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어머니는 멋쟁이인데다가 미모도 출중하셨다. 아버지와 미도파 백화점 앞에서 찍힌 사진은 영화의 스틸컷 같다.
▲ 부모님 젊었을 적 어머니는 멋쟁이인데다가 미모도 출중하셨다. 아버지와 미도파 백화점 앞에서 찍힌 사진은 영화의 스틸컷 같다.
ⓒ 이상구

관련사진보기


어머니께서 보리밥을 드시고 싶다 하셨다. 어머니 절친도 초대해 함께 자주 다니셨다는 식당으로 모셨다. 꽤 유명한 집인지라 손님이 많았다. 간신히 테이블을 잡았다. 주문한 음식이 나오고 어머니는 참 맛나게 드셨다. 오랜만에 먹어서인지 입에 착착 붙는다며 좋아하셨다. 그렇게 입맛이 돈다는 건 그만큼 건강이 좋으시다는 거다. 나는 먹지 않고도 기분이 좋았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길. 양쪽 관절이 다 망가진 어머니는 친구의 부축을 받으며 천천히 걸음을 옮기셨다. 그런데 뒤에 오던 젊은 여성 한 분이 쌩하며 우리 일행 옆을 스쳐 지나간다. 아마 어머니의 느린 걸음이 답답했던 모양이다. 긴 생머리에 아주 짧은 반바지를 입고 있었다. 우리 일행은 그 바람에 깜짝 놀라 일순 자리에 멈춰 섰다. 멀어져 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어머니는 한숨 섞어 한 말씀 하신다.

"어휴, 나도 저럴 때가 있었다. 내 비록 키는 작았어도 각선미 좋다는 말은 많이 들었지."

아, 같은 걸 보고도 사람들은 서로 다른 걸 느낀다더니. 나는 거동이 불편한 노인 분 사정도 봐주지 않고 다소 거칠게 지나친 그 분이 조금은 야속하고 못마땅했는데, 어머니는 그새 당신의 화려했던 과거를 추억하신 거다. 그런 어머니 눈길이 아련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런데 어머니 말씀, 하나도 틀린 것이 없다. 전혀 과장이 아니다. 그건 내가 보장한다. 우리 어머니는 정말 멋쟁이셨다. 미모도 출중하셨다. 환갑이 지나고도 무릎 스커트를 입고 다니실 정도였다. 그랬던 분이 이젠 팔순의 할머니가 되어 누군가의 부축 없인 걷기도 힘들게 된 거다. 아, 야속한 세월이여. 돌아오는 차 안에서 어머니께 물었다.

"거 봐요. 제때 관절 치료하고 수술도 받고 그랬으면 엄마도 잘 걷고 계단도 잘 오르내리시고 그랬을 거 아녜요. 그때 내 말 안 들으신 거 후회하죠?"

어머니는 아주 잠깐 생각에 잠기시는 듯하더니 이내 입을 여신다.

"후회? 후회 같은 건 다 필요 없다. 그땐 그게 맞는 생각이었고, 지금은 또 지금에 맞춰 사는 거지, 후회는 안 한다."

목소리는 작았지만 말투는 단호하셨다. 특히 마지막의 '후회는 안 한다'는 대목에선 어떤 결연함이나 강한 신념 따위의 감정이 한꺼번에 녹아 있는 듯했다. 내가 얼른 대꾸하지 못할 만큼.

후회해서 무엇하리

나이 들면서 느는 건 주름과 후회란다. 그때 그랬더라면 혹은 도대체 내가 왜? 혹은 미쳤던 거 아냐? 등 저마다 지나온 삶의 궤적 속엔 후회의 그림자가 어려있다. 시인들은 후회 없는 인생이 어딨겠느냐 노래하고, 저명한 멘토들은 스무 살 때 알았더라면 하며 공감한다. 서점엔 '후회 없이 사는 101가지 비법', '후회를 두려워 말라' 같은 응원의 책도 많다.

나도 그랬다. 지나온 모든 시간과 인연이 그랬다. 그중에서도 나는 특히 질풍노도의 시절인 중학교 2학년 때가 가장 후회스러웠다. 그때 헤비메탈(Heavy Metal)을 듣지 말았어야 해, 왜 난 수학을 포기했을까?, 자율학습 시간에 교양서적을 읽으라던 담임샘 말을 듣지 말았어야 해 등. 그랬더라면 지금의 나는 달라져 있을 것 같아 아쉬워하곤 한다.

그 후로도 내 인생은 별다르지 않았다. 뚜렷한 계획이나 목표 없이 그때그때 내키는 대로, 닥치면 닥치는 대로 살았다. 후배들이 짱돌 던지러 가자면 신나서 쫓아 나섰고, 남들 다 취직한다니 뭔지도 모르고 영업사원이 되었으며, 그리하란 말에 느지막이 결혼도 했다. 하지만 그 모든 게 그저 후회로 남았다. 물론 그땐 몰랐다. 한참 나중에야 알았다.

마흔 후반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위기를 맞았을 때, 느닷없이 찾아오기 시작한 비극적인 사건·사고로 육신이 망가져 갈 무렵부터 문득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인생을 너무 막 살았구나, 지금 이 고통은 무책임하게 시간을 날려버린 죄에 대한 형벌이 분명해, 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때 처음으로 후회라는 걸 해본 거다.

그렇게 10년이 지났다. 강산도 변한다는 시간이지만 실은 강산이 아니라 내가 변하는 거였다. 그건 그대론데 그것을 보는 내 시선이나 생각 따위가 달라졌다. 그러면서 오히려 후회의 장막은 점점 더 엷어져 갔다. 그냥 내 속만 상하게 하고, 남은 인생마저 갉아 먹고 있다는 걸 조금씩 깨쳐왔다. 그 참혹한 고난의 10년은 혹독한 수련기였던 거다.

후회는 안 한다는 어머니 말씀도 실은 그런 지난한 과정을 거쳐 얻은 깨달음일 것이다. 후회는 '없다'라기보다 '안 한다'라고 하신 대목이 그를 증거한다. 그렇다, 후회는 별 쓸모 없다. 부질도 없다. 지난 시간 되돌릴 수도 없으려니와 되돌린다 해도 내가 다시 클래식을 듣고 수학을 잘할 것 같지도 않다. 그런 시간에 다른 일 하는 게 훨씬 현명하다.

후회보다는 회개를
 
아버지께서 남기신 어느 이름 없는 필객의 글. 후회 없이 살려면 계획하고 실천하고 반성하라신다. 참으로 지당하고 옳으신 말씀이다.
▲ 후회 없이 살려면 아버지께서 남기신 어느 이름 없는 필객의 글. 후회 없이 살려면 계획하고 실천하고 반성하라신다. 참으로 지당하고 옳으신 말씀이다.
ⓒ 이상구

관련사진보기


예수님은 회개하라셨다. 자신의 잘못과 죄를 인정하고 진정으로 참회하며 앞으로의 마음과 삶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나가려는 처절한 노력이다. 당신을 따르려면 네가 가진 모든 걸 다 버리기부터 하라셨다(루카 9.23). 그거 쉽지 않다. 특히 그 죄의 인정은 피떡 진 옷이 벗겨지는 것처럼 고통스럽다고 우리 신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밥 잘 먹고 어머니께 한 방 맞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갑자기 아랫배가 묵직해지더니 참을 새도 없이 뽀~옹 가스가 분출됐다. 삽시간에 차 안에 흉측한 냄새가 번졌다. 보리 효과였다. 어머니와 친구분이 코를 막고 창을 여셨다. 아, 맛나다고 너무 많이 먹은 탓이다. 내가 또 미련스럽게 왜 그랬을까? 어라, 근데 이거 그거 아냐, 나는 절대 안 하겠다는? 하긴 이 세상엔 '절대'도 없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한창 말 많을 나이의 아저씨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