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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고생 시절, 같은 반에 거제에서 마산까지 뭍으로 유학 온 동기가 있었다. 친구는 거제에 무지한 우리에게 '사람들은 뭘 몰라서 거제가 작은 섬이라 공만 차도 바닷물에 빠지는 줄 안다'며 볼멘소리를 하곤 했다. 이름에 섬 도(島) 자가 붙었으니 섬이 맞긴 한데, 거제는 제주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큰 섬이라고 한다. 

지난 2010년 부산시의 가덕도와 거제의 장목면을 잇는 교량 터널인 거가대교가 개통되고 통행시간이 40분대로 단축되면서 배 타고 가는 섬이라고 하기에는 그 명맥이 다소 무색해졌다. 부산에서 거가대교를 타고 거제에 도착하는 그 처음 길목 장목면 복항길에는 그때 내 학창 시절에는 없던, 그리고 나이 드신 나의 부모님 세대에게는 아직 낯선 관광지 '매미성'이 있다.

'매미성'을 아시나요 

매미성은 2003년 경남을 덮친 태풍 이름 '매미'에서 유래됐다. 당시 내가 있던 마산에도 크고 작은 재산피해는 물론 인명피해까지 남긴 어마 무시한 규모의 자연재해였다. 거제는 특히 태풍 매미의 피해를 직격타로 맞았는데, 당시 매미로 경작지에 농작물을 몽땅 잃은 농민 1인이 풍수해를 막겠다는 일념으로 바닷가에 돌을 쌓아 올리며 성을 짓 시작한 것이, 올해 20년째를 맞았다고 알려져 있다.

매미성은 사유지에 올려진 성으로 현재 일반에 무료로 개방되고 있다. 찾아보니 건축물이 공유수면을 침해했다는 소리도 나온다. 구체적인 권리관계가 어떻게 되는지 따지는 것은 나중으로 제쳐두더라도, 매미성 자체가 거제의 새로운 명물이 된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한적했던 시골 동네에 매미성 덕분에 관광객들이 찾아오기 시작하면서 주변에 카페, 글램핑장 등 새로운 상권도 형성되었다.
 
매미성을 올라가는 계단이 무척 가파르다.
 매미성을 올라가는 계단이 무척 가파르다.
ⓒ 강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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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목적이 제방을 쌓는 것이다 보니 바닷가 바로 앞에 높은 건축물을 세워서 위에 올라가 내려다보면 꽤 아찔하다. 사람이 거주할 수 있는 성이라기보다는 적을 방어하는 목적의 요새에 가깝다고 하겠다. 보기보다 경사가 매우 가파르고 계단 폭도 좁다. 난간이나 안전장치 같은 것은 따로 없어서 계단을 오르내릴 때는 혹여 발을 헛디딜까 조금 무서운 마음이 들었다. 안전 관리주체가 어떻게 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로 인해 찾아오는 관광객이 많아졌다는데 낙상사고라도 날까 약간 걱정도 된다.

그렇지만 같은 이유로, 여기서 화보 촬영을 해도 무리가 없을 만큼 성에선 근사한 풍광이 펼쳐진다. 해 좋은 날 가니 여기가 바로 남프랑스 몽돌해변, 거제시 장목면 나폴리라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푸른 거제 바다 위 쏟아지는 뜨거운 햇살에 윤슬이 눈부시게 부서지고 파도에 자갈 굴러가는 소리조차 이국적이다.

한편 설계도 한 점 없이 이런 건축물을 만들었다는 걸 보면, 사람들의 말처럼 천재 건축가 가우디의 현신인가 싶기도 하다. 곡선과 직선을 불규칙하게 넘나들며 바닷가 능선을 따라 축조된 성의 벽면은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있는 구엘공원을 연상시킨다.

비록 유래 없이 잔인한 재해로 비롯되었지만 매미성의 모양은 나의 터를 덮쳐 무참하게 할퀴고 간 너란 자연을 내 이겨먹고 말겠다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그 안에 들어가 받아들이고 스며들었다는 표현이 더 적당하겠다. 건축물은 해변의 일부처럼 바다와 조화를 이루었고, 새로 증축하고 있는 성도 중간에 있는 나무를 살려 그 주변에 돌을 쌓아 올렸다.

내가 방문했던 지난 6월 하순경 어느 평일 아침에도, 돌을 쌓는 작업은 성 한편에서 계속되고 있었다. 옆에는 하도 말 거는 사람들이 많아 작업에 방해가 되는지 '말 시키지 말라'고 작게 입간판이 세워져 있다.

한참을 구경하다 보면 한편 이런 것을 입장료도 안 내고 그냥 봐도 되나 싶은 마음이 든다. 파도같이 우루루 밀려왔다가 흰 포말처럼 부질없이 사라질 세간의 관심과는 담을 쌓고, 모자와 수건으로 내리쬐는 뙤약볕만 가린 채 이것만이 자신의 숙명인 양 묵묵히 혼자 작업하고 있는 모습은 고행을 자처하는 구도자를 보는 듯해 잠시 숙연한 마음마저 드는 것이다.

20년 간 혼자서 돌 쌓는 마음 
 
거제 매미성에서 혼자 묵묵히 작업 중인 성주의 모습.
 거제 매미성에서 혼자 묵묵히 작업 중인 성주의 모습.
ⓒ 강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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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료수라도 한잔 사다 드려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이 문득 들었지만, 잠깐 이마나 그 작업을 방해하는 것은 수행하는 스님을 찾아가 도중에 훼방 놓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그만두었다.

성인으로 묘사하는 것도, 천재 건축가에 비견하는 것도 매미성 성주가 바라는 바는 아닐 것이다. 아니 그의 행보는 그와는 정 반대의 대척점에 있다는 게 더 맞겠다. 나는 다만 20년이란 시간 동안 무언가를 지속한다는 것은 과연 어떤 마음일지 짐작만 해볼 뿐이다.

매미성이란 새로운 거제의 명물을 관광하러 와서 처음에는 그 외관에 감탄했고, 나중에는 그 옆에 흙먼지 뒤집어쓰고 없는 사람인 듯 성을 짓고 있는 이의 역사가 궁금해졌다. 시원한 물 한잔 건네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매미성은 아직도 만드는 과정 중이라는 '미완성 건축물'이니, 아마도 시간이 지나 찾아가면 또 다른 모양일 것이다. 내가 기억하는 그날의 매미성에서 너무 달라지기 전에 다음번엔 부모님을 모시고 다시 가보려 한다.

태그:#매미성, #거제도, #거제여행, #매미성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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