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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가 17일 오후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 대강당에서 최근 제기된 자녀 관련 의혹 등을 해명하고 있다. 2022.4.17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가 17일 오후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 대강당에서 최근 제기된 자녀 관련 의혹 등을 해명하고 있다. 2022.4.17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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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의대 편입학 논란에 휩싸인 정호영 보건복지부장관 후보를 보면서 든 생각은 세 가지다.

'과한 욕심은 화를 부른다'는 옛말이 틀리지 않았다는 게 첫째다. 둘째는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능력주의'라는 허울이 얼마나 허망한지를 새삼 확인한 것이다. 끝으로 소위 사회지도층이라는 이들에게 부재한 '염치', 즉 부끄러움을 새삼 돌아본다.

정호영 후보자를 둘러싼 논란은 많은 부분에서 조국 자녀 사태를 연상케 한다. 정 후보자는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강변하지만 국민들 보기엔 별반 다르지 않다. 설령 입학 관련 서류를 위조·변조한 조국 자녀와는 다르다 해도 공직자로서 이해충돌 회피 규정을 어겼음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윤석열 당선인은 조국 사태 한 가운데서 살아있는 권력과 불화한 끝에 대통령에 올랐다. 권력과 갈등하면서 줄곧 주창한 가치는 '공정'과 '상식'이었다. 그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불공정을 바로잡고 상식을 회복하겠다며 검찰총장 재임시 집권여당과 불편한 동거를 마다하지 않았다.

많은 이들은 정호영 장관 지명이 윤 당선인이 강조한 공정과 상식에 부합하는 지 묻고 있다. 국민들은 상식을 말하는데 윤 당선인은 법적 잣대를 말하고 있으니 번지수가 틀려도 한참 틀렸다. 아버지가 경북대병원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두 자녀가 나란히 의대에 편입했다? 그것도 한시적으로 운용한 제도 덕을 봤는데 이게 상식이냐고 국민들은 묻는 것이다.

꼬리의 꼬리를 무는 의혹

아무리 관대하게 생각해도 의혹은 꼬리를 물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대통령 당선인과 소위 '40년 지기'라는 이유로 인사검증을 소홀했거나 "법적 문제는 없으니 괜찮겠지" 하는 안일함에서 빚은 결과가 아닌가 싶다.

생각해보자. 문재인 정부가 5년 만에 좌초한 원인은 무엇인가. 박근혜 정부에서 자행된 국정농단에 분노한 국민들은 국민의힘을 심판했다. 문재인 정부는 취임 초기 80% 넘는 지지를 등에 업고 출발했지만 정권 유지엔 실패했다. 공정과 상식에서 멀어졌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은 문재인 정권을 반면교사로 집권했다. 그런데 사람만 바뀌었지 아무것도 바뀐 게 없다면 국민들은 무엇 때문에 정권을 교체했는지 회의하지 않을 수 없다.

국민들은 '아빠찬스'에 강한 의구심을 갖고 있다. 정 후보자가 의대 교수에만 머물렀다면 드러날 사안은 아니다. '잘난 아빠 덕을 봤나보다' 하는 정도 수군거림에 그쳤을 것이다. 문제는 장관을 하겠다고 나서면서부터 시작됐다. 조국도 마찬가지였다. 민정수석에서 그쳤다면 덮일 문제가 장관 욕심을 내면서부터 불거졌다. 민정수석이나 대학 교수에게 들이대는 잣대와 국무위원에게 적용하는 잣대는 다를 수밖에 없다.

국민들은 장관 직위에 걸맞는 도덕성을 요구하고 있다. 정 후보자는 공직에 뜻이 있었다면 논란될 일을 하지 않았어야 했다. 또 문제가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면 장관직을 수락하지 않아야 옳다. 과욕이 화를 자초한 셈이 됐다.

불평등
 
지난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통인동 대통령직인수위앞에서 청년진보당 주최 ‘윤석열식 내로남불 규탄, 정호영 보건지난복지부 장관 후보 지명 철회 촉구 기자회견’이 진행되고 있다.
 지난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통인동 대통령직인수위앞에서 청년진보당 주최 ‘윤석열식 내로남불 규탄, 정호영 보건지난복지부 장관 후보 지명 철회 촉구 기자회견’이 진행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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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해서 마이클 샌델의 <공정하다는 착각>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우리사회가 신화로 여기는 '능력주의' 허상을 고발한다. 그는 능력주의 뒤에는 '부모 찬스'를 비롯한 불공정이 똬리를 틀고 있음을 여러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 부모 소득 수준이 높을수록 SAT시험 점수와 아이비리그 대학 진학률이 높은 데이터는 좋은 사례다.

그는 불평등 원인을 '능력주의'에서 찾았다. 능력주의 아래서 좋은 대학, 좋은 직장을 잡은 이들은 자신이 잘해서 얻은 성취로 착각한다. 반면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자기 책임으로 돌린다. 샐던 교수는 "능력주의는 구조적 모순을 개인 책임으로 돌린다"며 차라리 제비뽑기로 결정하고 제안한다.

대학 진학을 제비뽑기로 결정하자는 제안은 다소 엉뚱하다. 샐덴 교수가 이렇게 말한 이유는 다름 아니다. 능력주의가 모든 불평등의 근원이라는 판단에서다. 능력에 따라 경제적 보상과 사회적 지위를 배분하다보니 승자는 한없이 오만하고 패자는 한없는 모멸감에 빠진다는 게 그가 간파한 통찰이다.

자신이 잘나서가 아니라 '운' 때문임을 안다면 겸손하고 상대를 돌아 볼 수 있다는 생각에서 제비뽑기를 제안했다. 샐덴 교수가 현미경을 들이댄 미국 사회와 한국은 얼마나 다를까. 공교롭게도 조국, 정호영 사례를 통해 확인됐듯 닮은꼴이다. 부모의 사회적 지위와 부를 기반으로 부와 명예가 대물림되는 불공정, 불평등한 한국 사회다.

청년세대가 분노하는 지점은 여기다. 부와 권력이 대학 진학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고, 여기에서 얻은 학벌이 사회적 신분과 경제적 보상을 결정한다는 구조 때문이다. 불공정이 불평등으로 이어지는 사회에서는 희망을 품기 어렵다. 계층 이동 사다리가 사라지고 신분 변동이 가로막힌 사회는 절망적이다.

이런 사회에서 청년들에게 희망을 가지라고 하는 건 위선이다. 청년세대가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말에 분노한 이유도 다름 아니다. 구조적 모순은 그대로 놔둔 채 청년세대 책임으로 돌리는 기성세대의 위선에 대한 반항이었다. 노블레스 오블리제가 아닌 염치와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회 지도층은 도덕적 권위가 없다.

윤석열 당선인과 국민의힘에 필요한 게 있다면 법적 판단이 아니라 정치적 판단이다. 다시 말해 상식이다. 윤석열 당선인은 이제 법률가가 아닌 정치인이다. 법적 잣대로 판단하지 말고 국민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상식으로 판단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 5년을 비판했던 잣대가 자신들에게 칼날이 되고 있다.

정호영 후보자 또한 40년 지기라면 윤석열 당선인의 순항을 위해 자진 사퇴해야 함이 마땅하다고 본다. 이는 공직을 대하는 염치이자 사적으로는 친구에 대한 의리이기도 하다. 고집한다면 자신은 물론 새 정부에 더 큰 화를 불러 올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임병식씨는 서울시립대학교 초빙교수(전 국회 부대변인)입니다. 이 글은 한스경제에도 실립니다.


태그:#아빠 찬스, #부와 명예 대물림, #능력주의, #마이클 샐덴, #공정과 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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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인문, 여행, 한일 근대사, 중남미, 중동문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중남미를 여러차례 다녀왔고 관련 서적도 꾸준히 읽고 있습니다. 미국과 이스라엘 중심의 편향된 중동 문제에는 하고 싶은 말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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