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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 선생과 형 온계 선생이 죽령에서 만나 술과 음식으로 정을 나눴다고 전해진다
▲ 퇴계 선생과 온계 선생의 형제애 퇴계 선생과 형 온계 선생이 죽령에서 만나 술과 음식으로 정을 나눴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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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단체를 통해 환경오염의 심각함을 배우게 되었다. 거창한 일은 여러가지 이유로 하기 어려우니 작은 실천을 해보기로 결심했다. 걷기다. 가급적 차를 타지 않고 좀 일찍 나선다. 생활 속에서 탄소 발자국 줄이기에 동참하고 있다.

그렇게 시작한 걷기가 소문난 길부터 이름 모를 마을 어귀까지 움직이게 한다. 지난 26일에는 죽령 옛길을 걸었다. 충북 단양군 대강면 용부원리와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 수철리를 잇는 해발 689m의 고개, 죽령을 걸어 오른다.

죽령옛길을 따라갔다

죽령은 문경의 새재, 영동의 추풍령과 함께 영남대로의 3대 관문이다. <삼국사기>에 "아달라왕 5년(158) 3월에 비로소 죽령길이 열리다"라는 기록에서 '죽령'이라는 지명이 처음 나타난다.

아달라왕 5년에 죽죽(竹竹)이 죽령길을 개척하고 지쳐서 순사(殉死)했고, 고갯마루에는 죽죽을 제사하는 사당(竹竹祠)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죽령은 삼국시대 고구려와 신라의 격전지다.

영주시는 2천년 동안 영남 내륙을 잇는 이 길을 1999년 5월 복원했다. 명승 제30호 '죽령옛길'. 이름만 들어도 아득한 세월의 흐름이 느껴진다. 지금은 운영하지 않는 희방사역이 출발점이다. 녹슨 철로 옆길을 걷는다. 역사 주변으로 열차를 개조한 카라반과 매점, 시골다방이 정겹다.

수철리는 무쇠달 마을이다. 신라 선덕여왕 12년(643)에 두운대사가 세운 희방사 창건 설화를 통해 전해온 지명이다. 희방사역을 벗어나자 오솔길이 반겨준다. 양지 바른 곳의 묘소는 선비의 고장 영주답게 후손들이 잘 관리했다. 파릇파릇 올라오는 잡초가 흙길을 선명하게 한다. 산기슭 바람에 옷깃을 여민다.
 
생강나무꽃이라고 불린다. 야산에서 산수유나무꽃과 함께 가장 일찍 노란꽃을 피우는 것으로 알려졌다
▲ 동박나무꽃 생강나무꽃이라고 불린다. 야산에서 산수유나무꽃과 함께 가장 일찍 노란꽃을 피우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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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짝 핀 동박나무 꽃이 바람을 잠재운다. 따뜻한 봄볕이 노란 꽃을 불태운다. 사유지를 알리는 표지판과 함께 사과밭이 펼쳐진다. 가지치기가 한창인지 길목마다 나뭇가지가 쌓여있다.

해어진 야자수매트는 많은 사람이 오갔음을 짐작하게 한다. 쌓인 낙엽으로 길이 푹신푹신하다. 사과밭을 지나자 한적한 산길이 호랑이 담배피우던 그 시절로 초대한다. 선비들의 발자취를 따라 걷는다. 봇짐 속 서책이 마음의 짐이 되었을 것이다. 장원급제를 꿈꿨을 그들의 간절함이 다가온다.

돌담으로 둘러쌓인 주막거리 터가 나타났다. 많은 선비와 보부상들이 넘나들던 길이니 규모가 크다. 길손들의 숙식을 위한 객점과 마방이 있었을 곳이다. 장난삼아 "주모!" 크게 한번 불러보고 배낭에서 물을 꺼내 마신다.

정상까지 1시간 30분이면 되는데... 반나절이 걸렸다

죽령 옛길은 역사·문화·생태 교육장이다. 안내판을 읽느라 걸음이 더디다. 상원사 동종과 죽령의 산신 다자구할머니의 설화는 흥미롭다.

상원사 동종 이야기는 대충 이렇다. 조선 7대 임금 세조가 오대산 상원사를 왕실수호사찰로 정하고 그곳에 설치할 종을 찾던 중 안동 남문루의 종이 으뜸으로 뽑혀 상원사로 옮기게 되었다. 그런데 죽령에 다다르자 갑자기 종이 구슬픈 소리를 내더니 종을 실은 수레가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종 운반 책임자인 운종도감의 꿈에 산신령이 나타나 "신령한 신라 종이 옛고향을 잊지 못함이니 종의 유두 하나를 떼내어 그의 고향인 안동으로 보내라"고 하였다. 운종도감이 종의 유두를 하나 떼어 안동 남문루 아래 묻고 제사를 지내니 종이 소리를 멈추고 수레가 움직였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상원사 동종의 유두가 하나 없다고 한다.

죽령 일대에는 다양한 동식물이 산다. 청설모와 다람쥐, 일본잎갈나무, 송곳니 고라니 뿔 달린 노루. 살아있는 초록 융단 이끼, 죽령의 터줏대감 쇠박새·진박새·박새 이야기를 읽으며 이 길은 보물급이라고 추앙한다.

단양군 가곡면 새밭에서 비로봉을 오르는 깔딱고개에서 만난 조류가 박새였음을 알았다. 밥을 먹을때면 좀 달라는 듯 기웃거리던 작은 새다. 밥알을 떼어 놓으면 순식간에 집어 삼키고 날아가던 녀석. 먹는 그 모습이 신기하고 재미있어 두세번 주다보니 떼로 몰려와서 난처했던 기억이 났다.

조선시대 단양군수를 지낸 퇴계 이황 선생과 그 형님의 이야기도 있다. 퇴계는 온계 이해 선생이 고향 안동을 오갈 때 이곳 죽령에서 술과 안주를 마련하여 대접했다. 형제애는 오랜 시간이 지나도 애틋하게 다가온다.

경사없이 편안한 숲길이 도착지를 앞두고 가파르다. '죽령루' 현판이 파노라마처럼 다가온다. 정자에 올라서 내려다 보니 흘러간 시간이 낙엽과 함께 땅속으로 묻힌다. 죽령 정상까지 3.4km. 1시간 30분이면 오를 줄 알았는데 숲길이 들려주는 다양한 이야기에 반나절을 보냈다. 그래도 시간이 아깝지 않다. 죽령옛길의 역사, 문화적 가치를 배웠으니까. 선조들의 발자취와 숨결도 고스란히 느꼈다.

편의시설과 안내판을 통해 역사와 문화를 후손들에게 알리려는 소백산국립공원사무소의 정성이 돋보이는 명품길이었다.
 
국립공원공단 소백산사무소는 죽령옛길 곳곳에 역사, 문화, 생태 공부가 가능하도록 다양한 표지판을 만들어놨다.
▲ 죽령옛길 표지판 국립공원공단 소백산사무소는 죽령옛길 곳곳에 역사, 문화, 생태 공부가 가능하도록 다양한 표지판을 만들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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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제천단양뉴스(http://www.jdnews.kr/)에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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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제천단양뉴스, #이보환, #걷기, #죽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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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권 신문에서 25년 정도 근무했습니다. 2020년 12월부터 인터넷신문 '제천단양뉴스'를 운영합니다. 지역의 사랑방 역할을 다짐합니다. 언론-시민사회-의회가 함께 지역자치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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