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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회에서 세월호 추모 주간을 설정하고 교정 곳곳에 노란 바람개비를 세워놓았다.
 학생회에서 세월호 추모 주간을 설정하고 교정 곳곳에 노란 바람개비를 세워놓았다.
ⓒ 서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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낼모레 16일이면 세월호 참사가 있은 지 9주기다. 무심히 흐르는 세월은 쏜살같고, 우리의 기억은 쏜살보다 더 빨리 망각이라는 표적에 꽂혔다. 당시 황망한 마음을 추스르며 기억하겠다고, 잊지 않겠다고, 행동하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건만, 따사로운 봄날 아침의 안개처럼 가뭇없이 사라져버렸다.

지난 월요일(10일) 학교 교문에는 노란 현수막이 내걸렸다. 참사 1주기에 만든 거라 빛이 바랠 법도 하건만, 우리의 꺾여버린 마음과 달리 여전히 샛노랗다. 잊지 않겠다는, 함께하겠다는 검은색 글씨가 선명해도, 등하굣길 눈길을 주는 아이들은 드물다. 하긴 손가락으로 헤아려보니 참사 당시 철모르는 유치원생이었을 나이다.

2014년 그해 봄과 9년이 지난 2023년 올해의 봄. 우리나라는, 우리 지역사회는, 아니 우리 학교 공동체는 얼마나 안전해지고 얼마나 건강해졌는지 자문해보게 된다. 달팽이 꼬물대는 듯한 느린 변화일지언정 우리는 과연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두 차례나 정권이 교체됐고 그때마다 개혁을 부르댔지만, 늘 말 잔치로 끝났다.

서류로만 완성된 안전한 사회
 
인근의 중학교 아이들도 함께하고 싶다며 이심전심 힘을 보탰다.
 인근의 중학교 아이들도 함께하고 싶다며 이심전심 힘을 보탰다.
ⓒ 서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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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한 사회는 '서류'로만 완성되었다. 안전을 위한 학교 현장의 천편일률적 대응이 그 실례다. 참사가 터진 뒤 3년여 동안 학교마다 수학여행을 비롯한 단체 체험활동이 중단됐다. 학교 울타리를 벗어나 진행되는 교육 활동은 일절 멈춰 섰고, 하다못해 학급이나 동아리의 소규모 단체활동도 통제됐다.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법, 우리의 안전 교육은 늘 이런 식이었고, 지금도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서류'로 증명되는 관행적인 교육이 아이들의 안전에 대한 의식을 제고시킬 리 만무하다. 숱한 참사가 이어지는데도 안전사고는 아이들의 의식 속에서조차 '운'의 영역이 됐다. 숫제 나만 아니면 된다는 식이다.

'사후약방문'도 못 되는 천박한 인식 속에 304명의 생떼 같은 목숨은 헛된 희생이 되고 말았다. 지난해 10월 29일,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한복판에서 159명이나 되는 젊은이들이 압사한 이태원 참사 사고는 그 뼈아픈 사실을 증명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정부는 책임자 처벌은커녕 별다른 대책도 마련하지 않고 '세월이 약'이라는 듯 뒷짐만 지고 있다.

와중에도 죽음의 행렬은 끝이 없다. 하루에 예닐곱 명, 한 해 2천 명이 넘는 노동자가 일터에서 산업재해로 죽어가고 있다. OECD 국가 중 우리보다 산업재해 사망률이 높은 나라는 멕시코와 튀르키예뿐이다. 학교 앞 스쿨존에서의 어처구니없는 어린이 사망 사고 또한 끊이지 않는다. 이럴진대 1인당 GDP 몇 만 달러 운운하는 것 자체가 민망하다.

무능하고 무책임한 정부에 시나브로 길들어진 탓일까. 이젠 우리 국민도 한 번에 수십 명의 죽음 정도는 별 트라우마 없이 눙쳐낼 수 있는 집단적 '맷집'이 생긴 듯하다. 언제부턴가 '예상된 인재'니 '안전불감증'이니 하는 말들이 사람들에게 더는 안타까움조차 주지 못하는 상투어가 되고 말았다.

부박한 세태를 향한 분노가 절실하다
 
잊지 않겠다고, 행동하겠다고 다짐하며 아이들도 팔목에 노란 고무링을 찼다.
 잊지 않겠다고, 행동하겠다고 다짐하며 아이들도 팔목에 노란 고무링을 찼다.
ⓒ 서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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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몰하는 세월호를 실시간 TV 화면으로 보면서 가슴을 치며 발만 동동 굴렀던 9년 전의 충격을 다시 떠올린다. 이후 우리 국민은 돈보다 생명, 이윤보다 안전이라고 외치며 주말마다 촛불을 들었다. 그것은 참사로 희생된 유족을 향한 위로의 표현이었으며, 끝까지 그들과 함께 어깨 겯겠다는 연대의 다짐이기도 했다.

거센 장맛비와 살을 에는 듯한 칼바람 속에서 타올랐던 촛불의 기억조차 이젠 희미해졌다. 9년 전보다 더 안전해지지도 않았고, 사람 사는 세상이 되지도 못했다. 그때의 무능하고 무책임했던 정부보다 지금이 더 나은 정부라고 말하기도 뭣하다. 아이들조차 현 정부를 참사 당시의 박근혜 정부와 '부자 되세요'라는 말이 공약이던 이명박 정부의 '교집합'이라며 조롱한다.

정부만 탓할 것도 없다. 선거를 통해 그들을 지도자로 옹립한 이는 다름 아닌 우리 국민이어서다. 모름지기 모든 나라의 국민은 그들의 수준에 맞는 지도자를 갖는다고 했다. 현 정부의 출범을 두고 돈보다 생명, 이윤보다 안전이 우선이라는 세월호 참사 당시의 옹골찬 다짐을 헌신짝처럼 던져버렸음을 보여주는 징표라고 애통해하는 이도 있다.

부박한 세태를 향한 분노가 절실하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라며, '하다못해 담벼락에 대고 욕이라도 하라'고 말했다. 불의에 맞서 담벼락에 대고 한 욕설도 모이면 메아리가 되고, 그 메아리가 모이면 군중의 함성이 되는 법이다. 마치 손안의 작은 촛불이 들불이 되어 집채만 한 횃불이 되어 타오르듯이.

9년째 내 팔목에 채워져 있는 세월호 고무링
 
코로나로 멈췄다 다시 연 세월호 참사 9주기 추모 음악회 풍경
 코로나로 멈췄다 다시 연 세월호 참사 9주기 추모 음악회 풍경
ⓒ 서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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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목요일(13일) 교정에서 그동안 코로나로 열리지 못했던 추모 음악회가 있었다. 연습할 시간조차 녹록지 않았지만, 아이들도 교사들도 이심전심으로 손을 보탰다. 점심시간 식생활관 앞에 간이 무대를 설치하고 가수와 관객 구분 없이 참사를 기억하고 다짐하는 노래를 함께 불렀다. 조촐해도 뭉클한 시간이었다며 모두 뿌듯해했다.

9년째 내 팔목엔 노란 세월호 고무링이 채워져 있다. 거기엔 참사가 발생한 날짜와 함께 기억, 희망, 동행이라는 세 단어가 새겨져 있다. 잊지 않고 함께하겠다는 기억과 동행이라는 글귀보다, 희망이라는 단어에 마음속 방점을 찍게 된다. 유족을 욕보이고 정의를 조롱하는 야만과 반동에 맞서 끝내 인간다운 세상을 만들고야 말겠다는 긍정의 다짐으로 읽혀서다.

그 약속과 다짐을 아이들과 공유하고 가슴에 새기도록 하는 건 교육의 몫일 테다. 해마다 봄꽃 만발하는 4월이면 전국의 학교마다 추모 행사를 여는 것도 그래서다. 교과별로 시낭송회를 열고, 추모 영상을 시청하는가 하면 학생회에선 교정 곳곳에 노란 종이배와 바람개비를 세워놓기도 했다. 점심시간에는 추모곡 '천 개의 바람 되어'가 교정에 울려 퍼진다.

'콩나물에 물 주기'일지언정 아이들이 희망의 근거다. 계기 수업 때 소개한 한 석학의 일갈을 한 아이가 멋들어진 표현으로 맞장구쳤다. 버거운 일상에 치여 고통받는 이웃에게 눈길조차 주지 못하는 기성세대의 각박한 세태가 부디 미래세대 아이들에게 전염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세월호 참사 9주기를 보내며, 다시 신발 끈을 동여매야 하는 이유다.

"고통받는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를 보면 그 사회의 수준을 알 수 있다."
"그 말씀인즉슨, 좋은 사회란, 성공한 이들을 향해 박수갈채를 보내기보다 고통받는 이들의 눈물을 먼저 닦아주는 사회라는 뜻이겠죠."

태그:#세월호 참사 9주기, #이태원 참사, #산재 공화국, #스쿨존 사망 사고, #안전불감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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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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