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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들이 모여 색소폰 연말 연주회를 하는 모습이다.
▲ 연말 연주회 모습 회원들이 모여 색소폰 연말 연주회를 하는 모습이다.
ⓒ 박희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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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지 읽노라~"

여기까지 부르면 '그만'이라는 소리와 함께 멈춘다. 학창 시절 음악 실기 시험을 치르던 기억이다. 왜 여기까지만 부르라 했을까? 노래를 들을 필요도 없다는 뜻이었을까? 아니면 그만해도 노래 실력을 알았다는 뜻이었을까? 늘 궁금했던 음악 시간이었다. 

실기 점수는 언제나 뻔한 점수였기에 필기시험에 집중하게 되었고, 이내 음악과는 멀어지고 말았다. 음악실 뒷자리에 앉아 시간이 지나가길 기다린 이유였다. 소질도 없었지만 접할 기회조차 없었으니 더욱 그랬으리라. 

음악, 나하고는 상관없는 분야라 생각하게 된 것은 왜일까? 초등학교 시절엔 풍금, 중고등학교엔 밴드부가 있었다는 것이 음악에 관한 기억이다. 가끔 친구들의 음악에 관한 이야기엔 부럽기도 했다. 친구들은 악기 연주를 하기도 했었고, 음악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기도 했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한 번 접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된 계기가 되었다. 대학 시절의 통기타 바람 덕에 기타를 치며 노래했지만, 박자와 음정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 노래였으리라.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음악에 관심을 가질 여력이 없었고, 노래방이 유행하면서 고민이 또 생겼다. 박자와 음정에도 무감각했지만, 고음 영역은 도저히 감당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학창 시절의 음악 시험, 노래방에서의 서러움을 해결할 수는 없을까? 선택은 색소폰이었는데, 색소폰이 흔하지 않던 30여 년 전이다. 가끔 엉뚱한 짓을 하는 사람, 글을 쓴다고 했다가 마라톤을 하기도 했다. 느닷없이 엉뚱한 곳으로 이사를 하고, 몸짱이 되겠다고 헬스장을 드나들었다.

사람들을 놀라게 하던 사람이 이번엔 색소폰으로 당황하게 만들었다. 거금 100만 원을 들여 색소폰을 구입한 것이다. 색소폰 연주자가 되고 싶었지만, 색소폰 연주가 쉽게 될 수 있다던가? 교습을 받으며 여러 곳을 전전하며 연습을 했다.

학교 지하실을 이용하기도, 노래방 빈방을 전세 내기도 했다. 강가에서 연습을 하다 쉬러 나온 사람들과 다툼도 있었다. 쉼 없는 노력으로 연주해 보려 했지만, 삶은 그냥 두질 않았다. 색소폰을 방구석에 처박아 두어야만 했다. 세월이 흘러 색소폰을 다시 잡게 되었는데, 색소폰 동호회를 만난 것이다.

작은 동호회로 지하실에서 전문가가 지도하고 있었다. 합주 연습을 하면서 인원이 10명 남짓이 되었고, 서서히 자리를 잡아갔다. 어느 정도 수준이 되면서 연말 연주회를 해보기로 했다. 가족과 친지를 초청하여 시작한 연주회, 초창기엔 보잘것없었지만 해가 갈수록 성대한 연주회가 되었다.

서서히 자리를 잡아갈 무렵, 인간의 모습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회원들 간의 다툼으로 동호회는 반쪽이 되었고, 동호회가 무산될 위기가 되었다. 고심 끝에 동호회를 이끌어 나가기로 했다.

사무실을 옮기고 연습실을 다시 마련했다. 방음벽을 설치했고 내부 시설을 마친 후, 본격적으로 연습을 시작했다. 전공자의 지도로 소리가 다듬어지면서 서서히 회원이 모여들었다. 사람들의 삶이 언제나 순탄하기만 하다던가? 장맛비로 지하연습실이 물난리가 나기도 했고, 의견 다툼으로 많은 회원이 바뀌었다. 

무한한 인내와 노력으로 회원들을 설득하고 다독이며 동호회를 이끌어 왔다. 회원들과 대화를 하고, 연습을 하면서 회원들의 의견이 모아졌다. 동호회의 모습을 갖추어 가기 시작한 것이다. 알토 색소폰 1, 2부 10명, 테너 색소폰 5명 등 15명의 회원이다. 

다양한 직종에 근무하는 회원들이 저녁이면 연습실로 모여든다. 색소폰 소리가 가득한 연습실은 언제나 신나는 장소다. 언제나 다양한 주제가 등장하고, 새로운 일이 있어 즐겁다. 정기적인 연습은 일요일에 모여 하지만, 언제나 열려있는 동호회 연습실이다. 

여름이면 1박 2일의 합숙훈련을 떠난다. 연습실의 모든 장비가 총동원되는 성대한 행사다. 어느새 색소폰 연주장이 되어 야유회를 나온 사람들과 한 덩어리가 된다. 가끔 열리는 색소폰 경연대회도 빠질 수 없는 즐거움이다.

모든 회원이 출전하여 즐기는 한판의 축제다. 자녀 결혼식 축하연주도 빼놓을 수 없다. 검은 색소폰 가방을 메고 결혼식장에 들어선다. 아는 사람들이 깜짝 놀란다. 언제 색소폰을 배웠느냐 한다. 아들과 딸의 결혼식 축하연주도 당연히 회원들과 했다.

생각하지도 않은 사람이 악기를 들고나와 연주하는 모습, 언제나 엉뚱한 사람이라는 지인들의 말이다. 동호회원들과 함께했던 축하 연주는 지금도 되뇌는 추억의 행사였다. 

최고의 축제는 연말 연주회다. 연말 연주회, 시에서 운영하는 예술의 전당을 이용한다. 모두 참여하는 합주곡이 있고, 솔로와 듀엣 그리고 트리오와 콰르텟으로 구성된다. 일 년 내내 합주 연습을 하고, 개인별 솔로곡을 정해 연습을 한다. 

일 년이 마무리되는 11월 초, 예술의 전당에서 가족음악회가 열린다. 순서를 정하고, 리플릿을 제작한다. 가족과 친지 등 100여 명을 초청하여 합주곡이 연주되고 솔로와 듀엣곡이 연주되면서 그간의 노력이 빛을 발한다.

감히 생각하지도 못했던 악기 연주를 하고 있다. 학교에 다니는 것만으로도 행복해했던 사람이, 생각하지도 못했던 색소폰 연주를 하고 있다. 그것도 예술의 전당에서 연주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음악에 소질도 능력도 없는 사람이 이루어 낸 노력의 대가다. 

어떻게 색소폰을 배웠느냐는 말에 늘 이야기를 한다. 나 같은 사람이 했는데, 누구든지 할 수 있다고. 올해도 11월 4일로 연주회가 예정되어 있다. 음악에 대한 간절한 한이 있었고, 간절함을 풀어보려는 소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색소폰과 회원들이 있어 즐거운 일상, 색소폰 연주와 늙어가는 청춘의 행복한 동행은 오늘도 이어지고 있다. 

태그:#색소폰 연주, #동호회, #여가 선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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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희무렵의 늙어가는 청춘, 준비없는 은퇴 후에 전원에서 취미생활을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글을 쓰고 책을 읽으면서, 가끔 색소폰연주와 수채화를 그리며 다양한 운동으로 몸을 다스리고 있습니다. 세월따라 몸은 늙어가지만 마음은 아직 청춘이고 싶어 '늙어가는 청춘'의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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