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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365일 내내 'ON AIR'인 친구가 하나 있다. 모두가 떠올렸을 그 친구는 바로 'TV'다. 연일 이어지는 TV 화면에, 문득 드는 질문이 하나 있다. 

도대체 이 많은 방송은 누가 다 만드는 걸까? 우리의 '즐거움'이자 '친구'가 되기 위해서, '수신료의 가치'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화면 뒤편에서 일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의 노동도 화려한 방송과 같을까? 이번 다양한 노동이야기에선, 방송작가란 일의 기쁨과 슬픔을 들어봤다.

비정규직 문제 다루며 내부 모순에는 눈 감는 방송국 
 
글 쓰는 일 외에도 촬영 현장의 구성, 출연자 섭외, 영상 편집 등 다양한 일을 하는 방송작가. 사진은 방송작가 김한별님이다.
 글 쓰는 일 외에도 촬영 현장의 구성, 출연자 섭외, 영상 편집 등 다양한 일을 하는 방송작가. 사진은 방송작가 김한별님이다.
ⓒ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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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나서 반갑습니다.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김한별입니다. 방송작가이고, 시사교양 쪽에서 일했습니다. 올해 3월까지 방송작가로 일하다, 지금은 노동조합의 전임자로 일하고 있어요.

사실 전 학교에서 영화를 배우진 않았지만, 영화 만드는 건 좋아했어요. 그래서 학교에 다니며 독립영화 현장에서 연출부로 일했었어요. 그렇게 영화 만드는 일을 하다, 3학년 때 우연히 방송 다큐멘터리 제작에 참여하게 됐어요. 현장에서 막내작가로 일하다 보니, 방송작가가 영상을 구성하고 편집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단 걸 알게 됐어요. 여기에 큰 매력을 느꼈고, 이 일이 계기가 돼 학교를 졸업한 뒤 방송작가를 하게 됐습니다."

- 방송작가는 어떤 일을 하나요?
"흔히들 작가, 방송작가라 하면 글 쓰는 일부터 떠올리잖아요. 드라마작가는 대본을 창작하니, 글 쓰는 일이라 할 수 있죠. 하지만 대부분의 방송작가는 다릅니다. 방송작가의 또 다른 이름은 구성작가인데요, 이름 그대로 방송을 구성하는 일을 해요. 오히려 글 쓰는 일은 방송작가의 여러 업무 중 일부에 불과하죠. 

주된 업무는 촬영 현장의 구성, 출연자 섭외, 영상 편집 등입니다. 방송을 제작하는 일에 더 가까워, 제작자인 PD(프로듀서, 이하 피디)와 팀을 이뤄 협업합니다. 혹자는 '작가라서 자유롭게 일하겠다'라고 하는데, 주된 기획과 제작을 맡은 피디와 항상 상의해야 해서 생각보다 자유롭진 않아요.

같은 방송이라 해도, 장르에 따라 필요한 인력이 다른데요. 예를 들어 50분짜리 다큐멘터리를 제작할 때 피디, 조연출, 메인작가, 취재작가 4명이 일반적인 형태예요. 여기에 촬영감독을 따로 부르고요. 이 정도면 인력이 크게 들어가지 않은 편이라 할 수 있어요. 예능은 한 프로그램당 보통 50명~100명 정도의 스태프를 필요로 합니다.

방송작가가 하나의 직업으로 새로 자리 잡을 때쯤인 90년대엔 내레이션 원고를 쓰거나 편집을 구성하는 정도의 업무를 맡았습니다. 그러다 촬영 현장 세팅이나 출연자 섭외 등 점점 더 많은 업무가 방송작가에게 넘어왔어요. 

이런 건 원래 피디들이 하던 일인데, 비정규직인 방송작가들에게 일을 넘긴 거죠. 그러다 보니, 지금은 피디 업무와 방송작가 업무가 크게 구별이 되지 않을 정도예요. 뭣보다도 방송작가는 정말 많은 일을 해요. 방송작가가 없으면 현장이 돌아가지 않을 정도로, 주말이나 휴일 없이 일하곤 해요."

- 일하면서 겪는 어려움이 있다면요?
"업무가 너무 많은 데다 예상치 못한, 급박한 상황이 종종 발생하곤 해요. 동료 방송작가가 겪었던 일인데요. 아침 라디오 생방송 출연자를 섭외했는데, 갑자기 마음이 바뀌어 출연 의사를 번복한 거예요. 

그래서 새벽에 부랴부랴 여기저기 전화를 돌려서, 다른 사람에게 출연을 부탁해서 펑크를 겨우 막았대요. 저희도 당연히 실례인 줄 알지만, 상황이 그렇게 몰아넣어요. 어찌 됐든 간에 방송은 하긴 해야 하니까요.

저는 잠을 못 자는 게 그렇게 힘들 수가 없더라고요. 일주일에 한 번 생방송인 전국 프로그램이 있으면, 그걸 만드는 스태프들도 일주일에 한 번은 밤샘작업을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도저히 제때 방송이 나갈 수가 없어요. 

저는 잠을 못 자는 게 너무 힘들어, 이 방송을 오래 하진 못했어요. 계속하는 다른 스태프들은 매주 그렇게 밤샘작업을 해내더라고요. 다른 작가들도 자신의 업무량이 무리인 건 알지만, 잘리거나 불이익을 걱정해 자기를 갈아 넣다시피 일합니다.

방송 제작비가 점점 줄어드는 것도 큰 걱정이죠. 매체가 다양해져 예전처럼 시청률이 나오진 않거든요. 시청률 하나로 프로그램이 평가되는 현실이 안타깝긴 한데, 시청률이 나오지 않으면 광고가 붙지 않고 그러다 보면 제작비도 줄어들어요. 

방송 제작에 필요한 고정비용 외에 비용을 절감하려면, 당연히 사람을 덜 쓰게 되고 결국 노동강도는 높아지죠. 날이 갈수록 방송 제작환경은 더 열악해지고, 방송작가의 업무 역시 늘어가요. 현장에선 인력 충원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중이고요."

- '방송작가'를 계속하게 하는 동력은 무엇인가요?
"우리 일에 대한 자부심이 아닐까요? 나의 노력과 역할로 방송이 잘 나왔을 때, 큰 보람을 느껴요. 특히나 우리가 만든 결과물은 방송으로 송출되니까 바로 보이거든요. 과중한 업무와 밤샘작업 등 방송작가를 힘들게 하는 여러 요인이 있지만, 그래도 방송에 녹아든 우리의 보람 덕분에 계속할 수 있는 거 같아요. 이런 보람과 자부심도 없다면, 버티기 쉽지 않죠."

- 일하면서 생긴 건강상의 문제는 없나요?
"아까 말했다시피 방송작가 대부분이 장시간 일하고, 밤샘작업도 자주 하는 터라 건강이 썩 좋진 않아요. 작년에 이대 목동병원에서 특수건강검진을 했는데요. 검진 결과를 보니 야간노동 때문인지, 다들 20~30대의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건강 상태가 양호하진 않았어요. 

방송작가 중 상당수가 근골격계질환이나 불안장애를 호소하기도 하고요. 방송작가 중 일부는 현재 예술인 복지재단을 통해 산재보험 가입이 가능해요. 다만 산재 인정을 받기가 어려워, 산재보험 가입률이 높진 않습니다."

- 노동조합 활동을 시작하게 된 이유도 궁금합니다.
"사실 방송국은 프리랜서, 특수고용, 파견 등 '비정규직의 백화점'이라 할 만큼, 현장 내의 노동환경도 심각해요. 방송 현장에선 스태프를 정규직으로 고용하는 상상도 하기 어렵거든요. 노동권에 대한 인식이 전반적으로 부족하달까요. 시작을 비정규직으로 했고, 이 문제는 이대로 쭉 이어져 온 거죠. 방송에선 노동을 얘기하면, 우리 내부의 문제엔 눈 감고 있는 상황이 모순적이란 생각이 들곤 했습니다.

방송작가 대부분이 프리랜서예요. 근데 사실 무늬만 프리랜서예요. 출퇴근은 방송국으로 하고, 업무지시도 거기서 내리거든요. 방송작가 중 30%는 정해진 시간에 출퇴근하고, 50%는 정해진 시간은 아니더라도 출퇴근을 합니다. 그런데도 프리랜서란 이유로 노동자로서 보호받지 못하곤 하죠.

방송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작업이고, 작업의 특성상 안정적인 환경에선 좋은 창작물이 나오지 않을 거란 잘못된 인식이 더러 있는 거 같아요. TBS 교통방송이 법인화하면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했습니다. 피디나 기자는 전원 정규직 전환됐는데, 방송작가는 100명 중 단 10명이 정규직으로 전환됐어요. TBS가 하는 말이 뭔 줄 아세요? 

방송작가를 전부 정규직으로 고용해 노동환경이 개선되면, 신박한 아이디어가 나오지 않을 거라는 거예요. 우리 고용이 안정되면 어쩐지 방송의 질이 떨어질 것 같은 우려가 생기고, 이런 걱정 때문에 방송작가에겐 계속해서 불안정한 고용 형태를 유지하겠다는 건… 결국 방송작가의 노동을 착취해, 방송을 만들겠단 거잖아요. 애석한 건 그나마 TBS가 업계에선 최초로 방송작가를 정규직으로 고용했단 겁니다.

방송계가 참고할 만한 현장인 영화 쪽에선 표준근로계약서를 작성한다더라고요. 이를 모범적인 선례로 삼으면 좋을 텐데, 방송은 변화가 영 더딥니다. 방송작가는 근로계약이 아니라 위탁계약을 맺어요. 상호협의로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지만, 사실 일방적인 해고 통보가 현실입니다. 일상적인 고용불안에 노출돼 있으니, 자기 자신을 갈아 넣어서라도 더 열심히 일할 수밖에 없고요.

그간 시사교양 방송작가로 일하면서 방송 아이템으로 노동을 다뤄왔고, 미처 몰랐던 여러 노동문제를 알게 됐어요. 자연스레 노동조합 활동을 시작하게 됐고, 작년엔 간부로 활동하다 올해엔 지부장을 맡게 됐습니다."

- 현장에서 체감하는 변화가 있다면요?
"그동안 막내작가 임금이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했어요. 이를 의제로 삼아 적어도 최저임금은 맞출 것을 주장했고, 지금은 최저임금 수준으론 임금을 지급하고 있습니다. 현장에서 계약서를 쓰고 일하는 것도 정착시켰습니다. 

예전엔 구두로 '다음 주에 얼마 줄 테니까 일할래?' 이런 식이었거든요. 물론 위탁계약이란 한계가 있지만, 계약서가 있는 것과 없는 건 차원이 다르니까요. 그리고 아무래도 노동조합이란 조직이 있으니, 방송작가를 어린 여성이라고 얕보고 성추행을 하는 등의 추태는 예전보다 그나마 덜한 거 같아요.

올해 4월부터 KBS, MBC, SBS 시사교양 및 보도 분야 작가를 대상으로 근로감독이 진행 중입니다. 서울 지상파 중 비드라마 현장에서 근로감독이 진행되는 것, 특히 프리랜서인 방송작가들만을 대상으로 한 근로감독이 이뤄지는 건 처음이에요. 올해 안에 결과가 나올 거 같은데요. 어찌 됐든 간에 정규직 방송작가의 수가 내년엔 더 많아지리라 예상합니다. 전 이런 자그마한 계기들이 모여, 결국엔 커다란 변화가 생길 거라고 확신합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의 선전위원이자 녹색병원 내과 전문의인 장영우님이 작성하셨습니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잡지 <일터> 11호에 연재한 글입니다.


태그:#방송작가, #방송작가유니온, #방송작가_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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