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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식당, 콜센터, 병원 등 여러 시설. 우리는 곳곳에서 누군가의 하루를, 그렇게 온 세상을 움직입니다. 우리 노동의 가치가 대접받는 세상을 위해 용기를 내어 말해보는 우리의 일상. 몸도 마음도 다치지 않는 일터를 꿈꾸며 오늘도 출근하는 청년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기자말]
영화 <다음 소희> 장면
 영화 <다음 소희> 장면
ⓒ 트윈플러스파트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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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실화를 기반으로 한 영화 <다음 소희>가 주목을 받고 있다. 이 영화는 열여덟살의 나이로 현장실습을 나가게 된 주인공 소희의 관점에서, '콜센터'라는 일터가 어떠했는지 생생하게 그려냈다. 

코로나19 이후 비대면 업무가 많아지면서 고객응대 서비스에 대한 수요도 증가했고 자연스럽게 콜센터 노동시장은 더욱 커졌다. 부산시 또한 청년유출을 막고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 대규모의 컨택센터를 유치했다. 통계청 전국사업체조사를 기준으로 부산의 콜센터 사업체 수는 81개, 종사하는 노동자는 약 1만 명이다. 수도권 다음으로 많은 콜센터 상담사들이 부산에서 근무하고 있다.

부산의 청년노동자를 조명하는 첫 번째 인터뷰 주인공으로 카드사 콜센터에서 인바운드 상담사로 근무하는 3명의 청년노동자를 지난 2월 초에 만났다. '지금 소희'들에게 콜센터라는 일터는 어떤 모습일까. 

'3/6/9'(개월) 고비의 첫 관문인 3개월을 넘기고 그만둔 아정(25), 7년 콜센터 경력의 숙련된 상담사 지미(30), 6개월 차 상담사 유빈(27)까지(모두 가명). '감정노동'의 틀에 다 담을 수 없는 상담사들의 고충들, 그들이 바라는 변화를 기록한다.

- 다들 어떤 계기로 콜센터 상담사가 되었나요?

유빈 : "대학을 졸업하고 진로를 고민하던 중에 금융 업종에 관심이 생겨서 일을 시작하게 됐어요. 처음엔 고객센터라는 곳에 좋지 않은 인식이 있었는데, 그래도 배워보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일을 시작했어요."

아정 : "앉아서 일하는 게 성미에는 맞지 않지만, 이전에 하던 아르바이트가 문제가 많아 그만두고서 월세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일을 시작했어요. 업무 자체는 금방 익혔고 3개월 차에 완벽 적응이 되었어요. 근데 비전이 없다고 느껴지고 계속해서 늘어나는 추가업무에 지쳐서 퇴사하게 되었어요."

지미 : "대학을 졸업하고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 당시 취업사이트에 상담사 공고밖에 없어서 일을 시작했어요. 이렇게 오래 일할 줄 몰랐는데(웃음). 지금 일하는 센터를 그만둬도 결국엔 또 다른 콜센터에서 일할 거 같아요. 여기 그런 속설이 있거든요. 한 번 이 일을 하면 계속 여기서 돈다는 속설이요."

- 지미씨처럼 근속연수가 긴 동료가 많나요?

지미 : "아니에요. 저만큼 오래 일하는 사람은 거의 드물고, 같이 입사한 동료들은 이제 다 그만뒀어요. 다들 회사가 요구하는 게 점점 많아져서 힘들다고 했어요. 보통 신입이 들어오면 3개월, 6개월, 9개월 고비가 있다고들 말해요. 1년이 지나면 퇴직금을 받을 수 있으니 그때까지 버티고 그만두는 사람도 있고요."

지켜지지 않는 근무시간, 추가되는 업무들

유빈 : "두 달에 한 번은 일을 마치고 업무테스트를 쳐요. 성적이 안 좋으면 한 시간 교육도 들어야 하고요. 그런 '무급교육'을 아침에 10분씩 일찍 출근해서 8시 30분부터 40분까지 쪼개서 듣는 거죠."

아정"정말 이해가 안 됐어요. 20분이나 일찍 의무적으로 출근해서 교육을 들어야 해요. 컴퓨터도 켜고 교육을 들으려면 40분보다 일찍 출근해야 하는 거예요. 돈도 주지 않는 교육을 듣기 위해 의무적으로 일찍 출근을 해야 했어요."

유빈 : "6시 퇴근도 사실상 절대 지켜질 수 없어요. 6시까지 대기(상담사가 '대기'를 누르면 전화가 자동으로 걸려온다. - 기자 말)를 계속 유지해야 해요. 운이 안 좋게 5시 59분 30초에 전화가 걸려오면 퇴근이 자연스럽게 늦어지죠. 담당자 확인을 받아야 하거나, 은행 업무 시간이 되어야 처리 가능한 일들은 내일 오전 재연락을 (하겠다고) 말씀드려도 안 끊으려는 고객을 만나면 참담해져요. 점심시간도 마찬가지예요."

지미 : "1시에 점심시간이 시작인데 12시 59분 59초에 전화가 들어오면 점심시간이 적어도 5분에서 10분 정도 사라진다고 보면 돼요. 이런 날에는 정말 서럽죠. 또 업무에 매일 같이 업데이트되는 내용도 많아요. 새로운 상품이 출시되거나, 새로운 이벤트를 하는 날에는 그걸 다 숙지해야만 상담을 할 수 있으니까 짧은 시간 안에 빠르게 숙지를 해야하죠."

아정 : "저 같은 경우에는 입사 당시 영업(고객에게 상품을 권유하여 신청하도록 하는 것)은 없다고 했는데 근무 시작하고 몇 주가 지나니 영업 업무가 추가되기 시작했어요. 상담을 위해 전화를 준 고객에게 이것저것 추천을 해야 하는거죠. 6시 퇴근도 지켜지지 않았어요. 남아서 콜백(통화예약을 남겨놓은 고객에게 18시 이후 전화를 하는 것)을 해야 했거든요. 일주일 중 하루는 반드시 남아서 콜백을 해야 했고, 다른 날에도 하루에 할당된 콜백을 채워야 집에 갈 수 있었어요. 콜당 인센티브를 주긴 해도 퇴근시간을 보장받고 싶은 저로서는 정말 싫었어요."

지미"저도 '나 같아도 안 하고 싶은 것들'을 고객에게 몇 번이고 제안해야 하는 게 부담스럽고 싫어요. 하지만 우리는 QA평가(녹취된 통화를 들으며 통화품질을 평가하는 시스템)를 받으니까 할 수밖에 없어요. 고객과의 통화를 녹취해서 상담사들이 오안내를 하지 않는지, 매뉴얼대로 인사와 맺음말, 반론 등을 제대로 하는지 주차 별로 평가를 해요. 점수가 낮으면 혼이 나기도 하고 팀에도 손해가 가니까... 스트레스죠."

보호가 아닌 감시의 수단이 된 '녹취'
 
상담사들이 부당한 무급노동과 과도한 영업경쟁에 내몰리지 않게 보호할 수 있도록 새로운 정책적 접근이 필요하다.
 상담사들이 부당한 무급노동과 과도한 영업경쟁에 내몰리지 않게 보호할 수 있도록 새로운 정책적 접근이 필요하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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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화를 녹음하는 건 상담사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함인 줄 알았는데, 아닌가요?

아정 : "우리 상담사를 보호하기 위해 녹음을 한다던데 그 녹음으로 보호를 받아본 기억이 없어요. (웃음) 오히려 감시를 당하는 거죠. 고객이 틀린 말을 하면 바로잡아주고 싶은데 매뉴얼에 없는 멘트이고 또 그러다 보면 콜이 길어지니까 절대 하면 안 돼요. 그 자리에서 메신저로 한 소리 듣거나 QA점수가 감점되니까. 또 통화 도중 전화가 끊기거나 마지막 맺음말 한마디를 안 해도 다시 전화해야 해요. 너무 비효율적이고 때로는 업무가 과다하다는 생각도 들어요."

지미 : "친절한 고객도 정말 많지만 통화 처음부터 소리지르는 고객도 있어요. 아침 9시에 걸려오는 첫 번째 전화가 그런 콜인 날은 정말 죽음이죠. 전화 연결을 오래 기다린 고객의 입장에서 용건만 간단히 빠른 상담을 원한다는 걸 알아요. 하지만 저희는 통화 맨 처음과 끝, 중간중간에 정해져있는 매뉴얼을 꼭 지켜야 해요.

고객이 조금 피곤함을 느끼는 걸 알아도 반드시 매뉴얼을 지켜야 해요. 매뉴얼을 지키지 않으면 감점을 당하고 관리자에게 혼나고, 또 퇴근도 늦어지죠. 저는 직업병이 생겼어요. 다른 콜센터에 전화할 때 '수고하십니다'로 시작하거나 엄청 많이 기다렸지만 절대 짜증내지 않는 것요.(웃음)"

유빈 : "필수안내가 엄청 많아요. 필수안내를 다 안 하면 감점당하죠. 인사말, 마무리 말, 오안내, 고객의 말에 호응을 안 해도 감점이고, 말이 겹쳐도 감점. QA평가된 결과를 받아보면 사유도 다 적혀있어요. 감점요인에 말투, 반말, 예의 없는 말투, 격식 없는 말투 이렇게요. 업무 내용도 많고, 고객의 말을 이해하는 것도 어려운데 지켜야 할 것도 많아요."

숨 막히는 실적·영업경쟁

- 아무래도 감정노동이다 보니 고객으로부터 받는 스트레스가 가장 심할 거 같은데 어떤가요?

지미 : "저는 목이 아픈데도 쉬지 못할 때 가장 힘들어요. 전산처리를 하기 위해 잠시 전화가 걸려오지 않도록 하는 버튼을 오래 눌러두면 모든 관리자가 전화를 다시 받으라고 소리를 질러요. 우리 팀이나 회사 실적이 저조한 날에는 상담사별 후처리 시간(통화 사이에 상담내용을 기록하고 고객요청사항을 전산에 입력하는 10초가량의 시간)과 휴식시간 등도 단체 메신저에 공유해요. 후처리랑 휴식시간이 많은 상담사들은 이 시간을 줄이고 콜을 더 많이 받으라는 압박인 거죠."

유빈 : "저희 회사는 실적에 따라 팀별로 쓸 수 있는 연차 개수가 정해져 있어요. 그 정해져 있는 연차를 팀원들과 상의해서 나누어 써야 하는데, 신입사원이라 실적이 없는 2개월 동안은 모든 사람이 선택하고 남은 날에 쉬어야 했어요. 만약 20명인 팀에 한 달 연차가 6일 배당되면 6명만 쉴 수 있는 거예요. 나머지 14명이 양보를 하거나 서로 양해를 구해야 하는 이상한 시스템이에요."

아정 : "팀 실적에 영향을 주니까 연차 쓸 때마다 눈치봐야 하는 것도 힘들었고, 통화량 때문에 절대 연차를 쓸 수 없는 날 같은 것도 정해져 있어서 불편했어요. 팀에서 영업실적이 부진한 사람들은 따로 또 단체 방을 만들어서 혼나기도 하고... 또 별도로 쉬는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으니까 중간에 화장실에 갈 때는 팀 단체 메신저에 화장실을 간다고 올려야 해요. 초등학생도 아니고... 많이 불편했어요."

지미 : "맞아요. 이러다 방광염이 걸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팀원 중 1명이 화장실에 간다고 단체 방에 올리면 나머지는 그 사람이 복귀할 때까지 이석(자리를 비우는 것)할 수 없어요. 그 상담사가 복귀하더라도 내가 또 통화 중이면 갈 수가 없죠."

임금 인상 비롯해 기본적인 권리 보장 필요해

- 상담사들에게 무엇이 필요한가요?

지미 : "한 달에 한 번은 조기퇴근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가끔 실적이 높으면 30분 또는 1시간, 많게는 2시간까지 조기퇴근을 할 수 있는데 일찍 퇴근하면 그렇게 기분이 좋더라고요. 목도 안 아프고.

또 기본급 자체가 올랐으면 좋겠어요. 해야 하는 업무가 정말 많은데 그 전문성과 업무 강도에 비해 급여가 적어요. 10만 원이라도 오르면 정말 기분 좋을 거 같은데요. 전문 선생님이 해주는 마음상담을 받은 적이 있어요. 한 번 해봤는데 좋았어요. 선생님과의 상담도 좋지만 또래 상담사들과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감정노동자들을 위한 센터라던지, 쉼터 같은 게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어요. 친목도모하고, 저는 야구 좋아하는데 같이 야구도 보러 가면 재밌겠어요."

아정 : "돈!이요.(웃음) 교통비든 식비든 지원해주면 좋을 거 같아요. 어릴 때 집안형편이 좋지 않아서 정부에서 식비 지원 쿠폰을 줬었는데, 그런 쿠폰을 청년들에게 줘도 좋을 거 같고요." 

유빈"야근을 하거나 아침에 일찍 출근하는 건 다 수당으로 계산해서 주면 좋겠어요. 정당하게 일을 한 대가이니까요. 또 복지도 신경 써줬으면 좋겠어요. 중식비를 지원해준다거나 여성은 생리휴가, 남성은 예비군 다음 날 유급휴가 같은 걸 보장해주면 어떨까 생각해본 적 있어요."

부산시가 지난 2월 27일 감정노동자 노동환경 개선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노동자 휴게시설 설치 또는 개·보수, 휴게시설 내 비품과 녹음장비 등 감정노동자 보호 물품 구매에 드는 비용 일부 등을 지원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인터뷰를 진행하고 부산시의 소식을 접하니 씁쓸하다. 상담사들이 이미 존재하는 휴게시설을 사용할 시간도, 마음의 여유도 없는 조건에서 얼마나 실효성 있는 지원정책이 될지 우려스럽기 때문이다. 상담사들이 부당한 무급노동과 과도한 영업경쟁에 내몰리지 않게 보호할 수 있도록 새로운 정책적 접근이 필요하다.

태그:#부산, #부산청년, #청년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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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열심히 살고 있는 청년입니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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