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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열풍적 인기를 끌고있는 암호화폐중에 가장 규모가 큰 비트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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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이 관심을 갖는다고 해서 투자자를 보호해야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의 말이다. 그는 지난달 22일 국회 정무위원회에 참석해 암호화폐 투자자 보호 관련 질문을 받고 이 같이 답했다. 은 위원장은 암호화폐를 "투기 자산"이라고 지적하면서도 투자자 보호와 세금 부과는 별개의 이야기라며 과세 방침을 재확인했다. 소득이 있는 곳엔 세금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

은 위원장의 발언 이후 비트코인 가격이 크게 내리자, 투자자들은 '보호는 해주지 않으면서 세금만 매기는 게 말이 되냐'며 분노하고 나섰다.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는 '은성수 위원장을 사퇴시켜야 한다'는 주장의 글도 이어졌다. 최근 암호화폐 시장을 둘러싼 논란의 한 단면이다.

하지만 암호화폐 투자자들뿐 아니라 최근에는 일반 누리꾼들 사이에서도 정부의 '제도적인 보호 없는 과세' 방침을 의아하게 생각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정부는 왜 암호화폐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세금을 부과하려는 것일까? 그 방향은 맞는 것일까? 또 제도적으로 어떤 보완책들이 필요할까?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현재 세계 각국의 암호화폐 관련 대책들을 살펴봤다.

암호화폐, '투자'일까 '투기'일까?

첫 번째 질문에 답하기 위해선 암호화폐 관련 국내 법규를 먼저 들어다봐야 한다.

현재까지 국내 암호화폐 시장에 적용되는 법적 규제는 지난 3월부터 시행된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특금법)'이 전부다. 이 개정안에 따라 암호화폐 거래소는 다가오는 9월 24일 전까지 원화 입출금 서비스를 위해 실명이 확인된 고객의 은행계좌를 받아둬야 한다. 이때 은행계좌를 받기 위해선 시중 은행과의 제휴가 필수적이다. 은행은 해당 화폐거래소가 정상적인지를 판별해야한다. 사실상 정부는 암호화폐를 은행을 통해 간접적으로 규제하고 있는 셈이다.

정부가 이처럼 직접 규제에 나서지 않는 이유는 암호화폐에 대한 가치를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상품의 내재가치로 그 가격을 결정해 온 기존의 경제논리로는 최근의 '코인 광풍'을 이해하기 어렵다. 또 정부가 직접 규제에 나설 경우, 자칫 시장 투자자들에게 '정부가 암호화폐를 제도권에 편입하려고 한다'는 신호로 해석될 수 있다. 따라서 정부는 은행을 통한 간접규제 방식을 취하면서도, 또 다른 규제책을 꺼내 들었다. 바로 '과세'였다.

정부 방침은 이렇다. 2023년 1월부터 암호화폐로 얻은 소득을 소득세법상 '기타 소득'으로 구분하고 양도차익에 22%의 소득세를 과세하겠다고 밝혔다. 기본공제 금액은 250만원이다. 매매차익에서 250만원을 제외한 나머지 금액에만 과세하는 셈이다. 이를 두고 투자자들의 반발이 거세다. 국내 주식, 채권, 펀드 등 투자를 통해 발생한 양도차익의 공제한도가 5000만원임을 감안하면 매우 엄격한 조치이기 때문이다. 이같은 방침 자체가 정부 스스로 암호화폐를 '투기 수단'으로 보고 있다는 뜻이다.

투자와 관련 있는 이자 소득이나 배당 소득이 아닌, 기타 소득으로 과세하는 이유도 있다. 현재 국제회계기준상 암호화폐는 금융자산이 아닌 무형자산으로 구분돼 있기 때문이다. 정부도 이 판단을 따르기로 했다. 세법상 무형자산에 대한 과세 방식은 기타소득으로 잡힌다.

무형자산은 물리적인 실체는 없지만 식별이 가능하고 기업이 통제하고 있으며 미래의 경제적 효익이 있는 비화폐성 자산을 말한다. 하지만 무형자산 또한 자산이다. 정부가 사실상 암호화폐를 '화폐'가 아닌 '자산'이라고 인정한 셈이다. 실제로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지난달 27일 "무형이지만 경제적 가치가 있으니까 시장에서 거래가 되는 자산으로 보면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 암호화폐 관련, 공식적으로 정의가 내려진 건 아니다.

박성준 동국대학교 블록체인연구센터 센터장은 "현재 정부는 암호화폐를 '가상 자산'이라고 부르지만 사실상 자산이라고 인정하지 않고 있다"며 "정부가 주식이나 펀드 등은 합법적인 거래라고 판단해 이자·배당소득세를 매기는 데 반해 암호화폐는 도박과 같은 범주의 기타 소득으로 세금을 매기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화폐냐 자산이냐
 
김병일 강남대학교 경제세무학과 교수가 지난 2017년 국세행정포럼에서 발표한 자료 '가상화폐에 대한 과세기준 정립 및 과세방향 모색'에 포함된 도표.
 김병일 강남대학교 경제세무학과 교수가 지난 2017년 국세행정포럼에서 발표한 자료 "가상화폐에 대한 과세기준 정립 및 과세방향 모색"에 포함된 도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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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화폐를 자산이라고 볼 수 있을까? 그렇다고 하면 정부가 정한 과세 수준은 '적정'한 것일까? 암호화폐가 논란이 됐던 지난 몇 년 간, 각국 정부 역시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과 같은 암호화폐가 화폐인지 아니면 자산인지를 두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둘 중 어느 쪽이냐에 따라 과세를 포함한 규제 방침이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암호화폐의 성격을 살펴보면 어느 한 쪽이라고 결론지을 수 없을 정도다. 먼저 암호화폐는 교환의 매개체로 사용되고 있다. 지난 2010년 미국의 한 프로그래머가 비트코인으로 피자를 주문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매년 5월 22일을 '피자데이'로 정해둔 것처럼 말이다.

영국은 암호화폐의 '화폐'로서의 가치를 인정한 국가다. 지난 2014년 세계 최초로 비트코인을 법정통화로 인정하면서 민간통화(Private Currency)로 분류했다. 영국 정부는 국세청 정책 지도서에서 암호화폐에 대한 부가가치세(VAT)를 면제하겠다고 밝혔다. 암호화폐 거래소에서 현금으로 비트코인을 살 때, 비트코인을 '구입'하는 게 아니라 돈과 돈을 '교환'한다고 본 것. 환전과 비슷한 개념이다. 이에 따라 영국은 개인 사업자가 자국 통화로 코인을 살 때, 외국환·차입에 대한 일반 규정에 따라 법인세를 과세하도록 했다. 

반면 미국은 암호화폐를 자산, 그중에서도 주식과 같은 '금융자산'이라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미국 국세청(IRS)은 2014년 암호화폐를 통화가 아닌 자산으로 과세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암호화폐를 소유한 모든 개인이나 기업은 구매·판매에 대한 기록을 보유하고, 암호화폐를 거래하며 생기는 모든 이익에 대해 세금을 납부해야 한다고 밝혔다. 암호화폐가 자산인 만큼, 이를 구입할 때 소득세가 부과된다. 또 가치가 상승해 차익을 보기 위해 매도한다면 '자본이득세(양도소득세)'가 부과된다. 

암호화폐를 금융자산이라고 보고 주식, 채권 등과 합산 과세하면, 투자자들로서는 세금을 낼 때 손실에 대한 부담을 덜 수 있게 된다. 가령 주식에서 5000만원 수익을 내고, 암호화폐에서 3000만원 손해를 봤다면 총 2000만원에 대한 세금만 물면 된다. 또 미국은 장기(1년 이상) 금융 투자자들에게 혜택을 주고 있다. 이에 따라 암호화폐 역시 1년 이상 보유할 경우 경상 소득 세율에 따라 0~20%로 과세된다.

'통화'로서의 화폐와 금융 자산을 둘러싼 논란들
 
6일 오전 국내 거래소에서 가상화폐의 대표주자 격인 비트코인이 6천800만원대에서 거래되고 있다. 알트코인(비트코인을 제외한 대안 가상화폐) 가운데 이더리움 클래식과 비트코인 캐시 등도 급등했다. 사진은 서울 빗썸 강남센터 시세 전광판에 표시된 코인 시세.
 6일 오전 국내 거래소에서 가상화폐의 대표주자 격인 비트코인이 6천800만원대에서 거래되고 있다. 알트코인(비트코인을 제외한 대안 가상화폐) 가운데 이더리움 클래식과 비트코인 캐시 등도 급등했다. 사진은 서울 빗썸 강남센터 시세 전광판에 표시된 코인 시세.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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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정작 미국 내에서도 암호화폐의 정체를 놓고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연방 정부의 입장과 달리, 주별로 암호화폐의 '화폐성'을 인정하는 곳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암호화폐가 자산이라면 이를 취득할 때 부가가치세를 내야 하지만, 정작 부가가치세를 요구하는 주는 드물다. 영국 역시 암호화폐를 통화로 인정하면서도 미국과 마찬가지로 소득세와 양도소득세를 부과하고 있다. 암묵적으로 암호화폐의 '자산성'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암호화폐를 자산도 화폐도 아닌 상품으로 인식하는 나라도 적지 않다. 독일은 암호화폐로 물건을 사는 행위를 물물교환이라고 보고 부가가치세를 부과한다. 상품으로 상품을 산다고 본 것. 상품 또한 큰 틀에서 보면 '자산'이기 때문에 부가가치세와 함께 소득세와 양도소득세를 부과한다.

이런 가운데 최근 국내에서도 암호화폐를 무형자산이 아닌 금융자산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동건 한밭대 교수는 지난달 13일 한국조세정책학회가 개최한 조세정책 세미나에서 "가상통화가 무형자산의 성격을 가지는 것은 물리적 실체가 없기 때문일 뿐"이라며 "계약이 없는 점을 제외하면 가격 변동 폭, 펀드·선물거래 편입 등 신종 금융자산에 가깝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세계 각국이 암호화폐 투자자들을 상대로 무작정 세금만 부과하겠다고 나선 건 아니다. 세금 만큼이나 강력한 투자자 보호책도 갖고 있다. 암호화폐 관련 사고를 막고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해 자금결제법과 금융상품법을 두 차례에 걸쳐 개정해온 일본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일본 금융청은 지난 2016년 '자금결제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 암호화폐를 자산으로 인정하면서 제도권 안으로 편입시켰다. 가상통화교환업이라는 개념도 새롭게 만들어, 금융청에 등록된 암호화폐 거래소만 운영되도록 했다. 또 계좌를 개설할 때 고객의 신원을 확인하게 하는 등 거래소에 몇 가지 의무도 부과했다. 

하지만 지난 2018년 당시 일본 최대 거래소였던 코인체크가 평상시 투자자들의 돈을 '핫 월렛(Hot Wallet)'에 넣어두고 관리하다 약 5억6000달러에 해당하는 코인을 해킹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일반적으로 전자 지갑은 핫 월렛과 콜드 월렛(Cold Wallet) 개념으로 나뉘어 있다. 콜드 월렛은 인터넷에 연결되지 않는, 오프라인에서 작동하는 지갑을 뜻하며 핫 월렛은 인터넷에 연결돼 있는 입출금 가능한 통장의 개념이다. 

해당 사건으로 일본 금융청은 2019년 거래소에 이용자를 보호할 의무를 부여하는 등 다시 법 개정에 나섰다. 구체적으로 해킹을 예방하기 위해, 거래소에 개인 투자자들의 암호화폐는 콜드 월렛에 보관하게 했다. 불가피하게 핫 월렛에 암호화폐를 보관해야 할 경우 투자자의 인출권 보호를 위해 거래소가 같은 양의 암호화폐를 갖고 있도록 했다. 또 암호화폐나 파생상품을 매매할 때 가격 변동을 위해 허위 사실을 유포하는 등 불공정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정해두기도 했다. 

미국도 주별로 암호화폐 투자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규제책을 만드는 데 속도를 내고 있다. 대표적으로 뉴욕 주 재정 서비스부(NYDFS)는 지난 2014년 가상자산 특화 법률인 '비트 라이선스(BitLicense)' 초안을 발표했다. 이 법률에 따르면, 뉴욕 주에 기반을 두고 있거나 뉴욕 거주자를 대상으로 암호화폐 사업을 벌이는 모든 업체는 NYDFS로부터 면허를 받아야 한다.

이 면허를 신청하기 위해서는 신청자의 신상이나 사업 이력, 주요 주주 정보와 수혜자 등 정보를 포함한 수십장의 신청서를 작성해야 한다.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끝이 아니다. 최소 자금 기준이 뒤따르는 데다 각종 의무들이 부과되기 때문이다. 사업 행위를 장부에 기록하는 의무부터 업체의 주요 변화를 보고할 의무, 사이버 보안을 지킬 의무 등이다.

국회 입법조사처 관계자는 "국내 가상자산 불법 유출이나 시세조종으로 인한 피해 사례가 발생하고 있는 만큼 각국의 이용자 자산 보호책을 국내 법령에 도입할 필요가 있다"며 "특히 우리 법령은 일본과 유사해 가상자산거래소에 대한 이용자 자산 안전보관 의무나 이용자에 대한 변제 재원 마련 의무 등을 참고할 만하다"고 밝혔다.

성태윤 연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는 "현재 가상자산 시장에 각종 부작용들이 나타나고 있다"며 "투자자들의 손실까지 보존해줘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투자자 특히 청년들을 사기 피해 등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도록, 정부가 가상자산 거래소를 감독할 방안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 교수는 이어 "현재 정부는 가상자산을 무형자산으로 구분하고 있는데 가상자산은 금융자산의 성격 또한 갖고 있다"며 "특히 외국 가산자산 시장에서 나타나는 부작용인 세금 포탈, 자금 세탁 등은 금융 자산 쪽 문제들인 만큼 금융당국이 나서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태그:#암호화폐, #비트코인, #암호화폐거래소, #리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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