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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념공원 안 전통 가옥 사랑채에 봉안된 허균 영정
 기념공원 안 전통 가옥 사랑채에 봉안된 허균 영정
ⓒ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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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일곱 살 되는 1585년은 허균에게 두 가지 좋은 일이 있었다. 가을에 한성부에서 실시한 초시(初試)에 급제하였다. 초시란 과거의 첫 시험이다. 아무리 양반가문이지만 과거에 급제하지 않으면 관직이 주어지지 않았다. 음서직이 있었으나 아무나 바라는 바가 못되었다. 

이해 겨울에 결혼하였다. 아내는 의금부 도사 김대섭(金大涉)의 둘째 딸로 열다섯 살이었다. 아직 어린 나이였지만 조신하고 지혜로운 여인이다. 허균은 뒷날 「아내」라는 글을 지었다. 전반부를 먼저 소개한다. 

내 아내는 우리나라의 큰 성씨인 안동김씨이다. 고려의 재상 김방경의 현손인 척약재 김구용은 고려 말에 명성이 높았고 벼슬은 삼사의 좌사에 이르렀다. 그 4대손인 김윤종(金胤宗)은 무과에 급제하여 절도사를 지냈고, 그 아들 김진기(金震紀)는 경자년(1540) 사마시에 합격하여 별제를 지냈다. 그 아들 김대섭 역시 계유년(1573) 사마시에 합격하여 도사를 지냈는데, 관찰사 청송 심전의 따님과 혼인했으니, 그 아내는 둘째딸이다.

부인은 융경 신미년에 태어나 열다섯 살에 우리 집에 시집왔다. 성품이 신중하고 꾸밈없었으며, 여성으로서 해야 할 일에 조금도 게으름을 부리지 않았고, 벙어리로 보일 만큼 말수가 적었다. 내 어머니를 매우 공손히 섬겨서 아침저녁으로 손수 잠자리를 살폈고, 모든 음식을 직접 마련해 올렸으며, 절기마다 제철음식을 몹시 풍성하게 올렸다. 하인들을 엄격하게 대했지만 아무리 화가 나도 사나운 말로 꾸짖는 법이 없었다. 그래서 어머니는 "우리 어진 며느리"라며 늘 칭찬하곤 하셨다.

나는 당시에 어린 나이라 기녀와 어울려 놀기를 좋아했는데 얼굴에 그런 기미를 전혀 나타내지 않았거늘 혹시 조금이라도 방종한 기색이 보이면 아내는 그때마다 이렇게 말했다. 

"군자는 자신에게 엄격해야 합니다. 옛사람은 술집이나 다방에 가는 일이 없었으니, 하물며 그보다 더한 일이야 더 말할 나위가 있겠어요?"

나는 그 말을 듣고 속으로 부끄러워 하려던 일을 잠시나마 그만 두었다.

아내는 항상 부지런히 공부하라고 권하며 이런 말을 했다. 

"장부가 세상에 태어나 과거에 급제해서 벼슬길에 올라야 부모님을 영예롭게 해 드릴 수 있고, 자신에게 돌아오는 이로움 또한 많을 테지요. 서방님은 집이 가난하고 어머니가 연로하시니, 재주를 믿고 이러구러 세월을 보내지 마세요. 시간은 쏜살같이 흐르는 법인데, 뒤늦게 후회해야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주석 3)

  
 강릉시 사천면 사천진리 하평마을, 교산 언덕에 1983년에 세운 허균 시비. 한시 '누실명'이 새겨져 있다.
 강릉시 사천면 사천진리 하평마을, 교산 언덕에 1983년에 세운 허균 시비. 한시 "누실명"이 새겨져 있다.
ⓒ 장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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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균은 귀양살이에서 풀려난 작은형을 따라 다니며 새로운 세상을 보았다. 허봉은 벼슬을 마다하고 산사를 찾아 학승들을 만나고 불교에 관심을 보였다. 뒷날 허균이 반대세력으로부터 폄훼받고 파직을 당하게 되는 '불교신도'는 이렇게 싹트게 되었다. 그의 글공부는 일취월장하고 스물한 살에 생원시(生員試)에 합격하였다. '사서오경'을 시험보이는 과목이다. 여기에 합격하면 '생원'의 대접을 받는다.

허균은 이즈음부터 온 나라에 그의 글재주로 이름을 떨치기 시작했다. 그의 뛰어난 시와 유려한 문장은 그때의 명망높은 인사들도 혀를 내둘렀고, 그 또래의 서생들이 부러워하는 표적이 되었다. 이런 허균은 스무 살 되던 해인 1589년에 생원이 되었다. (주석 4)

허균과 함께 생원시에 합격한 인물 중에는 이이첨(李爾瞻)이 있었다. 대북의 영수로 광해군을 옹립한 뒤에 예조판서와 대제학을 겸하면서 소북계열을 숙청한데 이어 임해군과 영창대군을 죽이고 인목대비를 유폐시켰다. 인조반정 뒤에 도주하다가 붙잡혀 참형을 당한다. 허균과는 이후 적잖은 연고를 갖게 되었다.

허균은 아마 이때부터 친구를 넓게 사귀고 술집에 드나들며 놀기를 좋아하기 시작한 것 같다. 그리고 자유롭게 풍류를 즐기는 활달한 선비의 기질을 발휘하기 시작한 것 같다. (주석 5)


주석
3> 정길수, 앞의 책, 129~130쪽.
4> 이이화, 앞의 책, 64쪽. 
5> 앞의 책, 65쪽.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호방한 자유인 허균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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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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