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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스페인 파밀리아 성당을 설계한 가우디가 본인이 살 집을 짓는다면 어떤 모습일까 궁금했다. 번역이라는 수족관 안에서 답답한 헤엄을 치던 박산호 번역가가 본인의 창작물이라는 넓은 바다에서 자유롭게 헤엄을 친다면 어떤 모습일까 궁금했다. 그래서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설레는 마음으로 박산호 작가의 스릴러 <너를 찾아서>를 예약 구매했다.

책장을 넘기자마자 멈추지 못하고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었다. 다리가 불편한 장애인 교수에게 선뜻 우산을 건네주고 함께 걸었던 여학생을 본인이 강의하는 강의실에서 학생으로 만난다는 그리 드물지 않은 서사만으로 내 심장은 쿵 내려앉았다.

스릴러를 번역하면서 체득한 정교한 플롯에 아울러 독자를 자신의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게 하는 마력을 가진 작가라는 것을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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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를 찾아서> 표지 표지
ⓒ 더라인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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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이에 지팡이, 볼보 자동차, 톰 포드 슈트, 글렌피딕 18년산 위스키, 뱅앤드올룹슨 헤드폰, 조지 윈스턴 캐논 변주곡, 가수 자우림의 '봄날은 간다', 사브레 비스킷, 럭키 스트라이커, 웬드데이 카페, 조 말론 향수. 이 모든 고유 명사들이 <너를 찾아서>에 등장한다.

우리 시대를 관통하는 물건과 문화를 실명으로 등장시킴으로써 독자들에게 더 많은 공감을 준다. 이런 고유명사의 면면만 보더라도 <너를 찾아서>가 얼마나 생동감이 넘치는 흥미로운 소설이라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비가 억수같이 내리는 퇴근 시간이 지난 텅 빈 사무실에서 자우림의 '봄날을 간다'를 틀어놓고 이 마약 같은 책을 읽어 나갔다. 또 양귀자의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에서 유난히 조지 윈스턴을 좋아했던 주인공 강민주를 떠올렸다.

지난달 아내에게 생일 선물로 주었던 조 말론 향수를 허공에 뿌려보았다. 그리고 편의점에서 가서는 조심스럽게 혹시 럭키 스트라이커 담배가 있느냐고 물었다. 그런 담배는 없다는 편의점 직원의 대답을 듣고 알 수 없는 실망감에 어깨가 축 처져서 돌아섰다.

갑자기 세상에서 사라진 한 여인을 찾아 헤매는 세 사람의 서사를 통해서 우리는 스릴러 특유의 긴장감과 반전에 취하고, 풋풋한 로맨스 서사에 청춘 시절의 연애를 떠올리게 된다.

스릴러를 피가 철철 흐르는 냉혹한 장르라고 생각한(물론 '너를 찾아서'도 피가 철철 흐른다) 나로서는 이 책에 나오는 30대 중반과 20대 초반의 달곰한 연애 장면에서 10대 시절 읽었던 로맨스 소설의 감성을 맛보고 적잖이 놀랐다.

<너를 찾아서>를 읽고 내가 느낀 경외심과 즐거움을 표현하자면 장 그르니에의 <섬>에 붙여서 알베르 카뮈가 쓴 서문을 인용하는 것 이상이 없다.
 
나는 다시 그날 저녁으로 나는 되돌아가고 싶다.

거리에서 이 작은 책을 펼치고 나서 겨우 그 처음 몇 줄을 읽어 보고 다시 덮고는

가슴에 꼭 끌어안고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정신없이 읽기 위해 내 방에까지 달려왔던 그 날 저녁으로.

그리고 나는 아무런 마음의 고통도 느끼지 못하고, 부러워한다.

오늘 처음으로 이 책을 열어보게 되는 저 낯 모르는 젊은 사람을 뜨거운 마음으로 부러워한다.

너를 찾아서

박산호 (지은이), 더라인북스(2022)


태그:#박산호, #더라인북스, #스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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