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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7월, 전국에서 가장 많은 장맛비가 내린 곳 중 하나는 충청남도 청양군이다.지난 13일부터 총 540.0㎜의 비가 내려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됐다. 

극한호우로 인해 제방은 무너져 내렸고 금강을 가득 채우고 있던 강물이 인양뜰로 넘쳐 들어왔다. 금강의 지류를 품고 있는 이곳의 유역은 전체가 900헥타르, 농경지만 240헥타르에 달한다. 축구장 240개 정도의 면적이 물에 잠겼다. 청양군은 지금까지의 피해액을 312억 원으로 집계했다.
  
출하 일주일 앞둔 수박 쓸려나가...
 
수해로 파괴된 인양뜰의 비닐하우스
 수해로 파괴된 인양뜰의 비닐하우스
ⓒ 김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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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수해 현장을 직접 찾아갔다. 참혹했다. 하우스의 높이가 2.5미터에서 3미터 정도인데, 침수 당시 하우스 꼭대기까지 전체가 다 물에 잠겼었다. 간신히 세워져 있는 하우스 꼭대기에 토사가 당시 수위를 짐작하게 했다.

비닐하우스는 전부 파괴됐다. 하우스를 지탱하는 파이프는 이리저리 휘어 땅에 쓰러졌다. 출하를 일주일 앞두고 있던 수박은 당연히 다 쓸려갔다. 추석 때 출하하려던 멜론 역시 하나도 건질 수 없게 됐다. 농작물뿐 아니라 농기계, 농기구도 하나도 쓸 수 없게 됐다. 뜰 한가운데 민가는 통째로 잠겼었고, 축사에 소들은 떼를 지어 폐사했다.

이날 만난 주민수해대책위원회 전수병 위원장은 할 말이 많다고 했다. 천재지변 속에 숨어있는 인재가 있다는 증언이었다. 제방이 터지기 전까지의 상황에 여러 관리 부실이 있었다는 이야기다.

"제가 새벽 5시에 배수장에 가보니까요. 펌프가 한 대밖에 가동을 안 하고 전체가 다 멈춰 있는 상태입니다. 왜 멈춰 있냐고 직원에게 물어봤더니, 엄청난 수초가 떠내려와서 수로를 막고 있다는 거예요. 배수로 스크린에 수초를 건져내는 제진기라고 있는데요. 제진기가 작동을 전혀 못 하는 상태라 자연 배수도 안 되고 펌프도 작동을 못 하는 거죠.

하우스에는 이미 물이 침범하고 있는 상태였어요. 농어촌공사에 항의 전화를 하고, 한 30분 지나니까 지사장이 도착했어요. 상황이 급박한 상황이잖아요. 그런데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대야 할지 전혀 모르고 있는 거야. 이렇게 반복되는 사이 이틀이 지났고.

이 엄청난 물이 하우스에 유입을 당하고 있는 거야. 이틀이 지났는데도 제진기는 고장이라, 어떻게 한 대를 고치면 다른 게 서고. 이쪽을 떠내면 저쪽이 멈추고. 전체가 가동을 못 하는 실정이다, 이 말입니다.

제방에는 자연 배수를 하는 구역이 두 군데가 있어요. 그런데 자연 배수도 못 하고 있어요. 왜? 수초가 걸려서 자연 배수가 나갈 수가 없어요. 수로 쪽에 수위가 제방 바깥과 비교해서 1m 이상 차이가 났습니다. 수초 때문에 도저히 물이 나갈 수 없었어요. 하우스는 이미 잠겼고요. 그때 대청댐이 방류하다 보니까, 그 물이 여기 딱 도달하니까 둑이 터져버린 거예요."


인양뜰 인근에는 배수장이 두 군데 있다. 설치되어 있는 펌프는 초당 25톤을 배수할 수 있다. 배수문까지 합치면 초당 72톤의 물을 퍼낼 수 있을 정도이다. 제방이 터지기 전까지 하루 강우량을 다 합쳐도, 설계상 충분히 배수가 가능한 수준이라고 주민들은 주장한다.
  
주민들은 수로에 베어진 수초들이 그대로 남아 침수 원인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 인양뜰에서 베어진 수초 주민들은 수로에 베어진 수초들이 그대로 남아 침수 원인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 한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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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에 따르면 농어촌공사는 올여름 수로에 가득한 수초를 베어냈다. 하지만 막대한 양의 수초를 다 건져내지 못해 그 수초 더미가 물에 쓸려 내려왔고, 펌프와 제진기를 고장 낼 정도로 쌓였다는 게 주민들의 주장이다. 시설이 충분했음에도 불구하고 침수가 일어난 것은 관리가 부실했던 탓이라는 이야기다.

심지어 이곳은 작년 여름에도 수해 피해를 본 곳이다. 주민들은 작년 수해 피해 이후 대책위원회를 꾸리고 농어촌공사와 소송을 진행 중이다. 주민들은 공사의 태도에 대해 분통을 터트렸다.

"작년에 농어촌공사 사람들이 나를 찾아왔어요. 만나서 하는 말이 '최대한 보상을 해 드리려고 했는데 우리 공사는 지금까지 보상을 해준 전례가 없다'고 했습니다. 자체 보상 규정이 없다는 거예요. 이 말은 '재판으로 가서 이겨서 보상받으라'는 얘기야. 그러면 대한민국의 공기업이 농민과 재판을 붙어서 지나? 당연히 이기지.

그래서 농어촌공사와 작년부터 재판이 시작됩니다. 우리 주민들은 1억이라는 돈을 주고 변호사 선임을 했어요. 그런데 그 공사의 소송비용은 정부의 세금으로 쓰는 거 아니야? 그렇죠? 우리에게 보상을 안 해줘야 자기네가 살길이 생기니까요. 무조건 엄청난 돈을 쏟아부어서 재판에서 이기려는 거예요. 자신들의 잘못이 없음을 입증하기 위해 수천만 원 들여서 시뮬레이션을 돌린다고 합니다. 그 또한 세금이 들어갔을 겁니다."


수해를 입은 청남면 지역은 귀농·귀촌한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다. 이들은 하우스에서 기른 작물을 팔아 생계를 유지한다. 이미 작년 농사에 실패한 농민들은 지금도 빚이 많다. 올해 또 한 푼도 건질 수 없게 되어 주민들의 속이 타들어 가는 중이다.

"현재 재판 중인데도 십 원 한 장 건지지도 못하고. 지금 어떻게 빚만 드글드글 해서 그나마 어떻게 먹고 살려고 하는데 이런 재난이 또 생긴 거야. 이 사람들이 망연자실하고 죽고 싶은 심정이야.

재판의 첫 번째 쟁점이 뭐냐면 처음 이곳에 배수장을 지을 때, 벼농사 위주로 시설이 되었기 때문에 타작물을 심을 수가 없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벼 말고 타작물을 심어서 피해 본 것은 보상해 줄 수 없다고 해요.

그런데 귀농 귀촌한 사람들이 처음 농어촌공사에 가서 땅에 대한 임대차 계약을 할 때, 벼농사를 짓지 말고 타작물로 심으라고 오히려 권장합니다. 그래놓고 농민이 피해를 보면 몰라라 해? 이렇게 남 탓을 하는 거 이건 말이 안 되는 거예요."


"농민 피해, 왜 나 몰라라 하나"
 
주민수해대책위원회 전수병 위원장
 주민수해대책위원회 전수병 위원장
ⓒ 김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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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이번 집중호우 피해지역을 조사해 전국 13곳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다. 특별재난지역이 되면 피해복구비의 50~80%를 국고에서 지원받는다. 주민들에게는 전기료 감면의 지원이 있다. 이 지원책들은 주민들에게 직접적인 도움이 될지 궁금했다.

"전혀 안 됩니다. 작년에도 특별재난지역 선포가 되었는데요. 우리 농민들한테는 10원짜리 하나 돌아오는 것이 없어요. 단 농약과 종자비 정도로 1200평에 70에서 80만 원 정도 보상해 줬습니다. 3600평 정도 규모 농사에 400만 원을 받았습니다. 그게 최고로 많이 받은 겁니다.

물론 그게 편차는 있습니다. 근데 특별재난지역이라고 그래서 외지 분들은 한 수천만 원씩 받는 줄 아시는데요. 지원금은 굉장히 적습니다. 중환자한테 감기약 처방해 주고 너 알아서 살라고 한다는 표현밖에 할 말이 없습니다.

내년에 살아갈 길이 아주 막막해요. 농협의 부채 같은 거 탕감을 좀 해줘야 사람들이 살지. 이자 감면만 해주고 연장시켜 준다고 농민의 빚이 안 늘어납니까? 사람들 내년에 어떻게든 살아가려면 또 빚내야 해요. 그러면 농민이 몇억씩 돈 벌어서 갚을 수가 있는 여력이 되냐, 이 말이야. 농민이 살아나려면 근본적 대책으로 빚을 탕감해 줘야죠. 아니 해마다 이런 이상기후가 생기면, 내년에 또 안 그러리란 법이 어디 있냐고."


작년에 진 빚을 갚기 위해서는 올해 수확이 잘되었어야 했다. 하지만 올해 농사는 이미 망가졌고, 채무상환은커녕 당장 생계가 막막할 지경에 놓였다. 정치권과 행정이 책임을 떠넘기는 동안 피해는 고스란히 농민에게 집중되고 있다. 전수병 위원장은 끝으로 정치권에 바라는 말을 남겼다.

"지자체에 관계되신 어르신들, 위에 계신 분들은 진짜 각성하시고 싸움만 하시면 안 됩니다. 정치 싸움만 하지 말고 각성을 하시고, 진짜 농민을 위하고 근로자를 생각하는 그런 정치가 됐으면 좋겠어요."

태그:#청양군, #집중호우, #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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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의 시민활동가입니다. 우리 지역 현장 곳곳을 다니며,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마이크가 필요한 분에게 마이크 드리는 것이 제 역할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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