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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면허증을 반납했다.
 운전면허증을 반납했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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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이제 운전면허증 동 사무실에 반납하는 게 좋지 않을까? 돈도 준다는데..."

남편이 말했다. 정부와 지자체에서는 몇 년 전부터 노인들의 인지 능력이 떨어져 사고가 많이 난다고 면허증 반납을 권장하고 있다. 10만 원의 보상금을 준다는 말과 함께.

남편은 살짝 내 의견을 물어보았다. 면허증 반납에 대해서. 내가 2종 운전 면허증을 취득한 지 30년이 넘었다. 그러나 운전은 하루만 연수하고 면허증은 지금까지 지갑 안에 잠자고 있었다.

남편은 내가 겁이 많다는 이유로 운전하는 걸 말렸다. 할 수 없이 가정의 평화를 위해 내 의지를 꺾고 남편의 말을 존중해 주었다. 조금 불편하지만 사람은 다 하고 싶은대로 살 수만은 없다고 생각했다. 

열정이 많은 나는 젊어서 밖에서 활동을 많이 했었다. 한 번밖에 못 사는 삶인데 가정 안에서 살다가 삶을 마친다면 너무 허망할 것만 같아 봉사 활동부터 공부, 배우는 일까지 활발하게 살아왔다.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일이 많아 차를 써야 할 일이 많았다. 때때로 운전을 못 해 난감한 일이 있었지만 견뎌냈다. 

차를 가지고 다니는 남편은 모른다. 차가 없어 겪게 되는 불편함을, 가끔 남편에게 "나 운전할 거야" 투정을 해보지만 요지 부동이었다. 원숭띠인 나는 호랑띠인 남편을 도저히 이길 수 없었다. 평화를 지키려면 어쩌랴, '내가 지고 사는 게 답이지' 생각했다.

나이가 들수록 비워내야 한다지만 

남편은 나이 70살을 먹은 후에 직장을 퇴직을 했다. 일이 없어 무료한 남편은 내가 일이 있을 때마다 항상 차를 운전을 해주었다. 차는 없지만 남편 차가 내 차나 다름이 없으니 크게 불편함은 없었다. 언제라도 말만 하면 어디든 운전을 해주었다. 정말 불편했으면 운전을 한다고 고집을 부려 보았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마음 속으로는 나도 언젠가는 운전을 하며 혼자서 멋진 곳을 쌩쌩 드라이브하고 예쁜 카페에 가서 차도 마시며 근사하게 혼자서 여유를 부리고 싶은 로망이 있었다. 로망은 소망일 뿐이었다. 미련을 접지 못하고 언젠가 운전을 할 거야, 라는 생각으로 면허증을 지갑에 넣고 다니는 것만으로 마음이 든든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이가 들고 조금 불편해도 운전을 안 하면 신경 쓸 일이 없으니 편할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언제라도 말만 하면 남편은 기꺼이 내 기사님이 되어주었기 때문이다. 다도를 하면서 행사할 때마다 운전을 해 내가 불편하지 않게 활동을 할 수 있었다. 이제는 운전 못 하는 아쉬움은 접어 두기로 했다. 나이는 하고 싶은 의욕을 자꾸 꺾어 놓는다.

면허증을 반납하라는 말을 듣고 어떻게 할까 며칠을 망설였다. '운전을 하지 않지만 면허증이 있는 것만으로도 나도 드라이버다'라는 가당치 않은 생각을 하곤 했었다. 가끔 남편에게 "나 운전할 거야" 하고 조르면 "그냥 편하게 살아"라고 했다. 내가 생각해도 이제는 미련을 버려야 할 것 같다. 나이 들면 버릴 것은 버리고 사는 게 현명하다.

운전을 하려면 진즉에 했어야 했다. 미루면 안 되는 일이었는데, 그걸 몰랐다. 나이 든 지금은 가볍게 살아야 마음이 한가롭고 편하다. 단순한 삶이 정신적으로 자유롭다. 사람들과의 관계도 덜어내고 가지고 있는 살림도 덜어내는 일, 욕심을 버려야 가볍게 살 수 있다.

이제는 자꾸 덜어내고 버려야만 하는 일만 남았다. 지구의 환경을 생각해서도, 여지껏도 견디고 살았는데, 뚜벅이로 사는 것도 건강과 환경에도 도움이 되고 나쁠  것 없을 거란 생각을 해 본다. 곧 있으면 남편의 면허증까지 반납하는 날이 올 것이다.

나다운 멋진 노인이 되고 싶다

내 면허증은 기약 없이 지갑 속에서 잠을 자고 기다렸지만, 결국 주인인 나는 면허증을 떠나보내고 말았다. 무심한 주인이었다. 그 많은 세월 동안 빛을 못 보고 결국 보내고 말았으니, 동 사무실에 가서 반납을 하고 돌아서서 나오는 순간 내내 섭섭함이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잘한 일이야, 가볍게 살자" 하면서 섭섭한 마음을 달랜다. 

나는 면허증을 더운 여름날 취득하느라 고생 좀 했다. 그 일이 별거라고 운전면허증 시험에 합격하던 날, 좋아서 벌쩍 벌쩍 뛰고 남편에게 전화하고 누구에게 자랑할 곳이 없나 다른 친구에게도 다이얼 돌렸다.

그때는 휴대전화도 없어 공중전화 박스에서 전화를 했다. 생각하면 참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이제 자동차 면허증은 나를 떠나갔다. 면허증 반납 후 한 달이 넘어서야 지역 화페로 10만 원이 도착했다. 

"면허증 하고 바꾼 돈이니 당신 쓰세요" 하고 남편에게 줘버리고 말았다.

나이가 들면서 포기해야 할 일이 많이 생긴다. 거부할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내게 오면 오는 대로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것이 현명한 삶의 방식이다. 나는 부정하고 싶어도 노인 세대다. 하지만 노인이지만 이왕이면 현명하게 늙고 싶다.

나다운 멋진 노인이 되고 싶다. 모든 나의 물건들은 나를 떠나갈 것이다. 비우고 비우고 간결하게 살려고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자의 브런치에 실립니다.


태그:#면허증, #비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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