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한국사회는 불평등이 심각하다. 불평등을 해소해야 한다는 말은 무성하지만 20대 대선에서 노동자들은 배제되거나 혐오의 대상이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는 선거 운동 기간 주 120시간, 최저임금 한시적 유보, 손발 노동은 아프리카나 하는 것이라며 노동에 대한 혐오를 드러냈다. 노동에 대한 혐오로는 한국사회 불평등을 해소할 수 없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비정규 노동자들은 3월 19일부터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기간 동안 매주 토요일 전태일 다리부터 인수위까지 비정규직 철폐, 차별 철폐를 요구하며 행진한다. 이들은 국가가 책임지고 '좋은 일자리'를 확대해야 코로나 팬데믹과 맞물린 고착된 불평등이 조금이나마 해소될 수 있다고 말한다. 공공부분에서 국민을 위해 노동하지만 여전히 일터에서 차별받고 혐오의 대상으로 낙인찍힌 비정규직 현장의 목소리를 싣는다. [편집자말]
3월 21일 전태일 다리부터 인수위까지 비정규직 철폐, 차별 철폐를 요구하며 행진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비정규 노동자들의 모습.
 3월 21일 전태일 다리부터 인수위까지 비정규직 철폐, 차별 철폐를 요구하며 행진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비정규 노동자들의 모습.
ⓒ 공공운수노조

관련사진보기

 
기업은행에서 청소를 하는 직원은 720명쯤 된다. 용산지점, 반포지점, 노량진지점 등 부촌과 서민주거지역, 도시와 시골을 가리지 않고 대략 지점마다 1명씩 배치되어 일하고 있다. 혼자 일하는 어려움도 어려움이지만, 보다 심각한 문제는 기업은행 자회사 청소노동자들의 월급이 너무 적다는 것이다. 왜냐고?

기업은행 청소노동자들은 용역업체 소속으로 하루 3시간 근로계약을 체결했다. 아침 7시 30분부터 10시 30분까지, 하루 3시간, 주 15시간을 간신히 넘기는 초단시간 근로계약이다. 4시간 근무에 30분을 쉴 수 있으니 청소노동자들에게는 보장받을 합법적 휴게시간도 없는 셈이다. 왜 3시간을 일하는지, 다른 지점 미화원은 5시간 일한다는데 거기는 왜 5시간인지, 기준이 없다 하니 이유도 알 방법이 없었다.

사실 이보다 큰 문제는 팍팍한 삶이다. 하루 3시간씩 일해 버는 60여만 원의 월급으로 생계를 이어나갈 수 있을까? 기업은행에서 청소하는 직원 대다수가 오후 시간 투잡, 쓰리잡을 해야 세상이 말하는 소위 '서민의 삶'이라도 유지할 수 있다. 눈치 없는 사람들은 짧게 일하니 좋겠다고, 용돈벌이로 일하는 거 아니냐고 '막말'을 하지만, 새벽 버스에 올라 손님들을 맞기 전 번개같이 청소한 뒤 10시 30분에 퇴근해 부지런히 두 번째 직장으로 옮겨가는 삶의 고단함을 모르고 하는 소리리라.

소원이었다. 아침마다 땀 뻘뻘 흘리며 손발이 보이지 않게 청소하면서도, 우리도 은행에서 일하는 저 은행원들처럼 하루 8시간 일하며 보다 안정된 직장과 삶을 가져봤으면 했다. 하지만 아마 그런 일은 없으리라, 안 될 거라 생각했던 일이 2017년 5월 문재인 대통령의 '비정규직 제로' 발표 이후 어쩌면, 아니 조금씩 될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가졌다.

비정규직 정규직화 5년, 우리는 '삼규직'?
 
지난 4일 전태일 다리부터 인수위까지 비정규직 철폐, 차별 철폐를 요구하며 행진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비정규 노동자들의 모습.
 지난 4일 전태일 다리부터 인수위까지 비정규직 철폐, 차별 철폐를 요구하며 행진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비정규 노동자들의 모습.
ⓒ 공공운수노조

관련사진보기

 
2017년 5월 12일,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3일 차에 인천공항을 방문했다. 비정규직이 압도 다수인 인천공항을 방문해 "임기 중에 비정규직 문제를 반드시 해결하겠다"고 약속했다. "우선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열겠다고 약속을 드린다"고 말했다. 기대했다. 어쩌면 우리도 기업은행의 정규직으로, 아니 정규직처럼 많은 월급은 못 받아도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게 될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노사전협의체를 진행하면서, 기업은행은 정부가 제시한 정규직 전환 방법 중 하나인 자회사 방식을 우리에게 그대로 제시했다. 우리는 기업은행의 자회사로, IBK서비스의 직원으로서 근로계약을 체결하게 됐다. 그러나 청소노동자들의 근로계약서에 적힌 근로시간은 용역업체 때와 동일했다.

기업은행 지점은 거의 하루 3시간 근무, 주 15시간, 휴게시간이 없다. 기업은행 본점 같은 기업은행 건물들은 하루 7시간 근무, 주 35시간, 휴게시간 1시간. 같은 자회사 정규직이면서 왜 이리 각기 다른지. 기업은행의 변명은 "지점은 하루 3시간만 일해도 충분하다", 기업은행 본점 등은 "하루 7시간만 청소해도 된다"라고 한다. 그저 용역계약금액만 후려칠 생각밖에 없는 것이다.

회사는 청소노동자들을 정규직이라 불렀다. 정규직 전환 이후 달라진 건, IBK마크가 찍힌 청소복 한 벌과 근로계약서 사용자란의 글자가 'IBK서비스'로 달라진 것뿐이었는데도 말이다. 청소노동자들은 스스로를 '삼규직'이라고 불렀다. 정규직도 비정규직도 아닌 3시간만 일하는 삼규직.

정부가 정규직 전환 성과라 자화자찬하는 기업은행의 청소직원 '삼규직' 전환을, 세상은 정규직 전환이라 불렀다. 회사는 용역업체 때부터 하던 근로조건을 그대로 유지했으니, 특별히 월급이 깎인 것도 아니니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했다.

말이야 맞는 말이었다. 용역업체 시절, 업체가 바뀔 때마다 해고에 떨며 하루 3시간씩 일하던 것에서, 이제는 퇴직할 때까지 계속 하루 3시간, 월 60만 원 받고 일하게 되었으니 더 나아졌다고 해야 한다는 건가. 따지고 보면 좋아야 했지만,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기분이 묘했던 건, 그동안 청소노동자들을 여사님 혹은 미화원님이라 부르면서도 느껴졌던 그 약간의 미안함, 고령의 여성, 청소 직종 비정규직에 그나마 조금이라도 마음 써줬던 그 눈빛과 태도들이, 이제는 양심의 가책을 다 털어낸 것 같은 당연함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은행 선생님들이 특별히 어떤 잘못을 한 적은 없다. 그러나 확실한 건, 세상이 우리를 정규직이라 부르기로 하니, 속사정 아랑곳없이 우리는 '정규직'이 되어야만 했던 것 같다.

같은 회사인 듯, 같은 회사 아닌, 같은 회사

자회사로 전환되기 전에는 그래도 기업은행은 청소노동자에게 직접 지시를 하지는 않았다. 다른 회사의 직원이니까. 우리에게 직접 지시를 했다가는 당장 노동조합에서 불법파견이라고 고발을 할 테니 말이다. 그러나 자회사로 전환되고 난 후, 모회사와 자회사, 기업은행과 IBK서비스의 관계는 참 애매해졌다.

같은 회사 같은데 같은 회사는 아닌 이상한 관계. 원청 소속은 아니지만 기업은행 직원이 아니라고 하기도 애매한 이상한 관계. 기업은행은 IBK서비스 노동자들에게 "우리는 IBK 가족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당사자로선 이게 가족이라고 말할 수 있는 관계인지 가족에게 할 짓인지 분노만 더 일어난다.

기업은행은 IBK서비스, 자회사 노동자들에게 별도의 독립법인이니 자율성과 독립성을 보장하겠노라 공언했다. 그러나 현장에서 마주친 경험은 그렇지 못하다. 

우리는 청와대로 간다
 
3월 21일 전태일 다리부터 인수위까지 비정규직 철폐, 차별 철폐를 요구하며 행진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비정규 노동자들의 모습.
 3월 21일 전태일 다리부터 인수위까지 비정규직 철폐, 차별 철폐를 요구하며 행진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비정규 노동자들의 모습.
ⓒ 공공운수노조

관련사진보기


산업은행에도, 인천공항에도, 마사회에도, 코이카에도, 발전5사에도, 지역난방공사에도, 철도공사에도, 부산지하철에도 우리와 같은 노동자들이 있다. 모두 문재인 정부의 정규직 전환 정책으로 자회사를 골라 전환된, 우리와 같은 '삼규직'이 된 노동자들이 있다.

자회사 노동자들은 요구한다. 용역업체 때나 써먹던 낙찰률을 폐지하라고, 노사가 합의해도 임금인상을 할 수 없는 기재부의 예산지침 좀 바꾸라고. 그리고 기업은행의 자회사 청소노동자들은 요구한다. 우리를 진짜 정규직으로 전환해달라고. 이름만 정규직인, 실상은 용역업체와 하나 다르지 않은, 어쩌면 더 못한 자회사 신분 처지를 바꿔달라고 말이다.

청와대의 주인이 바뀌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했던 그 정규직 전환을, 이제 윤석열 당선자가 해결해야 한다. 당선자가 말하는 법치와 상식,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고 조직에 충성한다는 검찰총장 시절의 명언처럼, 우리도 기업은행이라는 조직을 위해 열과 성을 다해 일할 수 있도록 온당하게 대우해주길 바란다. 

그 요구를 전하러 우리는 청와대로 행진한다. 인수위와 청와대의 거리만큼, 윤석열 당선자와 우리 생각의 거리가 가까웠으면 좋겠다.

태그:#기업은행, #IBK서비스, #자회사 , #비정규직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기업은행 자회사(IBK서비스)에 근무하고 있으며 공공운수노조 기은서비스지부 지부장을 맡고있는 김웅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