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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친구 집에 갔다. 친구는 6학년과 4학년인 딸을 키우고 있다. 우리 집 남매와 친구 애들 나이가 같아서 공유하는 것도 많고 서로 공감하는 것도 많다. 이제 막 사춘기가 시작된 큰 애들 얘기에 "걔도 그러니? 얘도 그렇다", "너도 그렇니? 나도 그렇다" 맞장구를 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수다 꽃을 피웠다. 

"엄마 나도 마라탕 먹고 싶었어" 
 
다음엔 더 잘 담을 수 있겠지요?
▲ 양 조절 실패한 나의 마라탕  다음엔 더 잘 담을 수 있겠지요?
ⓒ 조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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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밥 때가 되었다. 오랜만에 만났으니 내가 쏘겠다고 하고 아이들에게 배달어플을 오픈해 주었다. 아이들은 한치의 고민도 없이 한 메뉴를 콕 집어서 외쳤다. 

"이모, 저희 OO 마라탕이요."
"오잉? 너희 마라탕 먹을 줄 아니?" 
"그럼요~ 없어서 못 먹어요."


친구가 옆에서 한숨을 쉬며 말을 거들었다. 

"말도 마. 매일 마라탕 타령이야. 쟤 다리 데인 상처 있잖아. 마라탕 먹다가 국물 쏟아서 생긴 상처야."

아이가 머쓱해하며 다리를 내 쪽으로 보여주었다. "허우..."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로 제법 흉터가 컸다. 흉터는 흉터고 맛있는 건 맛있는 거라며 아이들은 이내 추가 메뉴 사항을 속사포랩처럼 쏟아냈다. 

"이모! 납작 당면, 분모자, 건두부, 메추리알...(@#%^$^)... 추가해 주시고, 단계는 1단계요!" 
"뭐... 뭐라고? 잠시만, 다시 좀 불러줄래?" 


마라탕을 주문해본 적 없었던 나는 어리바리 대며 해당 요청 사항을 천천히 체크해나갔다. 그런 내 곁에서 딸아이(11살)가 "엄마, 나도 정말 마라탕 먹어보고 싶었어, 완전 기대돼"라며 눈을 반짝이는 게 아닌가. 아들도 거들며 "학교에서 여자애들 하루 종일 마라탕 마라탕 거려. 급식도 마라탕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할 정도야"라고 했다. 

이쯤 되면 학생들의 소울푸드가 떡볶이와 치킨에서 마라탕으로 교체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친구가 뭘 그렇게 놀라냐며 요즘 여자 아이들 노는 코스가 다이소→인생 네 컷→마라탕→버블티라는 깨알 정보도 흘려주었다. "시대 정말 많이 바뀌었구나." '라테' 같은 말이 절로 튀어나왔다. 

얼얼한 매운맛에 중독성이

나는 새로운 음식에 도전하는 걸 즐기지 않는다. 난데없이 등장한 마라탕이라는 이 낯선 음식에 내가 호의적일 리 없었다. 향도 세고, 맛도 세고, 그 안에 들어가는 재료 역시 분모자니, 납작 당면이니 첨 들어보는 이름들 투성이라 나와는 더더욱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마라탕의 매력이 대체 무엇이길래? 솔직히 맛보다는 어른 흉내를 내고 싶은 허세가 아닐까?라는 의심도 살짝 해보았다. 겪어보지 않는 것을 짐작하기란 너무 어려운 법이다. 아이라는 시절은 나도 겪어보았는데 왜 아이들은 여전히 어려운 것일까? 

아무튼 나에게도 마라탕을 경험할 기회가 왔다. 배달이 도착하고 내 인생 첫 마라탕 시식을 하게 되었다. 포장재료를 벗기자 향신료 향이 확~ 올라왔다. 주황빛 국물 안에 흐물거리는 채소와 면들이 굴러다녔다. 아이들은 황홀한 표정으로 연신 우와우와 댔고 나는 숟가락으로 국물을 떠서 아주 살짝, 혀만 내밀어 적셔 보았다.

'이잉? 뭐지?' 이것이 내 첫 반응이었다. 매우면서도 고소한... 여태 먹어본 적 없는 맛이었다. 미묘한 그 맛을 다시금 확인해보려고 한 입 두 입... 그러다 과감하게 후르릅 떠먹다 보니 "우와, 이거 맛있구나!"라는 깨달음이 미각을 담당하는 뇌파에서 뒤늦게 '파바방' 터졌다.

더군다나 국물 안에 내용물들도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식감이었다. 가래떡과 비슷한 분모자는 몰캉하면서도 쫀쫀하고 중국 당면은 넙적해서 훨씬 더 부들부들, 건두부는 고소하고 쫄깃하기까지. '나 너희들 이해됐어!'라는 표정으로 마라탕을 만끽했다.

약간 얼얼하게 매운맛이 중독성을 불러일으키는 듯했다. 딸아이도 그날 이후, 마라탕에 빠져서 종종 시켜달라고 조른다. 그 여파로 우리 가족의 외식지에 마라탕 가게가 하나 더 추가되었다. 그런데, 오프라인 매장은 더 신세계였다. 

뷔페 처럼 큰 접시에 자기가 먹고 싶은 재료를 담아 계산대에 올리면 그 무게만큼 가격을 매겨 조리가 되는 형태였다. 맵기도 선택할 수 있었다. 내가 뭘 넣어야 할지, 맵기를 어느 정도로 해야 할지 우물쭈물 하는 사이, 우리 집 남매는 신이 나서 자신이 좋아하는 재료들을 차곡차곡 쌓고 있었다. 맵기도 딸아이는 0단계, 아들은 1단계로 금세 선택했다.  

공부에도 메타인지(내가 무엇을 알고 모르는지 정확히 아는 것)가 중요하다는데 인생에도 메타인지가 그 못지않게 중요한 것 같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아는 것... 마흔이 넘은 나는 아직도 그게 뭔지 헷갈리고 어려울 때가 있다. 마라탕 집에서 더더군다나. 

양 조절을 잘 못해서 산더미가 된 마라탕
 
스스로 좋아하는 재료를 담고, 맵기 단계를 선택해 완성된 딸 아이의 마라탕.
▲ 맵찔이 딸 아이의 마라탕.  스스로 좋아하는 재료를 담고, 맵기 단계를 선택해 완성된 딸 아이의 마라탕.
ⓒ 조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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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사이에 마라탕이 인기라는 것은 매장에서 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손님의 절반 가까이가 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들이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익숙한 듯 접시를 들고 재료를 담고 있었다. 주방장이 알아서 내 주는 음식이 편한 나완 달리, 재료를 자신만의 스타일로 조합하고 좋아하는 것을 단번에 선택할 줄 아는 요즘 아이들이 내 눈엔 좀 힙해 보였다고나 할까. 

이렇게 취향에 맞게 음식을 선택하는 방식이 요즘 세대들과 잘 맞아떨어졌고 이전에 경험해본 적 없는 '독특한 맛' 또한 인기 요인이 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계별 맵기는 초등학생들이 도전 욕구와 포용력을 동시에 안은 신의 한 수였고 말이다. 

실제로 외식업 폐업률은 점점 느는데, 마라탕 매장 수는 점차 증가 추세라고 하니. 그 인기가 어느 정도인지는 짐작해볼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초등학생들에게 점수 딸 일이 있다면  "짜장면 사줄까?"가 아닌 "마라탕 사줄까?"가 더 낫다는 팁을 살짝 드리는 바이다. 

초등학생들의 마라탕 사랑! 어른 흉내를 위한 허세가 아닌,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사춘기 아들의 "엄마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라는 말을 듣지 않으려면, 좀 더 그 세계에 대한 촉을 세우고 공부하려는 자세를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혀가 저릴 정도로 매운 국물이라는 뜻의 '마라'처럼 우리 아이들의 인생 또한 저릿할 만큼 화끈하게 잘 살아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재료 양을 잘 못 조절해서 산더미가 된 내 마라탕을 어이없이 바라보며 해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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