사이트는 광고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구조입니다. 농부들이 막대한 마케팅 비용을 들여야 많은 소비자에게 본인의 상품을 노출시킬 수 있는 거죠. 투자 대비 노출 빈도는 생각보다 낮아요.

광고를 한다고 해서 무조건 판매량이 오른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전문적인 마케팅 기법을 알아야 하는 거죠. 농부들은 이제 포기했어요. 밭떼기(밭에서 나는 채소, 과일 따위를 심어져 있는 상태에서 통째로 팔거나 사는 일) 거래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직거래가 점점 힘드니까."


그럼에도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SNS'
 
꾸준히 SNS에 지리산을 알린다
 꾸준히 SNS에 지리산을 알린다
ⓒ 지리산 자연밥상 카카오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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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산물은 다른 제품군에 비해 생산 기간이 길고 변수도 많다. 이중 하나라도 어긋나면 언제, 어떻게 상황이 바뀔지 모른다. 그렇기에 고 대표는 농산물 생산 과정부터 소비자에게 다가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 수단이 바로 SNS다.

"스마트폰이 가장 좋은 농기구입니다. SNS를 이용해 '온라인 농사'를 짓는 거죠. 실제로 제 SNS에는 지리산 주변 풍경이나 농부의 소소한 일상 관련 글이 많습니다. 향수에 잠긴 팔로워들과 친밀감을 형성하고 농사짓는 과정을 통해 신뢰감을 쌓는 거예요. 스토리텔링을 기반으로 농촌의 일상을 '브랜드화'하는 겁니다."

그는 SNS가 대규모 농가의 생산품과 외국 수입 상품으로부터 중소농가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 전했다. 소비자와 소통하고 공감을 얻어 농산물을 구매할 수 있게 유도하는 것이다. 이것이 그가 스마트폰은 '소셜 농기구'라 주장하는 이유다. 굳이 '판매합니다'라는 말을 하지 않아도 판매량을 끌어올릴 수 있다.

"무턱대고 '돌배 팝니다'라고 올린다고 해서 무조건 팔리는 게 아닙니다. 누가, 어디서, 어떻게, 얼마나 건강한 먹거리를 만드는지에 해당하는 모든 과정을 어필해야죠. 매 게시물마다 단순히 '사주세요'라고 말하면 과연 소비자들이 좋아할까요? 그보다 깨끗한 환경에서 키운 농산물을 선보이고 소통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에요."

'중·소 규모' 농가 위한 정책 마련도 필요
 
직접 농사짓는 과정을 사진으로 남긴다
 직접 농사짓는 과정을 사진으로 남긴다
ⓒ 고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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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농촌은 농림 수산업, 제조·가공업, 유통·서비스업이 복합된 '6차 산업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고령화된 농가에서 이 모든 것을 감당하려면 결국 막대한 노동력과 비용을 들일 수밖에 없다. 사(四)철 농사가 아닌 '사(死)철 농사'가 되는 것이다.

"대한민국, 특히 농촌 사회는 초고령화 시대로 빠르게 접어들고 있습니다. 어르신이 생산뿐 아니라 상품 가공과 서비스업을 병행하기는 너무 힘들죠. 분업화를 통해 기존 농부들은 1차 산업에 집중하고, 나머지 산업은 젊은 층에 맡겨야 합니다. 그렇게 된다면 일 효율도, 수익도 높아지지 않을까요."

중국 알리바바((阿里巴巴) 기업의 전자상거래 사이트 타오바오(淘宝网)는 2014년 '타오바오 마을(淘寶村)' 사업을 추진했다. 이전에는 농산물을 오프라인에서 직접 판매했으나 농촌 타오바오가 생긴 후 온라인 플랫폼으로 전국 각지의 특산물 거래가 가능해졌다. 이로 인해 일자리를 찾으러 떠났던 청년들이 귀향했다. 또, 배송 서비스 덕에 접근성이 떨어지는 시골에서 장소에 구애를 받지 않고 각종 생필품과 농업용품을 편리하게 살 수 있다. 농촌 지역의 경제를 살리는 역할을 한 셈이다.

"물론 한국에서도 시·도별로 직거래 쇼핑몰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어요. 유통 구조 개선에도 힘쓰고 있죠. 하지만 아직 과도기라 안정적으로 정착되진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중소규모 농부들에게 직접 찾아가 온라인 플랫폼 활용방안, 마케팅 기법 등을 강의하는 거죠. 이들에게 알려줘야 실수를 줄이고 결국 망하지 않을 테니까요. 그들에게 전문적인 교육이 더욱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이들을 위해 교육뿐 아니라 농가의 규모별로 맞춤형 유통·마케팅 전략을 추진해보는 것은 어떨까. 기존의 복잡한 농산물 유통단계를 축소해 유통마진이 줄면, 생산자는 1년간 피땀 흘려 지은 농산물을 제값에 받을 수 있고 소비자는 더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게 된다. 즉, 중소농가의 판로를 보장하고 많은 소비자들이 지역의 여러 농산물을 이용할 수 있도록 공공 플랫폼을 더욱 활성화시켜야 한다. 마침 경기도의 '마켓경기', 전라남도의 '남도장터' 등 신선한 지역 농산물을 합리적인 가격에 판매하는 지자체 쇼핑몰이 대표적인 예이다.

또한, 판로 확보가 쉽지 않은 중소농가의 경쟁력을 강화할 마케팅 기법을 개발하는 것도 방법이다. 최문순 강원도지사는 코로나 사태로 출하량이 크게 줄어든 감자를 판매하기 위해 랜선 마케팅을 시도했다. 창고에 쌓여만 가던 강원도 감자가 온라인에서 '핫한 아이템'이 된 것이다. 2주 만에 완판 신화를 일으킨 그는 '감자 도지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중소벤처기업부도 '가치삽시다' 캠페인을 통해 소상공인의 판로 개척을 돕고 있다. 그들이 온라인에서 지속적인 매출을 확보할 수 있게 입점 준비 과정을 지원하고 마케팅 기법에 대한 교육을 제공한다. 특히, '가치데이 라이브커머스'는 소상공인의 상품을 '가치삽시다' 플랫폼(https://v.dongbanmall.com/intro)과 위메프, 카카오커머스 등 민간 플랫폼에서 동시 방송해 판매하는 마케팅 방식이다. 지난 9월 정규 편성 이후 두 달여 만에 약 10억5200만 원의 매출실적을 달성했다.

미래학자들은 코로나19를 겪으며 미래의 트렌드 중 하나로 '공감'을 뽑는다. 농촌과 도시, 지역 간의 공감은 먹거리 공동체를 만드는 기반이 될 수 있다. SNS가 제공하는 연결망은 그 공감대의 핏줄이 될 것이다.

이런 느낌이나 개념이 없어도 농촌과 마음을 나누는 아주 쉬운 방법이 있다. 중소규모 농가가 운영하는 직거래 쇼핑몰에 방문해 보는 것이다. 지리산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지리산 자연밥상'도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

태그:#농촌, #농사, #귀농, #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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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불쏘시개 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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