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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주 작품-천에 바느질
▲ 눈 속의 동백꽃 이명주 작품-천에 바느질
ⓒ 신동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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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가 처음 시작되었을 때 설마 3년 이상 갈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 틈새를 비집고 재택근무에 유용한 산업들이 살아남았다. 배달 음식과 온라인쇼핑몰 그리고 집에서 할 수 있는 다양한 것들.

전에 쓰던 미싱이 고장 나서 동네 미싱대리점에 갔더니 가정용 미싱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평소 오래된 그 미싱가게 앞을 왔다 갔다 하면서 '요즘처럼 상가들이 자주 바뀌는 곳에서 참 오래 있군' 하고 생각했었는데 의외의 풍경이었다.

"코로나 때문에 마스크를 만든다고 그렇게 많이들 사가요." 미싱가게 사장님이 웃으며 말했다. '아 뜻밖의 틈새시장이 여기도 있군' 하고 생각했다.

코로나가 길어지고 모임의 제한도 길어지자 조각보 제자들에게 "바느질거리가 없었으면 어떻게 견디었을까"하고 우스갯소리로 말하였는데 다들 한결같이 "그러게 말이에요, 덕분에 작품을 많이 만들었어요" 하고 대답하였다. 무용한 작은 천 조각들을 이어 붙여 생명을 불어넣는 일 바느질의 유용한 덕목이 돋보이던 시기였다.
 
이명주 작가의 새로운 책가도
▲ 책가도 이명주 작가의 새로운 책가도
ⓒ 신동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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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바느질 관련 전시회가 있어서 끝나기 전에 부지런히 다녀왔다. 전시의 이름도 '무용한 것들'이었다. 지난 8일 갤러리인사아트에서 시작된 이 전시는 오는 20일까지 이어진다. 

바느질 작가 이명주의 손으로 만들어낸 소소한 풍경들이었다. 모처럼 찾아간 인사동은 제법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그러나 갤러리 앞은 한가했는데 '무용한 것들'이 전시되고 있는 인사아트 갤러리는 관람객이 끊임없이 들어왔다.

'무용한 것들'의 작품들은 거의 다 빨간 스티커를 달고 있었다. 거의 다 팔렸다는 뜻. 빠르게 변하는 일상 속에서 그야말로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 손바느질이란 얼마나 무용한 것인지 손바느질을 하는 사람들만이 안다. 그러나 그 무용함이 이루어내는 유용한 아름다움 때문에 우리는 한땀한땀 바느질을 하는 것이다.

그 유용한 바느질의 덕목이 매우 아름답고 정겹게 펼쳐진 '무용한 것들'. 무용한 것들을 하나하나 염색하고 오리고 꿰매고 수를 놓는 작가는 우리가 그 유용한 가치를 잃어버려 우리의 기억 속에서도 지웠던 소도구와 소소한 풍경들을 촘촘히 채워 놓고 있었다.
 
이명주작가의 무용한것들
▲ 반짇고리 이명주작가의 무용한것들
ⓒ 신동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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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버렸던 반짇고리, 작은 소반들, 자개상, 물이 담긴 항아리 속의 푸른하늘과 구름 우물가의  소박한 꽃들, 달항아리에 꽂혀있는 벚꽃가지, 바지랑대와 펄럭이는 빨래들 그리고 어떤 책가도 보다 탐났던 그만의 책가도.

작가에겐 더 이상 서양자수, 동양자수, 전통 원단, 서양 원단의 구별도 의미가 없었고 오로지 자신의 작품 세계 안에서 다 끌어안고 한 땀 한 땀 무용한 것들을 이어 붙이고 있었다. 서양미술 동양미술 한국미술 이런 구분이 무슨 의미가 있으랴.
 
이명주 작가의 작품들
▲ 무용한 것들 이명주 작가의 작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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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또한 무용한 한복 천들과 모시 삼베 그리고 더 이상의 가치를 잃어버린 군복 등을 오리고 붙이고 염색을 하면서 외로웠지만 '무용한 것들'을 보면서 위로를 받았다. 썩 유용하지 않지만 우리가 바라보면서 위로를 받았던 '소소한 행복'(이명주 작가의 또 다른 전시회 이름)처럼.

태그:#이명주, #바느질작가, #조각보작가, #무용한 것들, #손바느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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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오페라앙상블 기획위원/ 무대의상 디자이너/ 조각보작가/ 웰다잉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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