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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항해중인 공평해 프로젝트팀은 지난 6월 1일 제주 강정마을에서 출발하여
부산-후쿠오카를 거쳐 6월 17일 나가사키에 도착하였고, 지난 20일에는 30여년간 원폭 피해자들을 돕고 있는 나가사키 평화센터 히라노 노부토(平野伸人) 소장을 만났다(관련기사: 한국에 '반전 평화' 외치는 요트팀이 있다? https://omn.kr/23ql6).

나가사키는 1945년 당시 히로시마와 함께 미국의 원자폭탄(원폭)이 투하된 도시이다. 핵무기 투입은 현재까지 최초이자 마지막인 곳으로 민간인들의 인명 피해가 컸다. 히로시마 사망자는 약 9~12만 명으로 추정되고, 나카사키에서는 6~7만 명이 사망하였다. 살아남은 피해자들도 투병으로 시달렸고, 후유증은 되물림 되어 피해가 2세, 3세로 이어져오고 있다. 
 
한국인 원폭 피해자 김순길씨는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1992년 7월 일본 정부와 미쓰비시조선소를 상대로 원폭 피해 보상과 미불 임금 반환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97년 말 패소 후 항소심이 진행되던 98년 2월 지병으로 사망했다.

사진을 보여주며 한국인들 원폭 피해에 대해 설명하는 히라노 노부토.
▲ 한국인 원폭 피해자 김순길씨 사진을 들고 있는 히라노 노부토 소장 한국인 원폭 피해자 김순길씨는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1992년 7월 일본 정부와 미쓰비시조선소를 상대로 원폭 피해 보상과 미불 임금 반환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97년 말 패소 후 항소심이 진행되던 98년 2월 지병으로 사망했다. 사진을 보여주며 한국인들 원폭 피해에 대해 설명하는 히라노 노부토.
ⓒ 이향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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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에 태어난 그는 원폭 피해 2세로서 어머니와 누나는 원폭 피해를 입었다. 현재 나가사키의 원폭 피해자들에 대한 상황은 어떨까?

"원폭 피해자들은 국가 보상을 받았으나 2~3세들은 지원을 받지 못해서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물론 한국인들은 아예 보상을 못 받았다. 원폭 피해 2세들은 일본에서도 여전히 국가를 상대로 재판중이다. 좋은 판결이 나오면 한국인 원폭 2세들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젊은 활동가들이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  

원폭 피해 당사자들은 나가사키시를 상대로 재판을 했고, 보상은 일본 정부로부터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재판을 했던 피해자 전체는 보상을 받을 수 없었다. 예를 들어 아래 지도는 원폭이 떨어진 곳을 중심으로 그려진 것으로 현재 나가사키시에 해당한다. 그러나 원폭이 투하될 당시 나가사키시는 갈색 표시된 곳으로 현재보다 면적이 좁았다.

원폭 피해 지원을 과거 나가사키시에 한정짓다 보니 갈색과 연두색에 걸쳐진 경계에서 공장과 기숙사가 나뉜 경우 공장에 있던 사람은 피해 보상을 받고, 기숙사에 있던 사람은 보상을 받지 못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졌다. 
 
지금보다 작았던 과거 나가사키 시. 현재의 나가사키보다 과거의 나가사키에 한정하여 피해 보상을 해주고 있다.
▲ 나가사키 원폭 피해 지도 지금보다 작았던 과거 나가사키 시. 현재의 나가사키보다 과거의 나가사키에 한정하여 피해 보상을 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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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한국 500번 다녀간 이유

당시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 있던 한국인 원폭 피해 사망자는 한국쪽 추산 4만 명에 이르고, 2·3세 피해자는 1만~2만 명으로 추정된다. 히라노 노부토 소장은 한국인들도 보상받을 수 있게 한국을 500번 다녀갔다. 

공평해 프로젝트팀의 송강호 리더는 "일본 기업들이 배상하라는 한국 대법원 판결을 뒤엎고,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를 대신하여 강제징용 피해자들을 보상해주겠다고 했다. 일본 정부는 좋아라 하며 배상이 아닌 '청년미래기금'이라는 이름으로 기업들이 원하면 내고 의무는 아니라고 밝혔다. 황당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며 한국 정부의 처사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히라노 노부토 소장은 "안 그래도 그 문제 때문에 이번에 한국에 들어가기로 했다. 
한마디로 '어이없는 상황'이다. 일본 내 보도를 보면 한국에 대해 잘했다고 생각하는 일본인이 많아 보인다. 하지만 평화와 노동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도 당신과 같은 생각이다"라고 답했다.  
 
히라노 노부토와의 통역을 담당해준 원폭 피해3세 후지모토 에리카(오른쪽에서 두 번째). 그녀는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한국어 공부를 열심히 해 수준급으로 소통을 도와주었다. 현재 히라노 노부토와 함께 한국인들 피해 지원을 돕고 있다.
▲ 나가사키 평화센터 방문한 공평해 프로젝트팀 히라노 노부토와의 통역을 담당해준 원폭 피해3세 후지모토 에리카(오른쪽에서 두 번째). 그녀는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한국어 공부를 열심히 해 수준급으로 소통을 도와주었다. 현재 히라노 노부토와 함께 한국인들 피해 지원을 돕고 있다.
ⓒ 이향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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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강호 리더는 "바쁜 와중에 급한 연락에도 불구하고 히라노 노부토 소장님이 환대를 해주어 감사하다. 일본 피해자 뿐만 아니라 한국 피해자들까지 돕는 폭넓은 활동에 감명을 받았으며 이러한 분들에 대해 한국, 대만 사람들에게도 소개를 하고 싶다. 나가사키는 역사적으로 많은 외국인들이 교류하던 곳이자 전쟁 피해를 입은 곳으로서 앞으로 평화 교육을 공고히 하기에 아주 좋은 도시인 것 같다"라고 소회를 밝혔다. 

공평해 프로젝트 팀은 100일간 제주-오키나와-타이완을 무동력 요트로 항해하며
평화 운동가들을 지지하고 군사주의를 반대하는 평화 항해를 하고 있다. 나가사키 이후에는 미군 기지가 들어설 계획이 있다는 코시키마 섬을 거쳐 가고시마를 향해 떠날 예정이다. 

태그:#히라노노부토, #공평해프로젝트, #송강호, #나가사키, #원폭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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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세계사가 나의 삶에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일임을 깨닫고 몸으로 시대를 느끼고, 기억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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