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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모임에서 만나 시민기자가 된 그룹. 70년대생 동년배들이 고민하는 이야기를 씁니다.[편집자말]
'지금 출발. 도착 예정 시간 00시.'

사무실 근처에서 업무차 술 약속이 있던 남편의 출발 메시지다. 얼핏 보기엔 그저 단순하게 도착 예정 시간을 알려주는 이 짧은 메시지엔 또 다른 의미가 담겨있다. 다름 아닌, 그 시간에 맞춰서 나오면 된다는 것. 이게 무슨 소리인가. 술 마시고 들어오면서 마중까지 나오라는 얘기로 오해할 수 있겠지만, 알고 보면 웃지 못할 사정이 숨어 있다.

나는 아파트에 살고 있다. 공동주택인 아파트는 아무래도 층간소음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해가 지고 나서 일반적인 저녁 식사 시간이 지난 후라면 더욱 그렇다. 누군가는 이른 잠자리에 들 시간이고, 또 누군가는 하루를 마감하고 혼자만의 조용한 시간을 즐길 법한 시간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같은 소음이라 하더라도 밤이 되면 낮에 들리던 것보다 더 크게 들린다. 그 말인즉슨, 밤이 되면 특히 소음 발생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반려동물 소음을 막기위한 방책

매일 저녁 8시쯤이 되면 아파트에서는 안내 방송이 나온다. "우리 아파트는 층간 소음에 취약합니다. 아이들이 뛰지 않게, 반려동물이 짖지 않게, 가급적 슬리퍼를 신고, 가구를 끌 때도 주의를 기울여주십사…" 하는 당부의 안내 방송. 내가 사는 아파트의 안내 방송이지만, 아마 다른 곳도 사정이 다르지는 않겠지.

몇 개월 전 층간소음과 관련된 기사를 발행한 적이 있다. '층간소음 윗집이 이사 후 남기고 간 손편지'https://omn.kr/238ht 대한민국에 살고있는 사람들이라면 마음속에 층간소음에 대한 불만을 한 번쯤은 품었던 적이 있어서인지, 그 당시 반응이 꽤 높았다. 내게도 예나 지금이나 층간소음은 차마 외면하지 못하는 화두이다. 그건 안타깝게도 공동주택에 사는 한 계속해서 안고 가야 할 문제이기도 할 테다.

그리고 나 역시 층간소음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나는 반려견 두 마리와 함께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웃집에서 들려오는 소음 못지않게, 우리 집을 통해 발생 되는 소음 또한 적지 않을 수 있다.
 
반려인을 만난 반려견은 즐겁기만 할 뿐.
 반려인을 만난 반려견은 즐겁기만 할 뿐.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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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음걸이 등의 생활 소음에 신경을 쓴다 하더라도 반려견의 짖음은 또 다른 이야기가 된다. 걷거나 가구를 끌면서 발생하는 소음은 아래로 내려가고 떠들거나 짖는 소음은 위로 올라간다는 얘기가 있다. 게다가 거실 화장실을 반려견의 화장실로 이용하고 있는 터라 늘 문이 열려 있어 화장실 환기구를 타고 소음이 올라갈 확률 또한 높다(화장실 바닥에 배변 패드를 깔았으며, 수시로 소독 및 물청소를 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남편의 퇴근 시간이 몇 시가 되든 상관없이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 반갑다고 짖는 녀석들이기 때문에 이렇게 퇴근이 늦어지는 날이면 특히 더 긴장을 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남편의 귀가 시간을 확인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도착 시간을 알리는 메시지에는 여러 의미가 있다, 출처 Unsplash
 도착 시간을 알리는 메시지에는 여러 의미가 있다, 출처 Unsplash
ⓒ freestoc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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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 시간에 맞춰 밤 산책을 하며 기다리기도 하고, 정말 늦은 시간이라면 주차장에 내려가 차에서 기다리는 날도 있다. 어느 날은 졸려서 눈을 반밖에 뜨지 못하기도 하고, 비가 오거나 눈이 오는 날도, 심지어 늦은 귀가와 더불어 술에 취한 모습이 보기 싫은 날마저도 우리의 패턴은 변함이 없다.

하루 종일 나가 있던 반려인을 만난 반려견들의 반가운 마음을 최대한 밖에서 표현하고 함께 집으로 들어오면, 늦은 시간에 발생 되는 소음은 그만큼 줄어들 테니까 말이다.

'이렇게까지' 하는 마음이 낳은 효과

물론, 남편의 늦은 귀가 시간에 맞춰 강아지 두 마리와 함께 밖으로 나가는 마음이 늘 좋을 수는 없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위층에선 거실을 가로질러 쿵쿵쿵 걷는 소리가 들렸다. 이럴 때마다 '내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위층은 바로 아래층인 우리 집을 배려하지 않는데?'라는 마음이 든다.

이런 날이면 몇 시가 되었건 상관없이 남편을 집에서 맞이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다시금 마음을 고쳐먹는다. 괜스레 속상하고 어쩐지 억울한 마음에 늦은 시간에 짖도록 놔둔다면 짖는 소리는 위층뿐 아니라 옆집이나 아래층, 또 다른 이웃 세대에도 퍼져나갈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애초에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순전히 내 만족으로 시작한 일이다. 늦은 시간 들리는 이웃의 소음이 나부터가 싫기 때문에 시작된 행동이다. 내가 싫으니 나부터 조심하자는 마음이랄까. 비록 내가 조금 불편하더라도 최대한 이웃에 폐가 되지 않는 쪽을 선택하는 것. 공동주택에 살면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배려를 하는 것뿐.

사사로운 정을 나눌 필요까지는 없더라도 적어도 살면서 얼굴 붉히는 일은 만들지 않으려는 작은 노력의 일환이다. 이웃들이 이런 나의 노력을 알아주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다만, '나의 이웃도, 나의 위층도 이런 마음을 가져준다면 좋지 않을까' 하는 작은 바람을 가질 뿐. 그렇지 않더라도 별 수는 없겠지만.

어쩌면 이런 마음조차도 욕심일 수 있겠다. 돌이켜보면 나의 이런 층간 소음 예방을 위한 행동이 그저 이웃을 위한 배려에만 그치는 것은 아니기도 하다. 늦은 시간 귀가하는 가족을 마중 나가다 보니 살면서 불가피하게 생기는 미운 순간도 오래 끌고 가지 않게 된다는 장점도 있으니까.

결혼 생활 13년을 넘기도록 크게 다툰 적도, 냉전의 시간을 오래 끈 적도 없었던 것에는 그런 이유도 있지 않았을까. 아파트 이웃과 멀어지지 않으면서 내 가족과는 그만큼 가까워지는 계기. 그래.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이정은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게재될 수 있습니다.


글쓰기 모임에서 만나 시민기자가 된 그룹. 70년대생 동년배들이 고민하는 이야기를 씁니다.
태그:#층간소음, #최소한의 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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