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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여름 아침의 오목대
 초여름 아침의 오목대
ⓒ 최승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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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화·수요일은 도서관에서 자원봉사를 한다. 아내의 출근 차를 타고 전주 풍년제과 앞에 내리는 시간은 오전 8시 10분경으로 도서관 출근 시간까지 50분의 여유가 있다. 싱그러운 아침 바람과 더불어 한옥 마을과 오목대를 거쳐 전주천을 걷다 보면 도서관에 도착한다.

같은 장소도 오고 가는 방향과 계절의 변화에 따라 서로 다른 얼굴로 마주한다. 산을 오르며 마주한 풍경이 하산 시에는 또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는 경험과 마찬가지다. 전국의 많은 관광객이 방문하는 한옥 마을도 예외는 아니어서 계절의 순환에 따라 서로 다른 모습과 느낌으로 다가온다.

초여름의 한옥 마을은 실개천이 흐르고 미니폭포와 수벽 분수에는 쉼 없이 물이 쏟아진다. 나무마다 푸른 기운이 넘쳐나고 만개한 형형색색 여름꽃은 이른 아침의 풍경에 생동감을 더한다. 달맞이꽃은 청초한 아름다움을 유지한 채 아침의 풍경을 풍요롭게 한다. 가게는 흥겨운 음악 소리와 함께 손님맞이를 서두르고 부지런한 손님은 전망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한옥 마을의 달맞이꽃
 한옥 마을의 달맞이꽃
ⓒ 최승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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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은 우리의 생체 시계가 빠르게 작동한다. 이른 시간에 한옥 마을을 관광하는 여행객이 부쩍 눈에 띄기 시작하고 거리를 오가는 사람도 많아졌다. 오목대에 이르는 계단에는 동네 할머니 두 분이 자리를 차지하시고 대화에 열중이다.

생체 시계의 변화는 아이들에게도 예외가 없다. 등교 시간을 망각한 채 작은 구조물을 앞에 두고 잡으려는 아이와 도망가는 아이의 술래잡기는 즐거움이 가득하다. '저러다 지각하면 혼날 텐데'라는 생각은 나만이 가지는 괜한 걱정인 것 같다. 아이들은 여전히 '나 잡아봐라'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모습을 보며 손주를 돌보았던 기억이 떠오른다.

나이 들어 피해야 할 첫 번째 일이 손주 양육이라는데 우리 부부는 2년 반 동안 맡아 길렀다. 맞벌이 부부인 아들 내외는 어린 자녀의 양육에 도움을 요청했고 아내는 선뜻 제의에 응했다. 내리사랑이라고 어린 손주의 양육은 즐거움을 선물했으나, 아이의 일정에 모든 것을 맡겨야 하는 시간적 제한과 사고에 대한 염려라는 문제점도 가져왔다. 한편으로 손주 양육의 경험을 통해 아들 셋을 키운 아내와 어머니의 노고에 새삼 감사함을 느끼는 시간이 되기도 했다.

오늘날 대한민국 가정의 일반적 모습은 한 자녀를 가진 부부가 대부분이며, 부부만의 2인 가족도 상당하다. 가정을 꾸민 부부가 자녀를 갖지 않아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산율을 기록하고 있는 것 또한 잘 알려진 일이다.

낮은 출산율의 원인은 부부와 가족 내의 문제 혹은 사회·국가적 문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음은 분명하다. 문제는 출산율 저하에 따른 인구 절벽이 심각하여 국가 경쟁력과 국가 존립 자체가 위협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낮은 출산율에는 다양한 원인이 있겠으나 양육에 따른 부담감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과거에는 딸이 애교가 많고 공감 능력이 뛰어나 소위 아이 키우는 맛이 남다르고, 친정 위주로 돌아가는 시대의 흐름으로 언제든지 쉽게 만날 수 있어 딸을 둔 가정이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요즈음은 상황이 역전되어 아들을 둔 가정이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다고 한다.

딸은 친정 부모에게 손주 양육을 부탁하는 데 반해 시부모에게는 손주의 양육 부탁이 쉽지 않아 상대적으로 아들을 둔 부모의 양육 부담이 적다는 이유이다. 한편의 블랙 코미디 같은 이야기이지만 아이 양육의 어려움을 단적으로 표현한 말인 것 같아 씁쓸하다.

이래저래 아이 양육 문제는 한 가정의 문제를 넘어 사회·국가의 문제로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임은 분명하다. 아이들이 즐겁게 뛰어노는 광경을 보며, 역동적이며 젊은 국가를 소망하는 꼰대의 오지랖이 마음을 심란하게 한다.

전주천을 지나는데 공익 근로 활동을 하시는 어르신들이 빨강 노랑 조끼를 입은 채 삼삼오오 모여 있고 바지런한 노인은 쓰레기 줍기에 여념이 없다. 천변에는 한 여름 삼복더위에나 볼 수 있는 천렵을 하시는 분도 있다.

"어르신! 뭐 잡히는 게 있나요?"
"꺽지 두 마리를 잡았는데 더 있나 봐야지."


이를 보고 있던 한 어르신이 대화에 끼어든다.

"여기서 고기를 많이 안 잡아서 고기가 많을틴디…."
 
도서관의 버들 마편초와 부처꽃
 도서관의 버들 마편초와 부처꽃
ⓒ 최승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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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 도착했다. 봄에 심었던 꽃이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머지않아 수생 식물과 주변에 형형색색의 예쁜 꽃이 정원의 아름다움을 더해 갈 것이다. 붉은 장미가 피었고 수국이 숨겨둔 자태를 드러내려 하고 있다.

핑크빛 버들 마편초와 부처꽃은 강렬한 색채와 여린 몸으로 상반된 미를 뽐내고 있다. 담쟁이 넝쿨로 뒤덮힌 도서관은 푸르름을 더하며 정감있고 신비로운 공간으로 변했다. 여름은 언제나 강렬하고 화려하며 뜨겁다. 여름은 하루를 일찍 시작하고 우리는 얼리버드가 된다.
 
담쟁이로 덮인 도서관
 담쟁이로 덮인 도서관
ⓒ 최승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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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여름, #한옥 마을, #꽃, #아이 양육, #얼리 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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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직을 정년 퇴직한 후 공공 도서관 및 거주지 아파트 작은 도서관에서 도서관 자원 봉사 활동을 하고 있는 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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