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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셰는 성공의 상징일까. 알바 동료들끼리 잠깐 틈이나 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J는 포르셰를 갖는 게 꿈이라고 했다. 포르셰? 내가 되묻자 웃으며 그렇다고 답했다. 다들 직업으로 꿈을 말할 때 그녀는 포르셰를 몰고 싶다고 했다. 포르셰 가진 남자를 만나고 싶다는 여자를 본 적은 있어도 자신이 포르셰를 갖겠다는 여자는 본 적이 없었다. 순박한 모습의 J는 외형과 다르게 남자에 의존하지 않는 주체적인 여자였다.      

임대아파트에 사는 주부는 다른 곳으로 이사 가고 싶다고 했다. 초등생 아이들이 있는데 학교에서 환경조사하거나 기관에서 주소 말할 때 움츠러든다고 했다. 외형으로 판단하는 사람들을 무시할 수 없다고 했다. 포르셰 타면 대우받고 티코 타면 무시당하고 임대아파트에 살면 가난한 사람으로 취급해 사람대우 못 받는다고 했다.     

예전, 직장 동료가 내가 임대아파트에 산다고 했을 때 거긴 못 사는 사람들 사는 곳인데, 라고 했던 것을 기억한다. 내 스마트폰 기종을 확인했을 때도 어, 그거 못사는 사람들이 갖는 거잖아라고 했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내가 가진 것들로 나를 평가했다. 그러나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스마트폰도 통화만 되면 되는 것이고 나는 내가 사는 아파트에 만족했기 때문이다. 

임대아파트에 만족합니다

나는 임대아파트에 산다. 처음 독립했을 때 마침 추가 모집이 있었고 3순위에 해당됐지만 입주하게 되었다. 입주선물로 풍년 압력솥을 받았다. 아파트에 살아본 적은 없지만 임대아파트는 좁고 별로라는 편견 때문에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러나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너무 좋아서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자랑했었다. 시골에 계신 엄마는 내가 아파트를 산 줄 알고 좋아하셨다. 그러다가 몇 년 후 임대라는 사실을 알고 실망했다. 엄마는 내 집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셨지만 나는 생각이 달랐다. 신축아파트라 깨끗했고 생각보다 넓고 전망이 탁 트여서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남향이라 하루 종일 밝고 따뜻했다. 보증금도 저렴했다.  
    
얼마 전, 언니는 거기 계속 살 거야?라고 동생이 물었다. 이사 갈 이유가 있을까 되물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지인들도 아직도 거기 살아? 가 안부인사였다. 재테크에 관심 많은 어린 조카는 '이모, 매달 월세 내는 비용을 저금하면 집 한 채 살 수 있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임대로 살지 말라는 뜻이겠지. 나는, '응, 그래 듣고 보니 네 말이 맞다. 그런데 너 휴대폰 요금 얼마지?' 조카는 ' 글쎄 육만 원 정도'라고 대답했다. 내 임대료보다 비싼 요금이다.     
   
누가 뭐래도 12년째 거주 중인 17평 임대아파트는 나에게 딱이다. 현재 기준 임대료 59000원, 관리비는 조금 비싸다. 쓰는 것 동일한데 처음과 달리 점점 올라 임대료를 추월해 70000원 선이다(관리비는 미스터리). 가스비는 사계절 평균 10000원. 무엇보다 하자가 생겼을 때 신경 쓸 일이 없다. 때가 되면 알아서 보일러도 교체해 주고 실내 소독도 해주고 세면실 배관, 타일 등 모든 걸 무료로 신속하게 수리해 준다. 어떨 때는 침구 소독까지 해준다. 임대라서 실망한 엄마에게 이런 얘기를 들려주자 오! 그래? 하면서 매우 좋아하셨다. 엄마는 자가 소유 집수리를 힘들어하는 분이셨는데 비로소 임대아파트에 대한 시선을 달리하셨다.   
   
이곳은 단지가 크지만 매우 조용하다. 러시아 교포 이주민이 60% 이상을 차지하다 보니 학생보다는 노인들이 많다. 너무 조용해 모두가 잠든 새벽이면 어디선가 코 고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린다. 휴대폰 진동 소리가 들릴 때도 있다. 물론 가끔이다. 가만히 코 고는 소리를 듣고 있으면 짜증 나기보다는 괜한 웃음이 나온다. 사람 사는 것 같아서. 고단한 하루를 보냈군! 하면서 본 적도 없는 '그'를 위로한다.    
   
이번에는 손님이 왔는지 유독 목소리 큰 한 사람만 집중적으로 들린다. 업된 분위기의 굵직한 목소리. 취기가 있다. 성격 화끈할 거 같은 거친 남자 목소리. 어두운 적막 속에 한참 떠들다 사라진다. 이 모든 것들이 시끄럽기보다는 정겹다는 느낌이다. 어쩌다 있는 싸움소리. 웃고 놀고 떠드는 소리에도 화가 나지 않는다. 아파트도 사람 사는 곳인데 다 봐줄 만한 사람 사는 것들인데 적막함보다는 낫지 않은가. 생기 넘치는 살아있는 삶이 숨쉬기 좋지 않을까,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사실, 처음부터 소음에 너그럽진 않았다. 12년 전 처음 아파트로 이사 왔을 때 나는 작은 소음에도 예민하게 반응했다. 관리실을 찾아가 소음의 근원지를 찾아달라고 항의했었다. 늦은 밤 세탁기 돌리는 소리였다. 노력했지만 소리의 근원지는 찾지 못했다.

그러자 경비아저씨는, 서로 이해하고 삽시다. 그 집은 밤늦게 퇴근하는 사람인가 보지요. 그 시간밖에 세탁기 돌릴 시간이 없어서 그럴 거예요.라고 하는 것 아닌가. 당시는 서운했었다. 그러나 경비말을 되새김했을 때 깨닫는 것이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을 수 있다면 이해해 주는 게 맞다고 그게 인정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 후론 세탁기 소리가 들리지 않아서 어찌 된 영문인지 궁금하기도 했다.      

어떤 아파트에 사느냐보다 중요한 것

프라이빗한 생활을 원하는 사람들이 많은 세상에 공동주거는 제약이 따른다. 서로서로 배려하고 양보하지 않으면 지옥이 된다. 소음과, 아파트 입주민 갑질 뉴스를 접할 때마다 우리 아파트는 그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런 것들이 고마워 경비 아저씨들에게 가끔 간식을 사드리는 걸로 마음을 전한다.

임대아파트에 살아서 부끄러웠던 적은 없었던 거 같다. 그런데 요즘은 부끄러워해야 정상인가 하는 착각이 들 때가 있다. 최소 사는 곳으로 평가하진 말자. 화려한 명품을 걸쳤다고 직업이, 인성이 다 명품은 아니지 않은가. 임대아파트를 과소평가해선 안 된다. 생각보다 훨씬 구조가 좋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떤 아파트에 사느냐 보다는 어떤 사람들이 사는가가 중요하다. 품위는 스스로가 만드는 것이지 아파트가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다. 더 이상 사는 곳이 품격을 말해준다는 광고는 하지 말자.

아무리 세상이 아파트 크기와 브랜드, 자가용으로 사람을 평가한다지만 나는 임대아파트에 산다. 흔한 자가용도 없다. 가진 게 없어 무시당해야 한다면 무시당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다. 그렇다고 타인의 시선에 맞혀 필요조건을 갖춰 살 필요는 없지 아닌가. 내 삶은 내 선택이고 내가 가진 조건은 충분조건이면 된다. 행복하면 그만이다. 
       
임대아파트를 벗어나 더 좋은 아파트로 향하는 꿈을 가진 사람들. 포르셰를 꿈꾸는 사람들. 필요충분조건이 이루어지길 모두 응원한다.

태그:#임대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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