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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헌 전 감사원장
 한승헌 전 감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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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의 집권 그리고 한승헌의 감사원장 취임으로 공직사회는 잔뜩 긴장했다. 사정의 칼날이 언제 닥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뒤덮였다. 감사원도 다르지 않았다.

"감사원 안에서는 당시 이 정부의 개혁방향과 나의 재야성으로 미루어 과감한 수술이 있을 것으로 보고, 기대와 불안이 뒤섞여 있는 분위기였다." (주석 4)

앞에서 소개한 대로 임기가 법에 보장된 사람들을 아무 잘못이 없는데도, 오직 전 정권에서 임명되었다는 이유로 사표를 요구하거나 선별처리하는 일 없이 보장하면서 감사원은 활기가 넘치고 생산적인 일을 스스로 찾아 행하였다고 한다. 

다른 부처와는 달리 신상에 대한 불안감이 없어지자, 직원들 간에 불우 어린이와 장애 어린이를 돕기 위한 성금 모으기 운동이 자발적으로 일어났다. 매달 봉급에서 얼마씩 떼서 계속 돕자는 그 운동에 원장인 나도 참여했다.(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성금 모으기는 이어져오고 있다.) (주석 5)

한승헌은 이 같은 분위기에서 외환 위기와 관련 특감에 주력하여 그 원인과 책임을 규명하는 데 진력했다. 몇 개월 동안 심층적인 감사를 하고, 보고서를 통해 정부 각 부처와 책임있는 공직자들에 대한 수사를 검찰에 의뢰했다.

취임하던 해 8월 28일이 개원 50주년이었다. 감사원 뒷마당에 유신시대의 한 상징이 남아 있었고, 오래 전부터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었다. 

1998년 8월 28일 개원 50주년을 기하여 원훈과 원의 상징물을 새로 정했다. 감사원 뒷마당에 박정희 대통령의 친필 '공명정대(公明正大)'를 새긴 바위가 있는데, 그것이 원훈이라고 했다. 알고 보니, 원훈을 써준 것이 아니라, 써준 것을 원훈으로 삼았다는 이야기였다. 또 마패가 원의 상징이었는데, 그것도 시대의 변화에 맞지 않는 것 같아서 재검토를 지시했다. 그 결과 두 가지 다 공모를 하기로 했다.

원 내외에서 많은 응모작이 들어왔는데, 원훈 당선작은 '바른 감사, 바른 나라'로 결정되었다. 상징은 국민의 눈과 귀, 그리고 감사원의 각 첫 닿소리인 'ㄱㅅ0'과 사정의 사'司'자를 상징하는 도안으로 정했다. 원훈 당선작을 낸 분이 군수시절 운전기사 몫의 도시락까지 싸가지고 관내 순시를 다녔다는 청백리여서 더욱 화제가 되었다. (주석 6)

감사원에는 한 가지 시급한 현안이 있었다. 원장의 정년을 당시 65세에서 70세로 연장하는 일이었다. 다른 부처와 형평성에도 맞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자칫 오해의 소지가 없지 않았다. 

자신의 정년퇴임일이 임박하여(그는 1999년 중반 현재 65세) 이를 연장하려는 의도로 오해받을 소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공적인 분야에서 둘째라면 서러워할 원칙론자에 속한다. 

나는 감사원법 개정법률안을 만들어 법 개정을 추진하는 한편, 신문ㆍ방송 등 언론을 통하여 정년연장의 당위성을 역설했다. 그때마다 나는 법이 개정되어도 종전의 정년규정대로 퇴임하겠다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 내가 추진한 정년연장으로 자신의 재임기간을 늘린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개정안 부칙에다 정년연장 규정은 개정 당시의 감사원장에게는 적용하지 않는다는 명문을 박아놓았다. 

법안이 국무회의에 올라가기 전, 청와대에서 그 부칙을 삭제하고 다시 개정안을 올려달라는 요청이 왔다. 나는 사무총장으로 하여금 개정안을 원안대로 의결해 주기 바란다는 뜻을 전하고 청와대로 들어가 대통령께 부칙을 살려둘 필요성을 간곡히 말씀드려서 초지를 관철했다. (주석 7)

그가 마련한 감사원장 정년을 연장하는 법률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고, 자신은 종전의 규정에 따라 1999년 9월 약속한 대로 정년퇴임하였다. 1년 반 동안의 감사원장이었다. 

그는 감사원의 독립성을 유지하고자 무진 애를 썼다. 

나는 만일의 경우에 대비한 시나리오를 준비하고 청와대를 드나들었다. 혹시 대통령께서 감사원의 직무상 독립에 어긋나는 말씀을 하신다면, 그때 어떻게 할 것인가를 몇 가지 '모범답안'으로 정리하여 머리에 입력해두었던 것이다. 그러나 내 재임 중 한번도 그것을 써먹을 기회가 없었다. 대통령께서 감사원의 독립을 120% 존중해주셨고, 그만큼 나는 행복한 감사원장이었다. 심지어 IMF사태를 불러들인 환란 감사에 대해서조차 지시는 고사하고 유도성 암시조차 없었다. 모든 감사는 감사원의 독자적인 판단과 책임하에 이루어졌다. (주석 8)


주석
4> <자서전>, 324쪽.
5> 앞의 책, 325쪽.
6> 앞의 책, 326쪽.
7> <역사의 길목에서>, 429쪽. 
8> <자서전>, 327쪽.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대의 양심 한승헌 변호사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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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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