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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B 청주방송 이재학 피디 2주기를 맞아 3일부터 10일까지 총 6회에 걸친 추모 연재 '이재학, 2주기'를 진행합니다.[편집자말]
이재학 피디
 이재학 피디
ⓒ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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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거슬러 가는 힘이 있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때 우리는 무엇을 했어야 할까? 2월 4일 이재학 PD 2주기를 앞두고 이런저런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그래서 시간을 돌려보기로 했다. 그가 있다고 생각하자고 마음을 먹었다. 2021년 상반기에 예정된 2심 판결을 앞두고 방송사 비정규직 문제를 알리는 토론회가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렸다고 가정해보기로 했다. 

그가 살아있다고 상상해봤다

해고 무효 투쟁을 한 지 3년 가까이 됐던 이재학 PD는 선례를 남기고 싶었다. 미디어업계에 사실상 방치되다 싶은 비정규직 문제, 이제는 터질 때가 됐다고 본 것이다. 법원은 그에게 노동자가 아니라고 했다. 억울했다. 내가 왜 노동자가 아닌가! 

14년간 방송계 은어처럼 프로그램에 자신을 갈아 넣으면서 일해왔고, 라꾸라꾸 침대에서 지냈던 밤들과 함께 작업했던 현장이 파노라마처럼 흘러 지나갔다. 이재학은 다짐했다. 다시는 지지 않겠다. 그는 더 큰 투쟁을 다짐했고, 그에게 연대의 손길이 들어왔다. 

그가 쏘아 올린 작은 투쟁의 불씨들은 다른 곳으로 번져갔다. 방송사 내 프리랜서라 불렸던 비정규직들이 부당한 처우와 계약 해지 등에 맞서 투쟁을 했고, 지노위 중노위 등에서 승소했다. 이 같은 소식은 이재학을 기쁘게 했다. 나 역시 곧 이겨서 사업장에 들어가리라. 멋진 프로그램을 만들 것이고, 락 음악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포함해 빛나는 다큐를 제작하겠다며 미래를 상상했다.

공인노무사, 변호사, 민주노총, 언론노조 등 노동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이 토론회에 나와 있었다. 이재학 PD는 자신이 그동안 일해왔던 사례와 투쟁 과정을 힘주어 말했다. 한 조직 활동가는 이렇게 말했다. 

"방송사는 비정규직 백화점이다. 이거 제가 평가한 말이 아닙니다. 공영방송 이사회에서 이사로 활동했던 이가 말한 것입니다. 이렇게 방치해서 안 됩니다. 또 하나 말하겠습니다. 방송사 내 비정규직 숫자가 마치 경영 비밀인 것처럼 여기는 경영진에게 경고합니다. 부끄러움을 알아야 합니다."

이재학 PD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들은 공인노무사는 안경을 고쳐 쓰면서 "비정규직을 마구 쓴 것을 마치 관행인 것처럼 여긴 책임 누가 져야 합니까. 회사입니다. 그런데 그 책임을 마치 정규직과 비정규직간의 갈등으로 몰아 가려는 움직임도 보입니다. 정규직 노조 역시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나서지 못하는 것도 문제입니다"라고 강조했다.

조끼를 입은 노동단체 관계자는 "고용노동부, 방송통신위원회, 정부, 국회. 방송사가 무섭긴 무서운가 봅니다. 이렇게 비정규직 문제가 마구마구 터지는데 조용하고, 제대로 된 대책하나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우리나라 방송사에서 일하는 비정규직은 몇 명입니까!"라고 따졌다.

참석자간 뜨거운 토론과 이재학 PD의 승리를 기원하는 응원 속에 토론회는 마무리됐다. 이재학 PD는 토론회가 마치고 방송사에서 어떻게 보도했는지 찾아봤지만 기사 한 건도 찾을 수 없었다. 몇몇 인터넷 매체만이 부당한 해고와 비정규직 문제를 다뤘다.

우리는 '진짜' 노동자로 거듭나고 있나

하지만 시간을 역행해 뒤로 갈 수 없다. 2020년 2월 4일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우리는 2018년 부당해고에 맞서 싸운 이재학을 만날 수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잘못한 게 없다", "하루하루가 너무 힘들다. 억울해 미치겠다", "정말 내 친동생 같았던 친구에게도 뒤통수를 맞았다"라고 말한 그와 커피를 마시거나 좋아하는 퀸의 음악을 들으며 맥주 한 잔을 할 수도 없다.

그의 죽음은 청주를 비롯한 연대 단위의 투쟁으로 이어졌고, 2020년 7월 23일 진상조사 결과 이행을 위해 합의가 이뤄졌다. 2021년 5월 13일 법원은 1심 판결 취소와 함께 이재학 PD는 실질적으로 임금 목적으로 종속적 관계에서 근로를 제공하며,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는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우리는 이재학 PD에게 어떤 말을 전할 수 있을까. 다른 비정규 노동자들의 삶을 보듬는 진짜 노동자로 거듭나고 있을까? 지난 2020년 7월 故 이재학 PD에게 전한 위촉패를 읽는다.

"위촉패: 故 이재학 청주방송 PD는 방송제작 현장에서 14년간 일하며 항상 언론노동자로 긍지를 잃지 않았습니다. 특히 다른 비정규 노동자들의 삶을 보듬는 진짜 노동자로서 귀감이 되어 왔습니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은 1만 5천 조합원의 뜻을 모아 귀하를 명예 조합원으로 위촉합니다." (2020년 7월 28일 전국언론노동조합)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이기범은 언론노조 전략조직실장입니다.


태그:#이재학 PD, #방송사 비정규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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