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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휴 후반을 향하는 26일 오후 7시 29분, 아는 이름한테 카톡이 왔다. 

"안녕하세요. A입니다. 물어볼게 좀 있어서요. 확인하시면 메시지 부탁합니다."

얼마 되지 않아 보이스톡으로 전화가 왔다. 전화를 받을 때까지 나는 직전에 온 카톡을 보지 못했지만, 전화를 건 분이 아는 이름이라 받았다.

"안녕하세요. A입니다."
"예, 안녕하세요. 어쩐 일이세요."


한참 잡음이 들렸다가 끊겼다. 3년 전쯤 행사장에서 본 후로 연락한 적은 없지만 내 전화번호가 없어서 그럴까 싶어 내 전화번호를 보내면서 연락을 달라 했다. 

대화가 시작됐다. A는 본인이 해외에 있다면서 용건을 말했다. 
 
A의 카톡을 해킹했고, 내가 중국과의 연관성이 있다는 것을 파악해 보이스피싱을 시도했다
 A의 카톡을 해킹했고, 내가 중국과의 연관성이 있다는 것을 파악해 보이스피싱을 시도했다
ⓒ 조창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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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라 잠시 문자 괜찮겠습니까. 혹시 중국에 연락되는 지인분이나 관계자분이 계실까요. 지역은 상관없고 계좌를 지정해주시면 보내드릴 테니 중국계좌로 위안화 송금을 도와주실 수 있는 분을 찾고 있는데 쉽지가 않네요. 오늘 중으로 처리를 해야 하는데 지금 방법이 없어서요." 

즉, 급하게 중국으로 송금해야 하는데, 한국 계좌를 알려주면 그곳에 돈을 넣을 테니, 중국으로 송금해줄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였다. 5만 위안을 처리해야 하는데, 가능한 액수만 해주어도 된다고 말했다. 급해서 오늘 중으로 처리하고 싶다는 첨언도 있었다.

나로서는 의심할 여지가 별로 없었다. 아는 분이고, 일단 한국계좌로 넣고 중국 계좌로 송금하는 것이기 때문에 돈을 잃을 일도 없었다. 급하게 요청하기에 중국에 있는 지인 두 사람에게 위챗으로 상황을 말했다.

얼마 후 한 친하게 지내는 한 동생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렇게 급하면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큰 액수도 아니고, 급한 상황이니 편의상 해줄 수 있는 일이었다. 
  
순간적으로 의심이 갔다

중국에 있는 동생에게 한국 계좌 번호와 그 액수를 송급받기 위해 필요한 입금 액수를 물었다. 통상 5만 위안이면 26일 위안화의 기준율인 1위안당 169.24원이나, 살 때 가격인 177.70원 사이에서 결정해 한화 850만 원 정도를 입금 요청하면 된다.

확인을 위해 중국에서 받는 사람의 신분을 물어봤다. 바로 "칭화대 교수입니다"라고 답했다. 신분이 확실하면 의심을 좀 덜 할 수 있었다. 그래서 답했다. 가능할 것 같은데, 확인한 이후 입금할 한국 계좌와 액수를 알려주겠다고 답했다.

그런데 순간 의심이 갔다. 직접 A에게 "혹시 보이스피싱 당하시는 건 아니죠"하고 물었다. 물론 부인했다. 같이 추진하는 일이 있어서 그랬다고 말했다. 의심을  거둘 수 없어 A와 나를 동시에 아는 B에게 오후 7시 55분경 전화를 걸었다.

"A가 송금 요청을 하는데 지금 외국에 나가셨나요?"
"그렇지 않을 겁니다. 그런 말 못 들었어요. 코로나 시기인데요."
"혹시 모르니 A 전화번호 좀 주세요. 제가 전화해볼게요."
"바로 보낼게요."


B에게 전화번호를 받아 당사자인 A에게 전화하고, 문자를 했지만 받지 않았다. 뭔가 이상했다. 오후 8시 17분 일단 118(사이버범죄 신고)에 전화를 했다. 대응이 어렵다고 해서, 8시 18분에 112로 다시 전화했다. 

하지만 상담자는 수사할 수 없다는 원칙만 말했다. 일단 피해를 봐야 수사에 들어갈 수 있다고 했다. 아울러 보이스피싱이 맞는 것 같으니, 절대 송금을 하지 말라는 등 주의사항을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카카오톡으로 계속 소통하는 중이니 접속자 IP 등을 찾아 현장을 덮칠 수 있을 거란 작은 기대도 했기 때문에 112에 급히 신고했던 것이다. 하지만 국내 정보통신범죄나 보이스피싱 수사 능력의 한계가 있다는 걸 실감했다.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던 순간이 지나...
 
A를 사칭한 보이스피싱범은 시작 전 A 목소리를 녹음했다. 나에게 쓴 후 다시 B에게도 같은 방식으로 활용했다.
 A를 사칭한 보이스피싱범은 시작 전 A 목소리를 녹음했다. 나에게 쓴 후 다시 B에게도 같은 방식으로 활용했다.
ⓒ 조창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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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상황이 되자 관련자들의 단톡방을 만들어 사건을 공유했고, 조기에 찾아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 긴급하게 관련자들이 단톡방을 만들어 정보를 공유했다 이상한 상황이 되자 관련자들의 단톡방을 만들어 사건을 공유했고, 조기에 찾아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 조창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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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8시 31분, A가 관여하는 모임의 실무책임자인 B와 현재 실무간사를 받고 있는 C까지 3명이 단톡방을 만들어 상황을 공유했다. 대화를 캡처해서 공유하고, 필요한 대화도 나눴다. 두 사람 모두 계속 A와 통화를 시도했지만 전화가 안 된다고 말했다.

9시 9분, A라고 주장하는 이에게 "B에게 전화해 신분 확인을 부탁한다"라는 메시지를 보내놓았다. 

9시 20분, B는 보이스톡으로 A에게 전화가 왔는데, 목소리는 맞지만 바로 끊기는 등 뭔가 이상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기존 카톡도 아니고 이상하니 송금하지 말라고 말을 전했다. 통화 기록도 캡처해 공유했다.
  
A의 안전에 대한 걱정까지 생기기 시작했다. 혹시 납치되어서 협박받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도 들었다. 어떤 확신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경찰 신고도 불가능했다.

9시 27분, A라는 이와의 카톡방에서 "B쪽에서도 처리 가능하니 그쪽으로 연락하면 된다"라고 답을 보냈다. 연락이 끊어졌다.

9시 29분, 대화방에 있던 C가 글을 올렸다. 

"A님, 통화 중이랍니다. 송금 요청한 거 아니시라고. 안전도 괜찮으십니다." 

나뿐만 아니라 A와 관련 회사에도 비슷한 유형의 범죄가 시도됐다고 했다. 보이스톡으로 들렸던 목소리는 사전에 A에게 전화를 건 후 응답한 목소리를 활용했던 것이었다.

일단 상황이 종료돼, 모두 한숨을 놓았다. A의 이동전화가 악성코드나 스파이웨어에 감염됐을 수 있으니 철저한 점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각종 비번이나 SNS 비밀번호 등도 수정을 권유했다.

누구나 노출될 수 있는 보이스피싱, 대비는 허술

일전에도 보이스피싱을 겪어본 적이 있다. 2009년경 회사를 운영할 때다. 검찰을 사칭한 보이스피싱이었는데, 상당히 정교하게 설계되어 속을 뻔했지만, 막판에 위기에서 벗어났다. 이후 몇 차례 소소한 전화가 있었지만 듣자마자 넘겨서 시작조차 하지 않았다.

이번 사례는 방법도 상당히 고도화됐다. 충분히 지명도 있는 사람의 카톡을 도용한 것이다. 이 사람이 중국과 연결 고리가 있다는 것을 파악해 활용 용도를 잡았을 것이다. 한중간 돈세탁을 하는 중간 도구로써 나를 활용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어떤 이들에게 카톡을 보냈는지 다 확인할 수 없지만, 중국과 연관된 나를 선택했다는 것도 이들의 정보력을 가늠하게 해준다.  

이런 방식으로 내가 끼어들 경우 금전적으로는 손해를 입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중간 환전자로 활용될 경우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전달책(송금·환전책)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큰 처벌을 받을 수 있다. 보이스피싱 조직의 정범이 될 경우 최대 10년 이하 징역이나 2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 방조범 혐의를 받을 경우 최대 5년 이하 징역이나 1000만 원 이하 벌금형을 받는다.

이번 사건을 겪으면서 가장 안타까운 것은 보이스피싱에 대한 어마어마한 피해에도 불구하고, 수사의 기본적인 틀도 세워져 있지 않다는 점이다. 보이스피싱 범죄자들이 움직이는 동안 정보를 파악하면 한국이든 중국이든 쉽게 범인들에게 접근할 수 있지만, 직접적인 피해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도움을 받을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이번 사건을 옆에서 지켜보던 아내는 다른 이야기를 했다. 아이의 친구 어머니 가운데 아이가 다쳤다는 소식을 받고 송금을 했는데, 그게 바로 보이스피싱이었다는 것. 심지어 얼마 후에 비슷한 사례로 보이스피싱 전화가 다시 오기까지 했다. 보이스피싱이 사람들의 가장 약한 고리인 가족이나 지인들의 사이를 세밀하게 파고드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태그:#보이스피싱, #경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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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케이아이테크놀로지 상무. 저서 <삶이 고달프면 헤세를 만나라>, <신중년이 온다>, <노마드 라이프>, <달콤한 중국> 등 17권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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