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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강원국의 어른답게 말합니다>
 책 <강원국의 어른답게 말합니다>
ⓒ 박향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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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기주씨는 <언어의 온도>에서 물었다. "당신의 언어온도는 몇 도쯤 될까요?"라고. 언어를 대표하는 말과 글은 분명 다르다. 말은 소리이고 글은 형상이다. 말은 사라지고 글은 남는다. 말은 잡을 수 없고 글은 저절로 잡힌다. 말은 태생적으로 습득되고 글은 후천적으로 학습된다. 그래서 말보다 글이 더 어렵고 무섭다고도 한다.

말과 글은 공통점이 있다. 인간의 고유 산물이다. 서로 교환될 수 있는 가역 관계다. 또 서로에게 보충제다. 말이 부족하면 글이 채워주고 글이 부족하면 말이 채워줄 수 있다. 말과 글은 결코 딴 몸이 아닌 한 몸이다.

얼마 전 <오마이뉴스> 기사 '"이준석 말은 피아를 구분... 정은경 말엔 사람의 온도"'(http://omn.kr/1u6cx)를 읽었다. 구입 후 읽지 않았던 <강원국의 어른답게 말합니다>를 주말의 독서로 결정했다. 나의 언어온도를 재보고 종종 일어나는 '글 따로 말 따로'의 언어습관을 되돌아보고 싶었다.

강원국 작가의 글쓰기 시리즈 중 <나는 말하듯이 쓴다>를 보면, 작가가 전하고 싶은 글쓰기에 대한 생각을 읽을 수 있다. 글쓰기가 어려운 도전임에도 '평소에 말하듯이 쓰면 된다'라고 강조한다.

"우리는 태어나서 말은 먼저 배웠다. 말을 못 하는 사람은 없다. 잘하지 못해도 누구나 할 수 있다. 말해보고 쓰자. 말하듯이 쓰자"

어른답게 말하는 것이란

그럼 어떤 말을 해야 할까. '어른답게 말하자'라고 한다. 이미 어른인 나는 더 이상 배울 말이 없을까.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품격 있는 삶을 원하는데, 나는 품격을 갖춘 말이 몸에 배지 않을 때가 있어서 나이를 헛먹었다고 생각할 때가 많다. 적절한 말 사용의 한계로 나의 한계를 드러낸다. 감정을 절제하지 못할 때, 적게 말하지 못할 때, 말의 일관성이 부족할 때는 더욱더 내 말과 인격의 한계를 느낀다.

나이를 먹는 것은 그만큼 언행의 폭도 좁혀진다는 것이다. 말할 때마다 '어른답게'라는 표현을 되새김질하며 스스로 제약을 만들기도 한다. 말실수로 상대에게 상처를 주지 않을까 미리 염려함이 매 순간 커진다. 그래서 내 말이 잘 자라고 있는지 끊임없이 확인해야 한다.
 
나는 쉰 살이 넘어서야 비로소 내 말에 책임을 지겠다고 마음먹고 꾸준히 지키고자 하는 나만의 규칙이 생겼다. 첫째, 내가 하는 말을 곱씹어보며 말한다. 둘째, 남의 말을 유심히 들으면서 '나는 저렇게 말하지 말아야지' 싶은 것을 찾는다. 셋째, 얼버무리지 않는다. 생각하면서 말해야 한다. 넷째, 같은 말이면 긍정적으로 표현한다. 다섯째, 목적에 맞게 말한다. 끝으로, 후회할 말은 하지 않는다. (P.56 내 말은 여전히 자라고 있다)
 
작가가 나열한 규칙은 하나도 빠짐없이 나에게 해당되었다. 이 정도는 돼야 최소한 '어른답게' 살고 싶은 나의 기준치에 도달할 거라고 귀띔해주었다.

그럼 이 최소한의 규칙을 잘 지키기 위해서 가장 먼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바로 공부하는 거다. 몸으로 느끼는 세상 이치를 유연하면서도 단단하게 표현하려면, 무엇보다 어휘를 공부해야 한다. 글 잘쓰는 작가도 여러 가지 국어사전을 보면서 글다운 글을 준비하는데 나는 여태껏 그런 노력을 하지 않았다. 오로지 내 범위 안에 있는 어휘만으로 글을 쓰니 늘 한계를 느꼈다.

그런데도 공부하고자 하는 노력에는 게으르고 변명이 많았다. 그나마 글을 쓸 때는 차분히 앉아서 무슨 표현이 좋을까 궁리하니 다소 낫다. 말을 할 때는 이만저만 답답하고 부족한 게 아니다. 급한 성격도 한 몫 있거니와, 상황에 알맞은 어휘가 부족하다 보니 대화 후에는 늘 뒤통수가 따갑고 창피하다. 남들이 눈치채기 전에 공부해야 하는데.
 
어휘력은 나이테처럼 연륜을 드러낸다. 삶의 경험과 거기서 얻은 사유의 깊이가 담긴다. 한 해 한 해 늘어가는 나이에 걸맞게 허위도 꾸준히 늘어나야 한다. (P.93 어휘의 한계가 내 세상의 한계)
 
사춘기 아들 입에서 나온 아버지에 대한 칭찬

꼼꼼히 정독하고 있는데, 상담 차 한 아버지와 남학생이 들어왔다. 학원 다니기 싫다는 사춘기 절정의 중2 학생이었다. 입구에서도 투덜거리더니 앉아서도 스마트폰과 대화했다. 누구에게 먼저 얘기를 시작할까. 학부모에게 물을까? 학생에게 물을까? 주춤거리는 데 운 좋게도 학생이 먼저 물었다.

"몇 시간 해요?"
"한 시간씩 주 5일."
"그럼 됐고."


뭐가 됐다는 말일까? 학생의 이름을 묻고, 'OOO, 어이 잘생긴 아들'이라고 불렀다.

"영어 공부하고 싶니?"
"글쎄요. 몰라요."
"네 마음을 잘 몰라도 괜찮아. 그런데 나한테 공부를 하려면 한 가지만 기억하면 돼."


실눈을 뜨고 바라봤다. 학생의 아버지도 긴장했다.

"공부를 잘하기  전에 아빠에게 말하는 태도를 부드럽고 존경스럽게 해야 해. 그거 하나야. 그럼 영어공부 도와줄게. 우리 학원의 첫 번째 규칙이야. 부모님께 예쁘게 말하기."

비틀리게 앉아있던 학생의 자세가 나를 바로 보았다. 처음으로 눈이 마주친 순간이었다. 소위 눈높이가 맞춰진 대화가 시작된 것이다.

"지금부터 아빠의 장점을 하나만 말해줘. 그것으로 1차 통과시켜줄게."
 

옆에 있는 아빠를 보며 순순히 대답했다.

"짜증 내고 투덜거려도 언제나 먼저 손을 내밀어줘요."
"멋진 아들이네. 아빠를 잘 알고 있고 존경하는 마음이 있으니, 넌 다음 주 월요일부터 올 수 있어. 1차 통과 한 거야."


아빠의 발걸음이 가벼웠다.
 
대화를 잘하려면 경청, 공감, 질문, 이 세 가지를 잘해야 한다. "그랬구나", "힘들었겠다", "그래서 어떻게 됐어?" 이렇게 말이다.  (P. 122 들어주는 것을 넘어 상대의 말을 끌어내라)
   
품격있는 삶을 위한 최소한의 말 공부를 제시한 강원국 작가의 <어른답게 말합니다> 독서는 평안하게 즐거운 주말여행이었다. 책의 곳곳에 붙여놓은 포스트잇을 떼면서 한줄 한줄 다시 읽으련다. 학원 가족에게 보냈던 7월의 편지에 또 한 장의 PS(post script)를 써야겠다.

"존경하는 학원 가족에게! 어른답게 말하는 법을 보내드리니 꼭 읽어보시고 자녀와 말할 때 시도해보세요. 여러분의 품격있는 언어의 온도 속에서 사는 아이들이 사랑하고 행복해집니다."

강원국의 어른답게 말합니다 - 품격 있는 삶을 위한 최소한의 말공부

강원국 (지은이), 웅진지식하우스(2021)


태그:#강원국, #어른답게말합니다, #나는 말하듯이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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