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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다리 거점공간 '작공'의 아이들 (사진제공 : 작공)
 징검다리 거점공간 '작공'의 아이들 (사진제공 : 작공)
ⓒ 은평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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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이가 아침부터 슬리퍼를 신고 왔어요. 새벽부터 짜장면이 너무 먹고 싶었다면서요. 그래서 얘기했죠. '너희들 밥 먹이라고 돈을 보내주셨어, 맛있게 먹자'고요."

작공의 장보성 선생님은 짜장면 값을 지불하고 받은 영수증 뒤에 이렇게 기록했다. 

'아침부터 슬리퍼 신고 온 OO에게 새벽부터 먹고 싶어 하던 짜장면을 사주다.'

작공 위기 소식에 쏟아진 따뜻한 후원

지난 2월 10일, 위기청소년들의 버팀목이 되어 주고 있는 서울 은평구 대안교육기관 '작공' 운영에 빨간불이 켜졌다는 <은평시민신문> 보도가 나간 후 "응원한다", "후원하고 싶다"는 연락이 이어졌다. 그야말로 전화통에 불이 났다는 표현이 딱 맞았다. 다른 업무를 볼 수 없을 정도였다. (관련 기사: "밥 적게 먹을게요, 문 닫지 마요" 학교밖 청소년들의 호소 https://omn.kr/22pqq)

전화를 걸어온 시민들은 본인을 밝히는 것도 꺼려하면서 통장에 후원금을 보내왔다. 2천 원, 5천 원, 1만 원, 2만 원. 그야말로 평범한 이웃들의 따뜻한 손길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기사를 보고 내가 너무 마음이 아프다. 내 나이 70이 넘었는데 우리 때야 밥 못 먹는 게 당연했는데 지금 시대에 이렇다니 너무 속상하다. 얼마 안 되는 돈이지만 후원 계좌를 알려 달라."

"장애아를 키우고 있는 엄마예요. 후원하고 싶은데 그럴 여유는 안 되는데 그래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으니 서울시나 교육청에 항의 전화를 하면 도움이 될까요?"

"마음처럼 거금을 후원할 수 없는 내가 참 뭐 하고 살았나 싶어요. 제가 잘하는 건 반찬 만드는 건데 뭘 좀 만들어 주면 아이들이 좋아할까요?"


장보성 선생님은 "기사가 나간 이후 일주일 정도는 빗발치는 전화에 정말 잠도 안 오고 거의 각성 상태였다"고 전했다. 얼굴을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보내주는 그 따뜻함에 흠뻑 취한 시간이었다. 이름도, 연락처도 남기지 않은 작은 후원이 이어졌다. 
 
'함께 도생, 작공 살리기 프로젝트' 홍보물 (사진 : 정민구 기자)
 '함께 도생, 작공 살리기 프로젝트' 홍보물 (사진 : 정민구 기자)
ⓒ 은평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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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공을 응원한다는 전화와 방문도 이어졌다. 한 청년은 "어려운 상황에서 작공을 지키려고 하는 이들이 있다는 데서 오히려 힘을 받는다"며 응원을 보냈다. 한 회사의 대표는 "자식 둘을 키워보니 정말 자기인생의 주인이 되려면 스물세 살은 돼야 되더라. 세상이 뭐라고 해도 마음의 결핍이 많은 아이는 후기 청소년 시기까지 지원해야 된다. 후원할 수 있도록 주변에 전하겠다"며 마음을 전했다. 이 외에도 직원을 데리고 방문한 회사 대표, 도울 방법을 찾아보겠다는 따뜻한 응원이 이어졌다.  

후원금 이외에도 아이들이 먹을 수 있는 쌀이며 김치며 과일 등의 후원도 이어졌다. 어느 회사의 대표님은 완제품을 지원하기는 어렵지만 식재료는 보내줄 수 있다며 고구마, 알배추, 브로콜리, 김 등을 보내왔다. 작공 식구들은 온갖 고구마 요리를 다 해 먹고 아이들에게도 식재료를 나눠 주었다. 

"보내주신 식재료로 열심히 밥은 해 먹었어요. 근데 돈은 10원도 못 쓰겠더라고요. 아이들이 알바비 받았다며 음료수 산다고 하면 그렇게 힘들게 번 돈을 왜 쓰냐고 했는데, 딱 그런 심정인 거죠."

작공 교사들은 귀한 돈을 어떻게 써야 할지 막막해서 10원도 못 쓰고 있었다고 한다. 마침 한 아이가 새벽부터 짜장면이 너무 먹고 싶었다는 이야기를 전했고 어른들이 보내주신 후원금 기쁘게 쓰자며 첫 지출을 했다. 
   
오랜 시간 작공의 탄생과 성장을 지켜본 지역주민들의 따뜻한 후원도 이어졌다. 첫 물꼬를 튼 건 은평학부모네트워크다. 수년간 모아 온 후원금 전액을 흔쾌히 후원하고 나섰다.

주민 A씨도 "수술하고 받은 보험금이 있다, 내 생애 이렇게 기부할 수 있는 순간이 있어 기쁘다"며 선뜻 후원금을 내놓았다. 주민 B씨도 "작공에 대해 잘 몰랐던 거 같다, 주머니에 구멍 나지 않을 정도로만 후원하겠다"며 후원에 나섰다.

이외에도 자신을 밝히지 않으면서 선뜻 꽤 큰 금액을 후원하며 나선 시민들의 따뜻한 기부가 이어졌다. 때로는 너무 많은 금액이라며 반만 받겠다며 후원자와 한참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시민들의 따뜻한 후원, 아이들에게 큰 힘
  
작공 친구들이 전하는 '나에게 작공이란?' (사진 : 정민구 기자)
 작공 친구들이 전하는 '나에게 작공이란?' (사진 : 정민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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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의 따뜻한 후원이 이어진 이유는 무엇일까? 자신의 삶의 조건을 선택하지 못했던 아이들, 고난도의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아이들의 이야기에 이렇게 큰 호응을 보내는 이유가 궁금해진다. 

"이렇게 반향이 클 줄 몰랐는데 어떤 지점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걸까 생각해 봤어요. 집에 가서 냉장고를 열면 먹을 게 있고 식탁에 밥이 있는 그런 가족이 없는 아이들에게 쏟아진 응원은 무얼 의미하는 걸까요?"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따뜻한 기부를 이어간 걸까, 장보성 선생님은 몇 번이고 생각해 봤다고 한다. 

"각자도생이 아닌 함께도생을 사람들이 경험하고 싶어 했다는 걸 느꼈어요. 이 세상의 풍조에 절망하고 있었고 우리가 모이면, 마음을 하나로 하면 우리가 원치 않는 세상의 흐름을 역류시킬 수 있다, 우리가 만들고 싶은 세상을 함께 모이면 만들어 갈 수 있다는 걸 확인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작공은 쏟아지는 후원의 의미를 '함께도생'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있다. 

"아이들과 밥을 먹으면서 이건 어떤 분이 보내주셨어. 또 이건 어떤 분이 보내주셨다고 말했어요. 아이들에게 우리가 이렇게 응원받고 있어. 우리가 잘 성장하기를 바라는 많은 분이 마음을 보내고 있어. 우리는 이런 사랑을 받고 있다."

장보성 선생님은 "시민들의 따뜻한 후원이 아이들에게 큰 힘이 되고 있다"며 "한 편으로는 생각지도 못했던 시민들의 후원에 어떻게 해야 후원금을 더 잘 쓸 수 있을지, 작공 운영을 더 잘할 수 있을지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고 전한다. 
 
꿈꾸는 합창단이 작공을 응원하는 공연을 하고 있다 (사진 : 정민구 기자)
 꿈꾸는 합창단이 작공을 응원하는 공연을 하고 있다 (사진 : 정민구 기자)
ⓒ 은평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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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도 연락처도 남기지 않은 시민들이 많아 일일이 보고 할 수는 없지만 이제 이런 기도 같은 걸 하게 된 거 같아요. 당신들이 보내주신 귀한 돈은 이렇게 마음이 허기진 아이들을 위해 쓰고 있다고요."

시민들의 응원과 후원으로 작공은 다시 위기청소년들을 지원할 힘을 얻게 됐다. 하지만 일시적으로 위기를 넘겼을 뿐 근본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고민은 새롭게 시작됐다. 

"선량한 시민들의 구멍 난 주머니에만 의존해서 유지할 수는 없고 탄탄한 재정 기반을 만들기 위한 고민을 시작해야죠. 행정이 좀 더 의지를 내서 자율성도 부여하고 유연하게 사회적 현안들을 품어줬으면 좋겠어요. 작공도 정책에 휘청거리지 않고 즐겁게 아이들을 지원할 수 있도록 더 노력하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은평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작공, #후원, #대안교육기관, #은평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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