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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바람처럼 살랑~~
내 가슴을 또 흔드는 사람
언제나 나에게 그대는 봄이야
이문세 <봄바람>


아침 라디오에서 살랑거리는 노래에 몸을 싣고 출근하니, 봄은 나보다 먼저 도착해 교정을 이미 봄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주차장 입구에 선 오랜 목련나무가 어제와 다른 진주빛을 발하고 있다. 아기처럼 보송하기만 할 것 같던 봉오리가 어느새 환하게 열려 주렁주렁 목련 꽃잎을 태우고 있다. 평생 봐도 새롭기만 한 3월의 목련을 여지없이 카메라에 담는다. 꽃잎이 열리고, 봄이 오고 있음을 실감한다.
 
3월, 목련이 피는 동안 아이들도 내 마음에서 피어난다.
▲ 3월, 교정의 목련은 더 예쁘다. 3월, 목련이 피는 동안 아이들도 내 마음에서 피어난다.
ⓒ 한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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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목련은 학교의 그 무엇과도 잘 어울린다. 재잘거리는 왁자한 아이들의 소리도 영롱한 진주빛을 어찌하지 못한다. 2층 교실 창문을 열면 목련꽃들이 너도나도 예쁘다 얼굴을 빼꼼히 드러내니, 교실 창문 테두리 안의 그림으로 이보다 감동적인 게 또 있을까 싶다. 운동장 끄트머리에서 바라보다 시선을 툭 떨궈내도 점점이 보이는 꽃송이가 그렇게 향기로울 수 없다. 
  
3월의 아이들은 목련꽃과 같이 온다. 이름도, 얼굴도, 새로운, 봉오리 같은 아이들은 하루하루 피어나 만개한 목련이 된다. 목련이 활짝 필 때쯤이면, 낯선 아이들이 이름을 달고 각자의 얼굴을 드러낸다. 내게로 와 꽃이 되는 시간이다. 목련 꽃 피는 시간만큼! 진주빛 절정을 지나 견뎌내야 할 낙화의 시간이 올지라도 지금은 좋다. 짓이겨진 꽃잎의 처참함으로 얼룩진 학교의 생활이 기다리고 있을지라도 아무튼 지금은 설렌다.

너희처럼 예쁜 목련이 피었다고 하니 아이들이 소리를 지른다. 너희 얼굴이 꽃이어서 다른 꽃에는 관심이 없는 거야? 하니 목련에 시큰둥하던 아이들이 썰렁하다며 호들갑을 떤다. 

올해는 2009년생을 맞이해 학급담임이 됐다. 교사 정원을 줄이는 바람에 담임이 부족해 부득이하게 학년부장과 담임을 겸하게 됐다. 어찌해서라도 담임의 업무를 피해보려 애썼으나 쉽지 않았다. 여러 차례 회의에 참석해 협의했으나 학교사정 상 해결 방법이 나오지 않아, 내게는 요령부득한 일이 되고 말았다.

과중한 담임 업무에 대한 부담감과 엄청난 세대차이 끝에 있는 나와 2009년생 아이들의 거리를 걱정하며 시작한 올해의 담임이다. 3월 첫날, 동글동글한 아이들의 눈이 마스크 위에서 분주하게 움직인다. 어느 선생님이 우리 담임이 될까? 어제까지 궁금했던 최대의 관심사가 풀리는 순간일 것이다. 사실 아이들만 그런 것은 아니다. 교사들도 어떤 아이들이 나의 반이 될 것인가? 궁금해하고 설레며 3월, 첫날을 맞이하기는 아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해에 가르치던 아이들을 다시 만나기도 하고, 전혀 모르는 새로운 아이들을 만나기도 하는데 각각 장단점이 있다. 이미 친숙(이름, 성격까지도)한 아이들과 시작할 수 있다는 게 전자의 장점이라면, 서로 모르는 사이에서 작년의 이미지를 벗을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후자의 큰 장점이다. 지각쟁이, 졸음쟁이, 실수쟁이 등등이 짜잔~~ 건강하게 변신할 수도 있고, 교사는 학생에 대한 선입견 없이 자유로운 시선으로 아이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기특하게도 우리 반 아이들은 이 시간을 잘 활용하고 있다. 일명 이미지 세탁 기간! 성공률이 그다지 높지 않은 매우 짧은 시간이라 해도 그 시도가 대견하고 예쁘다. 상습 지각꾼이 일찍 등교하려 애쓰고, 수업시간에 졸지 않으려 모둠원들과 큰소리로 의견을 나누는 모습을 보면 애써 모른 척 웃어 준다. 다른 친구들에게는 일상인 일(등교하는 일, 교실에 들어가는 일 등)이 어려운 친구도 있지만 욕심내지 않고 더디지만 발을 떼어 보려 한다.

교사의 꽃은 담임이라 했던가! 첫날부터 아이들이 주는 자잘한 기쁨에 천상 교사인 것처럼 기분이 좋아진다. 복도 끝에서 들리던 '우리 선생님이다'라는 말에 입꼬리가 올라간다. 반가운 얼굴로 인사한 아이들의 말이 뭐라고 이리 들뜨는가! 우리 반, 우리 아이들이라는 담임만이 가지는 소속감에 든든한 울타리를 느낀다.
 
아이들이 잘 해 보자고 메시지를 보내준다. 감사함으로 내 마음에 저장!
▲ 이렇게 맞이해 줘서 정말 고맙다. 아이들이 잘 해 보자고 메시지를 보내준다. 감사함으로 내 마음에 저장!
ⓒ 한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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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폴더를 열어 담임으로서의 자잘한 일들을 하나하나 수행한다. 좌석표와 청소담당표를 정리하고, 사물함과 책상 이름표를 만들고, 명렬표와 자기소개서를 통해 아이들 이름을 익혀간다. 예쁘고 고운 이름들이 가득하다. 시간표와 아이들의 생일을 큰 사이즈로 컬러 인쇄해 게시판에 붙여 놓으니 썰렁한 교실이 좀 나아진다. 칠판에 붙일 오늘의 반장 이름표도 인쇄한다.

담임으로서 오랜 학급 운영을 하는 동안, 가장 큰 긍정적 효과를 얻은 것이 '오늘의 반장' 활동이다. 아이들의 호응도 최고에 이른다. 물론 선거공약을 내걸고 학교 규정에 의해 당선된 학급 회장·부회장이 엄연히 있지만, 오늘의 반장은 우리 반 누구나 할 수 있는 하루의 반장이다. 일단 조·종례 시 인사를 주도하고, 그날 필요한 가정통신문과 전달 사항을 챙긴다. 한 달에 한 번씩 우리 반 리더로서 반 친구들에게 도움을 주며 리더십을 챙길 수 있는 좋은 활동이다. 올해 아이들도 자기의 차례를 은근히 기다리는 눈치다. 귀여운 녀석들!

오늘 아침 목련은 또 다른 모습으로 활짝 피어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교실에 들어서니 꽃보다 환한 아이들이 인사를 한다. 아침마다 이리 반겨주는 이가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교권침해라는 단어로 볼썽사나운 교실의 모습이 뉴스에 자주 오르내리는 때에, 교사를 향한 꽃같은 눈빛을 느낄 수 있음이 그저 고마울 뿐이다. 

이 환하고 어여쁜 얼굴들이 아주 많이 웃었으면 좋겠다. 참고 이겨내 알토란 같은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나와 함께 2023년을 잘 걸어가길 바란다. 가는 길에 돌부리에 넘어져 채이기도 할 것이고, 땀 흘려 뜀박질로 앞을 향해 달려가기도 할 것이다. 

나와 손잡고 한 해 내내 웃으며 걷는 아이도 있을 것이고, 가던 길을 되돌아 돌멩이를 걷어차며 나를 힘들게 하는 아이도 있을 것이다. 넘어져 아픈 생채기에 울고 좌절하는 아이, 순간의 실수로 반 아이들에게 돌멩이를 던지는 아이, 욕심과 이기심으로 스스로를 멍들게 하는 아이, 아이의 근심이 너무 커 나와 함께 우는 아이...

그렇다 하더라도, 지금은 모두 꽃이다. 어여쁜 진주빛 목련 꽃송이들이다. 

3월의 아이들이 잘 자라 12월 따스한 겨울을 맞이할 수 있기를, 자기 인생의 버팀목을 마련할 귀한 시간을 만들 수 있기를 바라고 바라고 또 바라는 마음이다. 

봄바람처럼 살랑~~
내 가슴을 또 흔드는 사람
언제나 나에게 그대는 봄이야


다시 노래를 흥얼거리며 언제나 나에게 3월의 아이들은 봄이길... 아니, 이미 너희들은 나에게 봄이야! 

3월의 학교에 모처럼(3년 만에) 봄이 완연하다. 

태그:#3월, #새학년, #목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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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 국어 교사, 다음 '브런치' 작가로 활동 중, 가족여행, 반려견, 학교 이야기 짓기를 좋아합니다. <엄마를 잃어버리고>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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