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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난 '시력 금수저'였다. 주변에서 안경이냐 렌즈냐 고민할 때도, 라식수술을 하느냐 마느냐 고민할 때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딱 한 번 시력 저하를 겪은 적이 있었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고입 시험을 준비하며 학교에서 매일 9시까지 야간자율학습을 하던 1997년, 갑자기 칠판 글씨가 흐리게 보이기 시작했다. 눈을 찌푸리면 선명했지만 눈이 조금만 피로해져도 흐릿한 글자가 여러 겹으로 보였고 그럴수록 더욱 눈이 피로해지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이상함을 느끼고 안경점에 갔을 땐 이미 시력이 떨어진 뒤였다. 한쪽 눈은 0.6, 반대쪽 눈은 0.7. 생애 처음으로 안경을 맞췄다. 거울 속에 보이는 낯선 모습이 싫지 않았다. 그러나 곧 내가 고른 안경테가 동그란 얼굴을 더 동그랗게 만드는 안경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외모에 한창 신경을 쓰던 중3이었기에 교실 안에서만 제한적으로 안경을 쓰기로 했다. 결론적으로 고등학생이 되어 시력이 회복되었고 안경은 쓸모가 없어졌다. 이후로는 시력검사에서 양안 1.2 정도의 수치가 꾸준히 유지됐다. 해피엔딩이 될 줄 알았다.

주변의 부러움을 받으며 시력에 자신감을 갖고 살았는데 마흔에 접어들며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가령 활명수나 쌍화탕 병에 적인 깨알 같은 글자는 아무리 가까이에서 들여다봐도 제대로 읽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다 일정 거리 내에서 책이나 휴대폰 화면을 보기가 점점 힘들어졌다.

그제야 깨달음이 찾아왔다. '이것이 바로 노안이구나.' 손에 들고 있는 것의 글자가 안 보여 팔을 앞으로 쭉 내밀던 언니가 떠올랐다. 웃으며 놀려대곤 했는데 이제는 내가 놀림당할 차례였다. 남편이 자신의 휴대폰을 내 눈앞에 들이미는 순간이었다. 초점을 맞추려고 자연스럽게 고개를 뒤로 쭉 뺐는데 이어지는 남편의 폭소에 현타가 왔다.

심각하게 안경점까지 방문했다. 여러 검사 후 아직은 안경을 쓰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조언을 듣기 전까지 남몰래 긴장했다. 아직은 아니지만 콧등에 돋보기 걸칠 날이 머지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때가 되면 눈가에 자글자글 주름이 깊어질 테고 머리에도 희끗희끗 서리가 내릴 것이다.

'돈을 잃으면 조금 잃는 것이고, 명예를 잃으면 많이 잃는 것이며,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한국인의 기대 수명을 생각하면 이제 인생의 절반을 걸어온 셈이다. 기대 수명을 채운다고 가정하면 지금까지 살아온 만큼의 시간이 다시 내게 주어질 것이다.

건강할 때 아끼지 않고 흔들리는 차 안에서 책을 읽던 일, 불 꺼진 어두운 방에서 휴대폰을 보던 일, 땡볕 아래서 모자나 선글라스를 착용하지 않은 일들이 마음에 걸린다. 이제부터라도 타고난 눈을 잘 관리하여 남들의 도움 없이 바늘에 실을 척척 꿸 수 있는 당당한 할머니가 되고 싶다.

덧붙이는 글 | 주간지 [서산시대] 동시기고합니다.


태그:#노안, #불혹, #시력, #안경, #수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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