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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무 경험이 너무 간절했어요. 그런데 청주에는 마케터를 뽑는 회사가 거의 없어서, 무작정 서울에 올라왔어요."

1998년생 김민수(가명)씨의 하루는 서울 강남의 한 고시원에서 시작된다. 충북대학교 인문대학에서 마지막 학년을 남겨두고 있는 그는 약 6달 전 서울에 올라와 디지털 광고 대행사에서 체험형 인턴으로 일하고 있다. 6월 12일 오전 8시부터 자정까지, 쉼 없이 달린 그의 하루에 동행했다.

① 혈혈단신 지방러의 서울 생존기

오전 8시, 헬스장에서 운동하는 김씨를 만났다. 운동은 서울에서 처음 하게 됐다고 한다. 체력이든, 스펙이든 이곳에 있는 동안 자신에게 '플러스알파'가 될 수 있는 것만 하고 싶다고 했다.

아침을 거른 10시, 그는 버스로 30분 거리에 있는 회사에 출근했다. 입사 당시 4명이던 직원은 얼마 후 2명으로 줄어 지금은 사장님과 단둘이 일한다. 업무 대부분을 혼자 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합격해서 다행이라고 말한다. 떨어질지도 모르는 회사에 KTX를 타고 면접 보러 가던 날들이 더 불안했기 때문이다.
 
왼쪽부터 김민수씨의 고시원, 저녁 식사, 카페에서 공부하는 김민수씨
 왼쪽부터 김민수씨의 고시원, 저녁 식사, 카페에서 공부하는 김민수씨
ⓒ 고나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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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7시, 퇴근한 김씨는 곧바로 고시원으로 향했다. "잠만 자는 용도예요. 사람답게 살긴 어렵고요." 사람답게 살기 어려운 방의 월세는 55만 원. 작은 침대, 책상, 옷장이 한 몸처럼 붙어있었다. 옆방에서는 계속해서 물소리와 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김씨는 식비를 아끼기 위해 저녁을 늘 간단히 조리해 먹는다. 메뉴는 전자레인지에 돌릴 수 있는 닭가슴살과 공용 주방에서 간단히 구울 수 있는 버섯이다. 밤 9시, 식사 후 쪽잠을 청한 김씨는 카페에서 자격증 공부를 하기 위해 다시 가방을 메고 문밖으로 나섰다. 그렇게 자정까지 조용한 토익 공부가 계속됐다. 주말엔 자격증 시험을 보러 가거나 못다 한 공부를 한다고 했다.

"몇 년 전에 고학벌 친구들과 경쟁하는 대외활동을 했었는데 조금 위축되더라고요. 학벌을 극복하려면 2배는 열심히 살아야죠."

김씨는 대학 재학 중에 서울에서 하는 대외활동을 하러 달에 한 번씩 기차에 올랐다. 고향에는 대외활동이 거의 없고, 스펙을 쌓으려면 큰 단체나 기업에서 해야 할 것 같았다고 한다. 수도권에 사는 팀원들은 수업을 다 듣고 활동 장소로 모였지만, 김씨는 아예 학교를 빠져야 하는 날이 많았다. 오전에 활동이 있는 날은 새벽 6시부터 하루가 시작됐다. 하지만 대학생 신분에서 가장 부담됐던 건 서울에 갈 때마다 최소 6만 원씩 깨졌던 돈이다.

"분명 일을 하고 있는데 저축을 할 수가 없어요."

경제적 부담은 서울에 올라온 지금도 그를 괴롭힌다. 최저임금인 월급에서 월세, 식비, 휴대전화 요금, 생활비, 자격증 응시료, 각종 문제집, 인터넷 강의, 가끔 청주에 내려갈 때 타는 기차 비용 등을 빼면 남는 게 없다. 김씨는 마케터로 일할 수 있는 규모가 큰 회사만 있다면 청주로 다시 내려가고 싶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생존'하는 대신, 돈도 아낄 수 있고 심적으로도 편안한 고향에서 '사람답게 살고 싶다'고 했다.

② 5월 대졸 신입 채용 공고 2500건 분석해 보니

2019년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지방 거주 구직자 약 80%가 구직활동에서 소외감을 느낀다고 한다. 비수도권에 사는 청년이 훨씬 많음에도 채용공고가 수도권에 몰려있기 때문이다. 그럼 2023년은 어떤 상황일까.

취업포털 '사람인'에 5월 한 달간 올라온 대졸 신입 채용공고 약 2500건을 분석했다('사람인'은 작년 한 해 동안 네이버 검색량이 가장 많았던 취업포털이다). 공고 수를 비교하는 걸 넘어, '어떤 공고'가 많고 적은지 살펴봤다. 5월 31일부터 약 열흘간 엑셀과 파이썬을 이용해 수도권, 호남권, 영남권, 충청권, 강원, 제주 총 6개 지역 채용공고의 기업 형태, 직무, 업종을 비교했다.
 
데이터 분석을 진행한 엑셀 파일
 데이터 분석을 진행한 엑셀 파일
ⓒ 고나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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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모든 지역에서 중소기업 채용공고가 과반을 차지했다. 기업의 업종은 수도권과 비수도권에서 약간 차이를 보였다. 충청권은 46%, 호남권은 35%, 영남권은 36%, 강원은 34%로 제조업 채용공고가 가장 많았다. 수도권은 제조업(25%) 못지않게 도매업(23%) 비중이 높았고, 지방에서 3~4% 수준인 연구개발업도 8%를 차지했다. 직무에 있어선 모든 지역이 영업직을 가장 많이 채용하고 있었다.

다만 뒷순위에서는 차이가 있었다. 수도권은 마케팅, 엔지니어, 연구, 디자이너, 경영지원, 개발자 등 채용 직무가 다양해 특정 직무로 비중이 몰리지 않았다. 대덕 연구 단지 등이 있는 충청권에서는 연구원(10%), 개발자(5%) 채용을 곳곳에서 찾을 수 있었다. 다만 강원은 13%, 호남권은 10%로 생산 관리 직무가 영업직 다음을 차지했다. 지방일수록 사무보조, 물류 관리 등 단순 업무를 요하는 직무가 많았다.

③ 대구에도, 전주에도, '여기 사람 있어요'

지방에도 각자의 방식으로 고군분투하는 청년들이 있었다. 우석대학교 경찰행정학과를 졸업해 전북경찰청에서 일하고 있는 이병재(가명)씨는 '정보 부족'을 큰 어려움으로 꼽았다. 국제공인영어시험인 '지텔프(G-TELP)'는 경찰 채용에서 가산점 항목에 들어가는 타 자격증보다 난도가 낮아 준비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다. 다만 지방에서 홀로 공부하던 이씨는 이를 알지 못해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 타 자격증을 취득했다. 지방 취준생은 취업 정보를 아예 모르고 넘어가거나, 알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인천에서 대학을 졸업했지만 고향인 전라북도에서 취업을 준비한 정유림(가명)씨는 '시간·체력·비용 소모가 큰 것'을 어려움으로 꼽았다. 인하공업전문대학교 관광경영학과를 졸업해 항공사 입사를 준비한 그는 서울에 면접을 보러 갈 때마다 교통비와 식비 등으로 약 10만 원을 썼다. 항공사 면접은 용모가 중요하나 좋은 미용실과 메이크업 샵이 서울에 집중돼 있어 면접 날마다 어두운 새벽에 집을 나섰다.

지방사립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해 대구에서 취업을 준비한 박아름(가명)씨는 대학 때부터 쉬지 않고 스펙을 쌓았다. 각종 금융기관에서 대외활동을 했고, 어학 점수 고득점과 여러 금융 자격증을 취득했으며, 금융기관에서 2번이나 인턴으로 일했다. 그는 "시험과 면접을 보러 서울까지 올라가야 하는 걸 넘어, 수도권에 모든 취업 인프라가 집중된 게 아쉽다"라고 말했다. 필기시험을 준비할 수 있는 학원, 대기업·금융기관의 취업 설명회, 각종 자격증의 고사장 등이 수도권이나 큰 광역시에 몰려있어 번번이 여정을 떠나야 한다는 것이다.
 
왼쪽부터 박아름씨가 응시한 필기시험장, 서울로 올라가는 KTX 기차, 서울에 올라가기 위해 싼 정유림씨의 짐가방
 왼쪽부터 박아름씨가 응시한 필기시험장, 서울로 올라가는 KTX 기차, 서울에 올라가기 위해 싼 정유림씨의 짐가방
ⓒ 인터뷰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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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대학교 행정학과를 졸업한 김영현(가명)씨는 전주에서 인터넷 강의와 유튜브 등으로 채용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지방 소도시일수록 같은 직무를 준비하는 취준생을 찾는 게 어렵다"라고 말했다. 독학의 한계를 느껴 취업 준비 카페에서 스터디 모임을 구했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전주 지역의 스터디 모집 글은 많아 봤자 한 달에 2번 정도 올라와서, 그 기회를 잡지 않으면 들어가기 힘들다는 것이다.

➃ 전문가들이 바라본 지역 일자리 정책의 문제는

우리가 취재한 20대 청년 5명 모두 수도권에 취업 기회가 훨씬 많다고 지적했지만, 지방에도 양질의 일자리만 있다면 고향에서 계속 살고 싶다고 말했다. 지방을 떠서 성공해야겠다기보다 익숙한 곳에서 자아실현을 하고 싶다는 것이다. 지난 4월, 국회에서는 <지방소멸시대의 지역 청년일자리 정책, 해법은?> 토론회가 열렸다. 이때 토론자와 발제자로 참여한 전문가 2명을 찾아 6월 9일과 10일, 이틀에 걸쳐 지역 일자리에 대한 해법을 물었다.

전국청년정책네트워크 이주형 대표는 "최근 미취업 청년을 대상으로 한 사업은 축소되고, 일자리의 양을 늘리는 사업은 늘어나고 있다"라며 '지역주도형 청년일자리 사업'의 예산이 올해 약 400억 원 규모로 삭감된 것을 지적했다.

행정안전부는 2018년부터 '지역주도형 청년일자리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가 지역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한 사업을 기획하면 행안부가 예산을 지원하는 것이다. 이 대표는 "'지역주도형 청년일자리 사업'은 지역 청년들의 부족한 일 경험 문제를 해소하고, 경력의 빈 곳을 채우기 위해 도입 및 운영되는 사업이기에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평소 지역 불평등과 일자리 문제를 연구한 한국고용정보원 일자리사업평가센터 이상호 센터장은 "정부의 지역 일자리 사업 대부분이 기획안을 내야 예산을 지원하는 '공모 사업'인 게 아쉽다"라고 말했다. 지방 소도시일수록 사업을 기획하는 인적 자본이 부족해 공모에 매번 떨어지고, 결국 지역 격차가 더 벌어진다는 것이다.

그는 "지방 일자리 문제가 비가역적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정부와 정책 결정자들이 '우리 사회는 지방과 청년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어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지역을 살리기 위한 비전을 명확히 제시하고 대책을 세워야 청년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네이버 국어사전에 등재된 '취업 바늘구멍'
 네이버 국어사전에 등재된 '취업 바늘구멍'
ⓒ 네이버 국어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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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국어사전에는 '취업 바늘구멍'이라는 말이 아예 합성어로 등재되어 있다. 취업하기 어려운 현실을 가느다란 실조차 통과하기 힘든 바늘구멍에 비유한 것이다. 그러나 지방 취준생들은 보이지도 않는 그 구멍을 통과하기 위해 바늘부터 찾으러 가고 있다. 어두운 새벽 기차에 몸을 싣거나, 연고 없는 서울의 좁은 방에서 잠을 청하며.

태그:#취업준비, #MZ세대, #지방취준생, #지역균형, #지방소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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