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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0일, 국내 코로나19 바이러스 첫 번째 확진자가 발생한 지 꼬박 1년이 지났다. 코로나19 3차 대유행과 지속되는 사회적 거리두기 속에 피로감도 더해간다. 그럼에도 일 년이 지났고, 그럼에도 초기의 예측불가능 수준보다 아주 조금이나마 예측 가능해졌으며, 그럼에도 우리의 삶은 지속되어야 한다. 지난 1년, 코로나 바이러스는 우리 삶의 방식을 어떻게 바꿨는지 돌아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지속하기 위해 개인이 일상에서 견지해야 할 자세와 태도를 살핀다.[기자말]
팬데믹 이후 청소년들이 학교에 가지 않게 되면서 학교 교육은 출석과 시험, 입시만 남았다. 코로나19 이전에 이미 이러한 상황을 꿰뚫었는지 학교를 그만둔 청소년들이 많았다. 자퇴율이 가장 많은 지역은 서울 강남이라고 한다. 팬데믹 전부터 이미 학교를 입시 대상으로 치환한 이유다.

코로나19가 터지자 프랑스는 초등 1학년 학생과 방역 근무자와 맞벌이 부부의 자녀들을 우선 등교시켰다. 우리는 고3 학생들이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등교했다. 수능이 끝난 후 학교에서는 수업은 없고 영화 보여주고 영상으로 출석 처리하는 일이 대부분이라는데, 그 누구도 토를 달지 않는다. 청소년들이 주로 머무는 학교 교육은 당사자를 참여의 주체가 아닌 입시의 대상으로만 인식한다. 팬데믹 이후 청소년에게 '시민성'이 왜 중요한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시민성(citizenship)'이란 "공동체에 소속된 공공의 민주주의 공간에 참여하는 모든 구성원에 대한 동등한 권리와 책임을 가지고 있는 이들에게 주어진 변화 가능한 지위와 역할"을 뜻한다. 요체는 참여다. 자신의 공간에 참여하지 못하는 것은 과연 청소년들만의 문제일까? 역병의 시대를 살아가면서 주민, 국민, 시민이라고 통칭하는 이 땅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다수가 참여 수준에 따라 객체화되어 있다면?

팬데믹을 만나면서 시민성은 삶의 중요한 가치로 부각된다. 대부분의 사회적 결정 구조가 시민성의 수준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이후 헬조선이 사라지고 우리나라가 갑자기 좋은 나라가 되었다는 통계❶가 있었다. 2019년 4월에는 이와 반대로 응답자 중 60% 가까운 사람들이 헬조선이라고 답했던 것. 코로나 이후 갑자기 헤븐(?)이 되었지만 지난 12월, 코로나19 확진자가 연일 최대치를 기록하면서 백신 도입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하였고 여론이 급격히 안 좋아졌다.

정부는 K방역의 우수성을 내세웠다. 언뜻 한국은 세계적으로 가장 안전한 나라 중 하나로 보였지만 최근 한국이 백신 확보에 실패했다는 비판 여론이 커지면서 일 년도 채 안 돼서 다시 헬조선이 귀환한 것처럼 보일 지경이다. 같은 정부에 같은 국민들이 같은 공간에서 살아가면서 어느 때는 헬조선이었다가 어느 때는 헤븐이 된다. 우리는 무엇으로 '헬'과 '헤븐'을 구분하는 것일까? 
 
 같은 정부에 같은 국민들이 같은 공간에서 살아가면서 어느 때는 헬조선이었다가 어느 때는 헤븐이 된다. 우리는 무엇으로 ‘헬’과 ‘헤븐’을 구분하는 것일까?
 같은 정부에 같은 국민들이 같은 공간에서 살아가면서 어느 때는 헬조선이었다가 어느 때는 헤븐이 된다. 우리는 무엇으로 ‘헬’과 ‘헤븐’을 구분하는 것일까?
ⓒ 이미지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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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드러낸 시민성의 가치 

신천지 발 대구를 시작으로 특정 지역에 코로나19 발생 빈도가 높아질수록 해당 지역의 정치적 성향이 부각된다. 개천절에 보수적인 단체와 종교기관들의 연합 집회, 민주노총의 집회 등을 두고 이념적, 지역적으로 다른 관점이 부각되어 논란이 극심했다. 

코로나가 한창일 때도 집(부동산)은 재산 증식 수단으로 언론에 연일 올라왔지만, 많은 시간을 집 안에 머물면서 서로가 전혀 관계하지 않는 이상한 집의 모습을 체험하게 됐다.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일을 하고 있는데, 관계하지 않는 이상한 공간. 아파트 안에서 나와 관계없는 사람들이라고 여겼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들의 건강이 나의 건강과 연결이 돼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자꾸만 울리는 알람이 지역의 일이고 나와 가족과 이웃의 생명이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게 해준다.

내가 삶을 살아 내고 있는 가정과 마을과 국가와 지구촌에 내 선택이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코로나19 확진자 알람 소리가 적나라하게 보여 주었다. 지구촌에 마을이 있고 그 공간에 우리 자녀와 이웃이 존재하는 공간이 있고 모두가 관계하고 참여하고 있었다. 당연히 그 공간에 시민성은 우리 삶에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가치여야 했다.

시민성은 우리가 소속된 공동체에 모든 구성원들에게 주어진 변화 가능한 지위다. 지구촌 시민으로서, 학교 학생으로서, 마을의 주민으로, 이웃으로, 가정의 가장으로 내가 속해 있는 공간에 참여하고 관계하는 일이 나와 우리 모두를 건강하게 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해 준 것이다.  
 
 시민성은 우리가 소속된 공동체에 모든 구성원들에게 주어진 변화 가능한 지위다.
 시민성은 우리가 소속된 공동체에 모든 구성원들에게 주어진 변화 가능한 지위다.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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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속한 수많은 공간에 각자의 이상을 붙잡고 참여하는 과정

시민성은 참여가 요체이고 참여의 핵심은 어떠한 공간에서 주어지는 그 순간의 선택이 핵심이다. 대면과 비대면, 방역과 경제, 회복력과 보호력, 봉쇄와 생활방역, 공공통제와 개인인권 등 많은 수많은 용어들이 충돌하는 가운데 이 양단에 한 쪽을 결정하는 주체가 곧 '시민'이고 '시민성'이기도 하다. 문제는 그 선택이 쉽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봉쇄와 생활방역, 공공통제와 개인인권 중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최근 독일과 프랑스에서는 방역이 개인인권을 과도하게 침해한다면서 자유로운 활동을 요구하는 마스크 미착용 집회가 열리기도 했다. 지식인을 자처하는 어떤 이들은 코로나19를 거대기업과 정치집단의 조작으로 주장하면서 백신을 맞지 말자는 얘기를 하고 있다. 그러나 나 역시 그 공간의 주체로서 그 여론을 만들어 내는 당사자다. 우리 모두가 참여의 주체라는 뜻이다. 

어떤 공간에 자발적으로 들어와 있는 다수에게 참여 수준이 높다는 것은 그곳에 본질적 목적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위치에서 권리와 책임을 다하는 일이다. 대부분 다수에게 이로움을 선택하는 결정일 것이다. 나와 공동체에 가장 유리하고 합당한 선택이 무엇인지, 자신의 환경과 위치에 따라 집중한다. 내가 건강해야 타자가 건강하고 타자가 건강해야 내가 건강할 수 있다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내 경제가 좋으려면 타자의 경제가 타국의 경제가 좋아야 한다. 너무 간단한 관계의 원리다. 

시민들이 자신의 삶의 공간에 얼마나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시민성을 구현하는지에 따라 최소한 우리 사회의 정의와 공정함과 공공방역에 따른 목숨까지도 보장받는 사회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결국 우리 모두가 이 시대를 안전하게 살아내는 방법은 시민으로서 여론의 흐름에 따라 헬조선 또는 헤븐을 선택할 게 아닌 내가 속한 수많은 공간에 각자의 이상을 붙잡고 참여하는 과정에 있다. 우리 모두가 주체로서 '시민성' 높은 공간이다. 이 시대에 각자가 참여할 일이다. 

❶  KBS·시사IN·서울대학교, 코로나 이후 달라진 한국사회의 인식 공동조사, 2020.05.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정건희님은 청소년자치연구소 소장입니다. 이 글은 <월간참여사회> 2021년 1-2월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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