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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되면 멍게회와 멍게 비빔밥을 찾는다. 3월부터 5월 사이 멍게가 제철이다. 따뜻한 봄바람이 불어오면 바다 내음 향긋한 멍게 한 점으로 겨울 동안 잃었던 입맛을 살릴 수 있다. 멍게는 노란색에 붉은색을 덧입힌 화려함에 특유의 우둘투둘한 돌기로 '바다의 꽃' 또는 '바다의 파인애플'이라 불린다.

입안에 부드러운 멍게 한 점을 넣는 순간 밀려드는 진한 바다 맛과 독특한 향이 온몸에 퍼진다. 하지만 특유의 향 때문에 호불호가 갈리기도 한다. 남편은 주황빛 속살을 초고추장에 찍어 먹지만 나는 멍게 살 그대로 먹는다. 첫맛은 강한 향과 함께 짭조름하면서 쌉싸름하지만 뒷맛은 은은한 단맛과 감칠맛이 난다. 묘한 맛이다. 한동안 입안에 멍게의 여운이 남는다.  
   
멍게를 멍게라 부르지 못한 적이 있었다. 멍게의 다른 이름은 우렁쉥이다. 본래 멍게는 경상도 지방 사투리지만 멍게란 말이 많이 알려지면서 지금은 복수 표준어가 되었다. 경상도 사람인 나는 한 번도 멍게를 우렁쉥이라 부르지 않았다. 짜장면을 자장면이라 부르면 왠지 허여멀건해서 맛깔스럽게 느껴지지 않는 것처럼 멍게를 발음도 어려운 우렁쉥이라 부르면 왠지 혀가 기억하는 그 맛이 나지 않을 것 같다.  

오랜만에 유기 그릇을 꺼낸다. 멍게 비빔밥을 먹기 위해서다. 무겁고 닦기 귀찮아 특별한 날에만 꺼낸다. 별것 아닌 음식도 유기그릇에 정성껏 담으면 왠지 나 자신을 대접하는 것 같다.
 
멍게 비빔밥과 멍게 회
▲ 멍게 비빔밥 멍게 비빔밥과 멍게 회
ⓒ 도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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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한 그릇 넣고 그 위에 갖은 채소와 멍게 올리고 초고추장을 뿌린다. 쓱쓱 비벼 한 술 가득 입 안에 넣고 보니 뭔가 허전하다. 그렇지. 김 가루가 빠졌다. 구운 김을 잘게 부숴 넣고 다시 크게 한 입. 우걱우걱. 보기에 흉할 수 있지만 체면 차리고 싶지 않은 맛이다.

각자의 인생 멍게 고백
     
멍게비빔밥을 먹으며 잠시 추억 놀이에 빠진다. 우리 부부는 어릴 적부터 멍게에 익숙하다. 부산 태생인 그도 나도 봄철이면 동네에 멍게를 가득 실은 손수레를 흔히 볼 수 있었다. 지금은 트럭이지만 그때는 손수레에 가득 싣고 다니며 즉석에서 좌판을 펼쳐 장만해 주었다.

초등학교 다닐 적 그이는 멍게 윗부분의 오돌오돌한 돌기를 껌처럼 단물이 빠질 때까지 씹었다고 한다. 짭조름하면서 단맛이 도는 데다 오독오독 씹는 맛까지 있으니 별난 간식이었던 셈이다. 깔깔깔. 또 검정 고무신 시절로 다녀 왔다.      

이번엔 각자의 인생 멍게 고백이다. 남편의 인생 멍게는 첫 발령지 거제도에서였다. 우연히(과연 우연일까?) 거제도가 본가인 동료 교사의 집에 들르게 되었는데 마침 마당에서 갓 잡은 멍게를 손질하고 있더란다. 즉석에서 껍질을 깐 다음 건네는 멍게를 입에 넣는 순간 입안에서 벌어지는 맛의 향연을 경험했다나 어쨌대나.   
   
십수 년 전 우리 가족 3명과 가깝게 지내던 지인 가족 3명이 겨울 제주를 찾았다. 세찬 제주 바람을 온몸으로 받아 내며 해안가를 산책하던 중이었다. 마침 해녀들이 갓 잡은 멍게와 해삼을 팔고 있었다. 추위도 녹일 겸 해산물을 사 들고 바로 앞 식당으로 갔다.

구입한 해산물을 식당에 가져가면 먹기 좋게 손질해 주고 야채와 초장 그리고 초록병도 나왔다. 그때의 멍게 맛을 잊을 수 없다. 하루 종일 멍게 향이 입안에 맴돌았다. 비릿한 바다 냄새가 아니라 싱싱한 생명력에서 오는 뭐라 표현할 수 없는 향긋하고 달짝지근한 맛이었다.
     
음식은 추억으로 먹기도 하고 또 다른 추억을 남기기도 한다. 어디서 먹었는지 기억하는 일은 지나간 시절의 사진첩 한 장을 불쑥 들춰보게 한다. 누구와 함께 그 음식을 먹었는지 돌이켜 보는 일은 마음 깊은 곳에 가라앉았던 추억 한 자락을 길어 올리는 일이다.

곶자왈을 함께 걷고 눈 내리는 숙소에서 귤을 까먹으며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던 그녀는 얼마 전 병으로 유명을 달리했다. 온화하고 기품 있는 그녀의 웃음을 다시는 볼 수가 없다. 이제 내 곁에 없는 그녀를 멍게 향에 취해 그리워한다.

싱싱한 멍게는 언제 먹어도 꿀맛이지만 늘 먹는 비빔밥 말고 새로운 요리도 시도해 봐야겠다. 멍게 전과 멍게 젓갈이 다음 메뉴다. 제철 맞은 봄 멍게 밥상. 만 원의 행복으로 식탁 위의 꽃을 피워보자.
 
한국수산회 공식 블로그(어식백세)에 나오는 국내산 멍게와 일본산 멍게 구별법.
▲ 멍게 원산지 구별법 한국수산회 공식 블로그(어식백세)에 나오는 국내산 멍게와 일본산 멍게 구별법.
ⓒ 어식백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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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일본이 후쿠시마 해역에서 생산되는 멍게 수입 재개를 요청했다는 논란이 이어지면서 멍게 주산지인 거제 통영 지역 어민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이미 홋카이도 근처에서 생산된 멍게의 많은 양이 수입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멍게 양식을 하는 어민들은 소비자들이 국산 멍게조차도 안 좋은 이미지를 가질 수 있다는 점에 시름이 깊어 갑니다. 국내산은 2~6월, 일본산은 그 이후 여름에 주로 생산된다고 합니다.

가장 걱정되는 점은 후쿠시마산 농 수산물의 수입 재개입니다. 정부가 설마 자국국민에게 '후쿠시마산 농수산물'을 먹게 두겠냐마는 호~옥시 모르니 현명한 소비자가 되어야겠습니다. 원산지 꼭 확인하시고 드세요. 


태그:#멍게, #멍게비빔밥, #멍게회,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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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 생활을 하며 은퇴 후 소소한 글쓰기를 합니다. 남자 1, 반려견 1, 길 고양이 3과 함께 하는 소박한 삶을 글로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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