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곶자왈은 숲을 뜻하는 제주어 ‘곶’과 가시덤불을 뜻하는 ‘자왈’을 합쳐 만든 글자로 화산이 분출할 때 점성이 높은 용암이 크고 작은 바위 덩어리로 쪼개져 요철 지형이 만들어지면서 나무, 덩굴식물 등이 뒤섞여 원시림의 숲을 이루는 곳을 이르는 제주 고유어입니다.
▲ 곶자왈  곶자왈은 숲을 뜻하는 제주어 ‘곶’과 가시덤불을 뜻하는 ‘자왈’을 합쳐 만든 글자로 화산이 분출할 때 점성이 높은 용암이 크고 작은 바위 덩어리로 쪼개져 요철 지형이 만들어지면서 나무, 덩굴식물 등이 뒤섞여 원시림의 숲을 이루는 곳을 이르는 제주 고유어입니다.
ⓒ 곶자왈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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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 알바를 한 적이 있다. 일은 쉽지만은 않았다. 쉽지는 않았지만 배운 부분도 있었고, 새롭게 깨닫게 된 부분도 있었다. 그리고 제주를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는 계기도 되었다. 제주의 기업 운영방식 혹은 제주의 기업 문화가 제주의 기후위기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에 기록으로 남겨두게 되었다.

먼저 도내 골프장에서 했던 일을 상기해본다. 골프행사가 있을 때 방송장비 설치 관련 일을 했었고, 다른 골프장에선 식당에서 일을 했다.

한번은 식당에 밥을 먹으러 간 적이 있었다. 잠시 화장실에 들렀다. 너무 놀랐다. 그 이유는 바로 에어컨 때문이었다. 화장실에 에어컨이 있다는 것도 놀랐지만 온도를 보고 한 번 더 놀랐다. 무려 18도였다. 다른 날 같은 시간대에 가봤다. 그때도 화장실에 에어컨이 켜져 있었다. 다른 시간대에 들어갔을 때도 에어컨이 켜져 있었다. 그리고 대부분 18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화장실은 보통 1분, 길어도 5분 정도 사용하지 않을까? 늘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사람이 잠시 왔다 가는데 에어컨을 항상 켜는 것은 상당한 전력낭비이지 않을까.

또 한 번 놀란 적이 있었는데 골프장 중간에 단층 건물이 있는 곳(골프장 규모는 상상을 초월한다)이 있다. 지나가다 이용할 일이 있어 들른 적이 있는데 그곳에도 에어컨이 켜져 있는 것이 아닌가! 그곳을 사람들이 자주 이용하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가끔 들른 곳에서조차 에어컨이 켜져 있던 사실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제주는 시간이 지날수록 전력 사용량이 늘어나고 있다. 원전을 확대해야 한다거나 재생에너지를 확대해야 한다는 생산 방식에 대한 논쟁이 존재하지만 전력이 어떻게 사용되고 있고, 얼마나 낭비되고 있는지에 대한 감시는 제대로 이뤄지고 있지 않는 것 같다. 생산 방식도 중요하지만 유통 구조나 소비 문화(혹은 방식)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기후위기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현시점에서 전력사용량을 줄여나가야 하지 않을까?

그 외에도 건물 내에서 문을 열어놓고 에어컨을 켠다던가, 사람이 없는데도 장시간 에어컨을 켜는 장면도 많이 목격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막대한 전력 낭비가 일어나고 있는 곳이 있을 수 있다. 대자본에 대한 적절한 규제 없이 친환경에너지 혹은 에너지신기술을 얘기하는 것이 얼마나 설득력이 떨어지는 얘기인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두 번째로 생각하게 된 지점이 있다. 바로 곶자왈이다. 골프장을 돌아다니는 중간에 곶자왈이 보였다. 나는 환경에 대한 감각이 예민한 편은 아니지만 '이곳이 바로 곶자왈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 곶자왈공유화재단이 지난 2019년 실태조사를 벌인 후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골프장과 숙박시설 등 사업장으로 인해 전체 곶자왈(99.5㎢)의 29.5%(29.4㎢)가 훼손됐다고 한다. 

중간에 약간씩 살려둔 곶자왈을 보면서 원형 그대로의 곶자왈의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원형 그대로인 자연의 모습은 이제 상상으로만 만날 수 있을까? 그러면서 여러 생각이 들었다. '누가 이곳에 개발사업 인허가를 내줬을까', '개발사업 인허가를 내줌으로써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을까', '땅은 왜 팔았을까' 등.

제주를 홍보할 때 보통 천혜의 자연환경 혹은 아름다운 제주 등을 많이 거론한다. 이때 거론되는 제주는 일종의 관광상품인 셈이다. 그러나 실제 모습은 어떤가. 제주의 허파라 불리는 곶자왈 지역에 대규모 골프장을 건설하는 짓을 벌이고 있지 않은가?

이보다 더 웃긴 일이 어디 있을까. 실제 원형 그대로의 자연은 완전히 망가뜨려 놓고, 인공적인 자연 모형을 건설하면서 '천혜의 자연환경' 제주로 오라고 하는 모습 말이다. 친환경이란 용어는 이미 오염되었고, 탄소제로 정책은 겉만 번지르르한 액세사리와도 같다.

땅을 파는 행위는 미래가치를 당겨쓰는 것이라 생각한다. 생산방식뿐만 아니라 공간 활용, 문화 창출, 대안적 삶에 대한 가능성 등 여러 가지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한다. 그리고 수익은 소수에게 돌아간다.

그 결과 제주도민은 일차적으로 대자본을 위해, 이차적으로 관광객을 위해 노동력을 파는 위치로 전락했다. 신규일자리 창출 혹은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말로 주민들을 현혹했겠지만 실제로 벌어지는 일은 주체성 상실과 자본에 대한 경제적 종속뿐이란 생각도 들었다. 

호텔에서 음식 관련 알바를 한 적이 있었다. 야외에서 연회행사가 진행됐다. 뷔페를 하는데 엄청난 인원이 식사를 한 적이 있었다. 실로 엄청난 양의 고기가 소비되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서 남은 음식들은 모조리 음식물쓰레기통으로 집어넣는 장면을 봤다. 워낙 빨라서 꺼내 놓은 음식들이 사라지는 건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버려진 음식물은 어떻게 될까? 음식물쓰레기통에 들어갔으니 곧바로 쓰레기가 되어 버렸고, 어딘가로 옮겨져서 묻히지 않을까. 그러면서 음식물쓰레기 처리장이 부족하다면서 신규처리장을 또 지으려는 것인가. 

그 외에도 물 낭비도 엄청나게 일어나고 있다. 골프장, 호텔 너나 할 것 없다. 골프장은 잔디를 관리하기 위해 방대한 양의 물을 뿌리고 있었고, 호텔 내에서는 엄청난 양의 고기를 조리하기 위해 물을 쓰고 있었다.

도내 건설현장은 또 어떤가. 건물을 지을 때 산업폐기물이 엄청나게 많이 나오는 장면을 봤다. 그리고 어떤 곳에서는 각종 쓰레기들을 철제 원통에 넣고 약 1시간가량 불로 태우는 곳도 있었다. 지나갈 때 숨 쉬기 힘들 정도로 더러운 냄새가 진동했다. 그걸 긴 시간동안 하고 있다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냄새도 냄새지만, 엄청난 연기가 나오고 있었다. 이것이 대기오염이 아니고 뭘까. 현장에 많은 사람이 있었지만 제지하는 사람은 없었다.

기후위기가 현실로 다가온 지금, 알바를 하면서 목격한 일부분이 이 정도다. 내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 전력낭비, 물 낭비, 음식낭비, 대기오염 등이 얼마나 일어나고 있을지 상상조차 어렵다. 기업에 대한 규제가 없거나 약하니 벌어지고 있는 일 아닐까. 여기서 질문할 수밖에 없다. 정부는 왜 있고, 국가는 왜 있는가.

기후위기와 경제성장은 결코 양립할 수 없다. 기업에 대한 규제가 없으면 기후위기가 가속화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말로만 환경보호, 주민수용성을 얘기할 것이 아니라 기업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소비량을 줄여나가야 하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미디어제주에도 송고합니다.


태그:#곶자왈 , #기후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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