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파리바게뜨 가맹점
 파리바게뜨 가맹점
ⓒ 한승재

관련사진보기

 
"피 묻은 빵은 먹지 않겠다"

SPC그룹의 비윤리적 경영 실태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 지난 10월 15일, 20대 노동자가 소스 배합기에 끼여 사망했다. 이에 허영인 회장(SPC그룹)은 대국민 사과와 재발 방지 대책을 내놓았다. 약속 이틀 뒤인 23일, SPC그룹 제빵공장에서 40대 노동자의 오른손 검지가 절단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81개 여성·노동시민단체는 10월 26일, 기자회견에서 "잇따른 사고는 무리한 작업 물량으로 안전장치 없이 혼자 일하다 벌어진 참사"라 지적했다. 그동안 SPC그룹은 안전장치를 설치할 의무가 없다는 이유로 노동 안전을 외면했다.

일련의 사태를 지켜보던 소비자들은 "피 묻은 빵은 먹지 않겠다"라며 불매운동에 나섰다. 가맹점 불매부터 시작해, 온라인상에서 SPC그룹의 제품을 찾아 배포하는 등 소비자들의 움직임은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갔다.

불매운동으로 나타난 가치소비

소셜 미디어의 확장은 소비자가 브랜드 평판이나 제품의 품질을 고려해 소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만들었다. 2018년부터 SPC그룹과 관련한 제빵 노동자의 단식 투쟁, 노총 인사 정리 등 연이은 이슈가 불거지자 소비자들은 SPC를 불매하기 시작했다. 

대표 브랜드 가맹점 불매와 더불어 숨은 제품까지 찾아내 공론화하는 이번 불매운동의 양상은 가치소비의 특징이 묻어났다. 가치소비는 '소비자의 소비가 환경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까지 고려하는' 윤리적 소비를 뜻한다.
 
자료출처='여론 속의 여론'
 자료출처='여론 속의 여론'
ⓒ 한승재

관련사진보기

 
한국리서치 '여론 속의 여론' 팀의 '착한 소비에 관한 인식 및 실태 조사'에 따르면, 10명 중 6명 이상이 품질이 우수하고 가격이 저렴하더라도 제품을 판매하는 기업이 '비윤리적'이라면 제품을 구매하지 않을 것이라고 응답했다. 즉 소비자들은 제품의 호감 요인이 있더라도 비윤리적 기업의 제품이라면 불매할 의사가 있다는 것이다. 

자료출처=대한상공회의소
 자료출처=대한상공회의소
ⓒ 한승재

관련사진보기

 
이렇듯 ESG*는 경영의 주축을 넘어 사회적 추세가 됐다. 새로운 소비 주체로 부상한 MZ세대는 제품 구매 시 기업의 ESG 실천 여부를 중요하게 인식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 4월 실시한 'MZ세대가 바라보는 ESG 경영과 기업의 역할' 조사 결과, 응답자 10명 중 6명은 ESG를 실천하는 기업의 제품이 비싸더라도 구매할 의사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기업의 바람직한 역할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일자리 창출'보다 '투명 윤리경영 실천'이라는 응답이 높았다.

*ESG(Environmental, Social and Governance): 기업 활동에 친환경, 사회적 책임 경영, 지배구조 개선 등이 필요하다는 투명 경영 실천을 뜻함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소상공인

소비자들의 불매운동은 SPC그룹 이미지 타격에 큰 역할을 했지만 마냥 낙관적으로 볼 순 없다. 운동의 대상이 SPC그룹이었어도 일차적 타격을 입은 건 가맹점주다. 실제로 SPC그룹 계열사면서 이번 사태의 주축에 있는 파리바게뜨 가맹점주들은 언론과 인터뷰에서 운영의 어려움을 표했다.

가맹점주협의회 관계자는 <조선비즈>와의 인터뷰에서 "본사와 회의를 통해 피해보상 방안을 마련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일차적으로 완제품 일부 품목에 대한 반품 요청을 받고, 이를 확대할 방안을 논의 중"이라 전했다. 이어 "사고에 대한 보상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불매운동이 계속되면 결국 소상공인들이 피해를 볼 것"이라 우려했다.

사회적 가치 실현은 언제쯤
 
자료출처=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자료출처=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 한승재

관련사진보기


앞서 보았듯 소비자는 ESG 경영, 그 어느 때보다 '윤리적 소비'인 가치소비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SPC그룹 허영인 회장은 올해 경영 키워드로 '프랜차이즈 ESG 경영'을 제시한 바 있다.

계열사 공장의 노동자 사고에도 법적 안전 의무가 없다는 이유를 들며 노동환경을 개선하지 않은 행보와는 대조적이다. 산재 실태를 분석한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자료에 따르면 SPC그룹 계열사 네 곳(파리크라상, 비알코리아, 피비파트너즈, SPL)에서 산재 피해를 본 사람 수는 2017년 4명에서 2021년 147명으로 늘어났다.

SPC그룹이 소비자들의 불만을 산 지 한 달이 채 안 된 지난 3일, 삼립 세종 생산 센터 직원이 노동청 감독관의 감독계획서를 무단 촬영해 본사 계열사 등에 공유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그룹은 네 번째 사과를 전했다. 그룹이 노사합의를 이뤘다고 밝힌 날이었다.

소비자들과 노동자들은 그룹의 반사적 사과가 아닌 실질적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가치소비의 형태가 뚜렷해지고 사회적 가치를 중요시하는 지금, SPC그룹의 행보에 많은 소비자들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태그:#SPC그룹, #가치소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